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두겹, 삼겹일 땐 삼겹살
근심이 두겹, 삼겹일 땐 삼겹살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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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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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나빠지면 시장(市場)엔 즉각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양복이 안 팔리고 갈빗집 손님이 줄어든다. 물론 옛날 얘기다. 요즘엔 양복 맞춰 입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불경기에도 고기 뜯는 사람이 많다. 우린 술 생각날 때나 비 오는 날에 으레 삼겹살을 떠올린다. 근심이 두 겹, 세 겹 겹칠 때도 삼겹살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위로다. 삼겹살을 구워먹게 된 유래에 대해 정설은 없다. 다만 개성지방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개성은 예로부터 인삼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삼겹살과 인삼을 함께 먹을 때 너무 맛있어서 ‘삼삼하다’고 했다는데 조금은 억지스럽다.

▶삼겹살은 5~6갈비뼈 등심 아래에 있는 복부 부위다. 예전에는 세겹살, 뱃바지, 삼층(三層)제육으로 불렸는데 마리당 12㎏ 정도 나온다. 식감이 부드러운 보섭살은 돼지 엉덩이 부위, 홍두깨살은 뒷다리 쪽 엉덩이 안쪽을 말한다. 설깃살은 바깥쪽 넓적다리, 항정살은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목덜미 살이다. 도가니살은 뒷다리의 무릎 뼈와 넓적다리뼈를 감싸고 있는 대퇴네갈래근, 마구리는 갈빗살을 제거한 뒤 남은 걸 떼어낸 부위다. 토시살은 갈비뼈 안쪽 가슴뼈에 붙은 근육이고, 오겹살은 갈비뼈 쪽에 붙은 살이다. 부위가 이렇게 많은데 쓰임새도 다르고 풍미도 다르다. 돼지, 참으로 먹성답게 오지랖도 넓다.

▶삼겹살 구이 역사는 30년밖에 안 된다. 70년대 후반, 강원도 태백과 영월의 광부노동자들이 매월 지급받았던 고기교환권으로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부위가 삼겹살이었다. 이것을 돌판에 구워먹었던 게 기원이라는 것이다. ‘삼겹살=돈(豚)’이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삼겹살은 삼겹살로서 잘 팔려나간다.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도 돈(豚)을 굽는 데는 기꺼이 돈을 내놓는다. 아이러니다.

▶어릴 적, 삼겹살을 구워 먹어본 기억이 없다. 우리 집은 무조건 찌개나 탕(湯)을 먹었다. 비계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그 냄비안의 걸쭉한 국물은 가난한 눈물이었다. 때로 탕이 지겨우면 김치와 비계를 섞어 김치볶음을 했다. 희한한 일은 그때의 느끼한 식감이 인에 배어 지금도 탕과 볶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많이 먹어도 두세 조각이다. 빨갛고 흥건한 국물이 물컹거려야 입맛에 맞는다. 세상살이 주름이 두 겹, 삼 겹이다. 주름을 펴주는 레시피에 특별한 것은 없다. 기름덩이에 소주 한잔 걸칠 수밖에. 짜르르, 빈속에 독주가 흐르면 연민과 근심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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