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원만 내면 해결되는데…” 입주민이 경비실에 에어컨 선물
“월 100원만 내면 해결되는데…” 입주민이 경비실에 에어컨 선물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7.12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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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녹원아파트, 찜통더위에 고생하는 경비원 위해 ‘아름다운 십시일반’
“경비아저씨도 누군가의 가족이자 우리의 가족” 주민투표 통해 결의
시민사회단체선 태양광 패널 설치비용 모금 운동 전개 중
대전 둔산동 녹원아파트 입주자들이 찜통더위로 고생하는 경비원들을 위해 에어컨을 선물하기로 해 화제다. 12일 찾은 1.5평 규모의 경비실은 30℃ 넘는 더위를 견디기 힘든듯 잔뜩 웅크리고 있다. 나재필 기자
대전 둔산동 녹원아파트 입주자들이 찜통더위로 고생하는 경비원들을 위해 에어컨을 선물하기로 해 화제다. 12일 찾은 1.5평 규모의 경비실은 30℃ 넘는 더위를 견디기 힘든듯 잔뜩 웅크리고 있다. 나재필 기자

“여름 경비실 온도 47℃. 경비아저씨도 누군가의 가족이자 우리의 가족입니다.”

대전 둔산동 녹원아파트 입주자들이 매년 찜통더위로 고생하는 경비원들을 위해 에어컨을 선물해 화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달 초 경비부담 등을 이유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안건을 부결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이종민(39)씨는 에어컨 설치에 드는 비용을 따져봤다. 그 결과 주민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은 가구당 매달 100원 미만이었다.

“경비실 11곳의 에어컨 설치비는 대당 45만원씩 500만원가량으로 예비비로 충당하면 추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전기요금도 공용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구당 월 100원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이 씨는 전체 주민 10%의 서명을 받으면 입주자대표회의에 안건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웃들에게 서명운동을 제안했다. 이 씨 등은 하루 만에 157명에 달하는 주민의 서명을 받았고, 경비실 에어컨 설치 안건은 입주자대표회의 재심의를 거쳐 전체 주민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전체 유효표 461표 가운데 456표가 경비실 에어컨 설치에 찬성했고 반대는 5표에 그쳤다. 유효표 대비 98%가 에어컨 설치에 찬성한 셈이다. 현행 규정상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누가 할 것인지는 아파트 자율에 맡겨져 있다. 녹원아파트는 이달 안에 경비실 11곳에 에어컨을 설치할 예정이다.

“1.5평(6.6㎡) 남짓한 경비실 온도는 보통 45도℃가 넘습니다.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이 나오죠.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정이잖아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아저씨들이 다소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주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위한 서명운동. 대전 녹원아파트 주민 제공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위해 입주민들이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전 녹원아파트 주민 제공

이 아파트 경비원의 평균 연령은 63세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갑질이 횡행하는 요즘, 소규모 마을 아파트가 보여준 감동적인 사랑에 지역사회는 즉각 답하고 있다.

해당 구의회가 에어컨에 필요한 전기사용을 태양광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패널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물론 행정절차상 불가하다는 벽에 부딪쳤지만 작은 바람이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박애의 감정만큼은 전달됐다.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시민의 힘으로 경비실 에어컨 가동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면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을 때는 공용전기로 사용할 수 있다. 가령 300W급 태양광 패널 2기를 설치하면 하루 4시간가량 에어컨 가동이 가능하다. 녹색연합은 경비실 11곳 가운데 2곳은 미세먼지 줄이기 등을 위해 모금한 기금을 활용하고, 나머지 9곳은 시민 모금으로 설치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도 아파트에 함께 사는 구성원입니다. 에어컨 설치를 결정한 주민들의 노력에 지역사회가 답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해요. 행정기관이 할 수 없다면 지역사회가 움직이면 됩니다. 이번 미담사례는 단순히 경비실에 에어컨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함께 사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대전 둔산동 녹원아파트 경비실. 나재필 기자
대전 둔산동 녹원아파트 경비실. 나재필 기자

‘100원의 나눔 아파트’가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경비원에 대한 갑질문화가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젊어서 경비원 일을 왜 하냐”, “처자식 보는 앞에서 욕을 해 주겠다”, “너, 왜 여기서 밥 빌어먹고 사니”, “네가 하는 일이 문 여는 일 아니냐”는 등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이 다반사이고, 폭행, 보장받지 못하는 휴게시간, 택배·청소·제설·주차관리 등등 ‘눈물로 밥을 버는 상실의 노동자’가 경비원들이다. 또한 대부분 아파트 경비원들은 기간제로 고용돼 있어 ‘파리 목숨’에 가깝다. 만55세가 넘어가는 고령노동자에 해당됨으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 규정을 적용받지 못해 2년 이상 근무하더라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 즉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없다. 퇴직금·연차휴가수당이 발생하는 1년을 채우기 직전 기간 만료를 이유로 퇴직하게 되는 경우도 상당수 발생한다. 일부 용역업체의 경우 이를 이용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녹원아파트의 아름다운 십시일반 정신’은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할 일을 주민들이 대신해준 운명공동체 문화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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