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과 아름다움
더러움과 아름다움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7.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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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은 관능의 높이다. 여체의 곡선을 닮았고, 미간을 타고내리는 눈썹을 닮았다. 그런데 하이힐의 아름다움은 ‘더러움’에서 비롯된다. 중세 이후 절대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 대소변을 창밖으로 투척했다. 포장이 안 된 도로는 비만 오면 오물이 뒤섞인 진흙탕이 됐다. 숙녀들은 치마에 오물이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었다. 이렇게 시작된 하이힐은 300여 년간 여성들의 발을 혹사시켰다. 굽 높은 신발을 신고 15분정도 걸으면 발가락이 받는 압력은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을 때의 4배다. 하이힐이야말로 여성의 ‘콧대’를 세워줌과 동시에 S라인을 고장 나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중세시대 모자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태양의 볕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지만, 언제 어느 하늘에서 투척될지 모르는 오물을 막기 위해 무조건 쓸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는 남녀 공동목욕탕과 공중화장실이 많았다. 사람들은 칸막이도 없는 곳에 둘러앉아 용변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부분이 ‘키톤’이라는 긴 옷으로 몸을 가릴 수 있었기에 수치심을 덜 느꼈다고 한다. 당시에는 비누가 없어 소변을 세척제로 사용했다. 인도의 보통 살림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시골에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들판이나 후미진 길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아주 일반화된 현상이다. 남자들은 전혀 부끄럼 없이 드러내 놓고 일을 보고, 여자들은 조금 으슥한 곳에서 가리고 볼일을 본다. 이러다 보니 들판이나 강가의 모래사장은 그야말로 오물 밭이다. 그것도 ‘큰 볼일’을 보고나면 왼손으로 닦는다.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손에 물을 묻혀 씻는다.

▶인도 사람들은 밥을 오른손으로 먹는다. 손을 사용하면 음식의 촉감과 온도를 입과 손 두 곳에서 느낄 수 있어 그 맛이 훨씬 좋다는 이치다. 또 인도 주식인 ‘탈리’는 숟가락으로 비벼서는 좀처럼 맛있게 만들 수가 없다. 서너 가지의 반찬을 골고루 잘 섞어야만 제대로 맛이 나는데다, 인도 밥이라는 게 불면 날아갈 정도로 끈기가 없어 주물럭거려야한다. 또 다른 이유는 위생상의 이유란다. 인도 사람들은 남이 한 번 썼던 것은 아주 더럽게 생각한다. 숟가락도 마찬가지. 아무리 깨끗하게 씻는다 해도 결국은 남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은 언제나 자기 입에만 들어갔다 나오니 깨끗하다고 본다. 남쪽지방으로 내려가면 숟가락뿐 아니라 접시도 더럽다고 여겨 바나나 잎에 탈리를 준다. 숟가락이냐, 손가락이냐, 무엇이 깨끗할까.

▶더러움과 깨끗함의 차이는 관념(관점)의 차이다. 물(水)은 어떤 이에게는 식수이고, 누군가에게는 손을 씻는 핑거볼(Finger Bowl)이다. 왼손으로 용변을 닦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행위를 저주할 수는 없다. 관능의 하이힐과 오물을 피하려는 하이힐의 용도를 따질 수도 없다. 우린 생긴 대로 산다. 생긴 대로 살면서, 생김을 탓하고 생김을 따진다. 마음을 비우기란 쉽지 않다. 밥과 배설물은 유기적 관계인데 배설물만 욕을 먹는다. 밥을 열심히 먹는 것은 배설물을 만드는 일이다. 결국 비우기 위해 채우는 행위다. 날마다 세상살이 통증을 안고 지겨운 도돌이표 노동에 뛰어들면서 인간은 한없이 처량하다. 비우려고 몸부림칠수록 마음속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만 주검처럼 쌓여간다. ‘비움’ 그 자체로는 비워지지 않는다. ‘비움’을 체념했을 때 비로소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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