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근하고 투잡 뛰는 ‘직장인들’ 주52시간 근무제 ‘빛좋은 개살구’
칼퇴근하고 투잡 뛰는 ‘직장인들’ 주52시간 근무제 ‘빛좋은 개살구’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7.09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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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금융사·버스 회사·방송국 등 21개 업종으로 확대 적용
2020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모든 기업이 주52시간 근무제
인력 충원 등 여력 적어 어려움 예상…노동부, 밀착 지원 착수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정착을 위해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7월부터는 금융사, 버스 회사, 방송국 등 21개 업종으로 확대 적용됐다. 연합뉴스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정착을 위해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7월부터는 금융사, 버스 회사, 방송국 등 21개 업종으로 확대 적용됐다. 연합뉴스

#1. 은행 지점장인 A씨는 주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칼퇴근을 하고 있다. 직원들도 오전 7시15분까지 출근하다 8시45분쯤에 은행문턱을 넘는다. 서로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컴퓨터 오프제도 실시 중이다.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량 축소를 만회한다는 명목으로 점심시간과 오후 6시 퇴근시간 이후에 컴퓨터를 강제적으로 끄는 것이다. 최근 은행들이 지점 축소와 인력 감축을 하는 상황에서 정시 출퇴근을 지키기가 참으로 곤혹스럽다.

#2. 중견기업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B씨는 주52시간 근무로 연장근로 수당이 줄어들면서 야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취미나 여가생활을 보내는 저녁 있는 삶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도 아이들 학원비를 보태려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 이후 편의점 들어가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3.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씨는 직원 규모에 맞춰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기존 인력으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력을 충원하려고 해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줄면서 직원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잔업과 야근시간도 최대한 줄였다. 직원들은 주52시간 근무를 크게 반기지 않는 눈치다. 야근을 좀 하더라도 일이 제대로 처리되는 게 마음이 편한데 이제는 야근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받고 있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시간만 줄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오히려 볼멘소리다.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정착을 위해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7월부터는 금융사, 버스 회사, 방송국 등 21개 업종으로 확대 적용됐다. 또 2020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노동자가 있는 모든 기업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한다. 사실상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시행되는 것이다. 주52시간 근무제는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노사가 합의를 해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주52시간 근무제 외에도 일주일에 4일만 일하는 주4일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처음이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 충북 충주의 화장품 제조업체 에네스티, 경북테크노파크, 한국국학진흥원,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경북신용보증재단,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 등이 주4일제다.

7월부터 확대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 연합뉴스
7월부터 확대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 연합뉴스

중소기업인들은 최저임금 인상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주52시간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기업의 준비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대비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 경영애로 및 하반기 경영전략 조사’ 결과 중소기업들은 경영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사안으로 최저임금 급등(51.6%)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38.4%)을 꼽았다. 주52시간제가 중소기업에 적용되기도 전부터 경영상 부담이 되고 있지만 아무 대책이 없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1주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노동분야 전반에서 부족한 인력은 26만6000명에 달한다. 기업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2조1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기본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에 근로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0~299인 사업장의 약 20%는 주 52시간을 넘겨 근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올해 1월 기준으로 50∼299인 사업장 약 2만7000곳(종사자 283만명) 중 주 최대 52시간 초과자가 있는 기업은 약 5000곳(18.5%)”이라고 밝혔다. 50~299인 사업장 5곳 중 1곳 꼴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중소 규모인 이들 사업장은 인력 충원 등의 여력이 부족해 주 52시간제 안착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올해 하반기 50~299인 사업장의 노동시간 단축 준비작업을 밀착 지원하기로 했다. 이달 중으로 48개 지방 고용노동관서에 ‘노동시간 단축 현장 지원단’을 설치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D씨(42)는 “주52시간 근무제는 정부가 현장 실태를 잘 모르는 발상”이라며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임금도 줄어들어 노사 모두 손해”라고 말했다. 이어 “퇴근시간 이후 저녁이 있는 삶이나 여행·취미활동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일부에 국한된다”면서 “무조건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 고용부 소관 법안 총 908건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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