밥과 술과 시간들
밥과 술과 시간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6.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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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지지 않은 정부세종청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미디어붓DB
불 꺼지지 않은 정부세종청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미디어붓DB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밥을 짓는다. ‘동물의 왕국’은 그렇다. 남자는 먹여살려야할 의무가 있고, 여자에겐 먹고살아야할 책무가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다. 먹을 것 걱정 없고, 건강하고, 할 일이 있으면 그게 행복이다. 하지만 저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성(性)의 역할은 같아졌다. 일도 같이 하고, 아기도 함께 키운다. 정확히 말하면 분업이 아니라 협업이다. 물론 돈을 벌어오지 못해 파생되는 문제가 많다. 자식 우유 값을 친정부모에게 빌리러 가는 아내의 처절한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남편은 담배를 사서 피운다. 막노동이라도 하라고 하면 관절 타령을 한다. 이 일은 이래서 어렵고 저 일은 저래서 어렵다고 핑계를 댄다. 수컷의 본능을 잃어가는 남자들은 순해지고, 본능을 상실한 사내의 삶은 물렁하다.

▶돈과 밥은 두려운 일이다. 돈 앞에서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고 밥 앞에서 주접을 떨 수도 없다. 돈은 죽는 날까지 벌어야한다. 벌고 또 벌다가 가족 품에서 죽는다. 그것이 슬픈 일인데도, 그렇게 슬픈 일인 줄 알면서도 계속 돈을 번다. 돈을 벌면 가족도 먹고 살지만, 국가도 먹고 산다. 국가는 힘들게 번 돈을 마음껏 걷어다 쓴다. 밥값을 내지 않으면 법까지 들먹인다. 가족을 건사하기도 힘든데 국가까지 건사해야하니 밥벌이 나서는 자의 노고가 딱하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죽는 날까지 벌어야하는, 이 수고로움에 뼛속까지 저민다.

▶보통, 자신의 앞에 하찮은 것들이 있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예측 가능한 것이 보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펜을 굴려 돈을 벌고, 누군가는 삽을 들어 돈을 번다. 하지만 함량의 깊이를 따져 펜의 노고가 쉽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펜과 삽은 대장장이의 망치이자 뱃사공의 노(櫓)와 같다.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어떤 이는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고, 어떤 이는 새벽까지 술을 먹고 귀가한다. 밥벌이는 졸렬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루한 티를 내고 싶지 않은데, 거쳐 가는 일들을 따지고 보면 쓰레기다.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다. 쳇바퀴처럼 ‘밥’을 좇는 사람들은 불나비다.

▶불 꺼지지 않는 빌딩숲은 밤 10시가 다 되도록 퇴근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콘크리트 정글 안에서 처절한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돈과 바꾸고 있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행복의 기운을 쭉 빼고 우두커니 흐른다. 그래서 빌딩은 사람을 닮는다. 닮아가며 늙는다. 낡아가고 삐걱거리며 앓는다. 빌딩 옆 술집에선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목소리로 왁자지껄하다. 웃고 있으나 생선 비린내처럼 역하다. 언어의 시체들이다. 그들은 슬픔과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다만, 유예할 뿐이다. 야근하는 것도 ‘밥’을 먹기 위해서이고, 술을 먹는 것도 ‘밥’을 벌기 위해서다. 고로 일하는 사람이나 술 마시는 사람이나 시간의 총량은 같다. 물론 밥의 총량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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