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의 그리움은 은은한 향기로 남아
‘달맞이꽃’의 그리움은 은은한 향기로 남아
  • 미디어붓
  • 승인 2019.07.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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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그 이름 달맞이 꽃”

이 가사는 가수 고(故) 김정호의 대표곡 ‘달맞이꽃’의 일부입니다. 김정호는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등 숱한 명곡들을 남겼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985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 김정호의 폐부를 찌르듯 한이 서린 깊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사경을 헤맸을 그가 지금 저보다도 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과연 좋은 가수는 하늘이 내려주는가 봅니다. 동시에 그를 일찍 거둬들인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전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달맞이꽃.
대전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달맞이꽃.

김정호의 노래에서도 드러나듯 달맞이꽃은 우리에게 애절함의 정서를 투영하는 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달맞이꽃이 자신의 이름처럼 누구도 바라봐주지 않는 밤에 꽃을 피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에 좋다는 달맞이꽃 종자유 때문에 꽃 이름은 익숙해도, 정작 활짝 핀 달맞이꽃을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이죠.

해마다 7월이면 달맞이꽃은 따가운 여름햇살이 쏟아지는 길가에 무리지어 줄기의 살을 찌우고 키를 높이 세웁니다. 달맞이꽃은 남미를 원산지로 하는 귀화식물인데, 광복 이후 전국적으로 퍼져 ‘해방초(解放草)’라고도 불렸답니다. 달맞이꽃과 가까운 곳에서 꽃을 피우는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 개망초는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퍼져 ‘나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을 얻었으니 참 대비되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을 모르는 두 꽃은 서로에게 기대어 묵묵히 타향살이를 견디고 있습니다.

한낮에 꽃잎을 접은 달맞이꽃의 모습은 그저 키가 큰 잡초일 뿐입니다. 게다가 햇살까지 강렬하니 누군가가 달맞이꽃으로 다가와 눈여겨 봐주길 기대하긴 어렵죠. 달맞이꽃의 진가는 해질 무렵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달맞이꽃은 한자로 ‘월견초(月見草)’ 혹은 ‘야래향(夜來香)’이라고 씁니다. ‘밤에 오는 향기’란 뜻을 가진 ‘야래향’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달맞이꽃은 매우 좋은 향기를 자랑합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면서도 매우 기품 있는 향기이죠.

곱고 노란 꽃잎과 그 어떤 꽃들에도 지지 않는 향기는 달맞이꽃의 처지를 더욱 처연하게 만듭니다. 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달맞이꽃을 찾아오는 곤충은 나방과 파리 등 사람으로부터 천대받는 녀석들뿐입니다. 저는 달맞이꽃에게서 말 못할 사연을 감춘 채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여인의 슬픔을, 나방과 파리에게서 가진 것 하나 없어 모진 삶을 살아도 그 여인만을 바라보는 남자의 순정을 읽었습니다. 저의 상상력이 조금 과했나요? 그 상상력이 달맞이꽃의 꽃말인 ‘기다림’을 실천하게 만들더군요.

2004년 7월의 어느 날 해질 무렵. 저는 개화를 앞둔 달맞이꽃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을 따라 그림자가 길어질 때마다 달맞이꽃은 조금씩 꽃잎을 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달맞이꽃이 완전히 개화해 향기를 확인할 시간과 만났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그보다 더 감동적인 꽃향기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 감동은 당시 저의 어설픈 시조 한수로 남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길고 긴 여름 한날/움츠려 지새우다/허기진 달빛 아래/고운 모습 펼치오니/그마저 누가 볼세라/수줍어 우는 구나”

달맞이꽃과 만나는 법 : 달맞이꽃은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척박한 땅에서 자랍니다. 달맞이꽃은 주로 그늘이 보이지 않는 길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데, 낮에는 꽃을 피우지 않으니 그저 키가 큰 잡초로 보일 뿐입니다. 꽃을 보려면 퇴근 시간에 낮 시간 동안 그늘이 없었던 인도를 걸어보세요. 꼭대기에 노란 꽃을 피운 달맞이꽃이 여기저기 흔하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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