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대한민국 번아웃 대한인 “우리 국민들 진짜 안녕합니까?”
번아웃 대한민국 번아웃 대한인 “우리 국민들 진짜 안녕합니까?”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8.19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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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붓 칼럼으로 본 대한민국]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내 앞길이 구만리인데 남의 앞길을 챙겨야 할 때다. 국가에게 위로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내 앞길이 구만리인데 남의 앞길을 챙겨야 할 때다. 국가에게 위로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간은 두발로 걷는다. 그리고 사냥을 하기 위해 내달린다. 달리기란 생(生)의 굳은살 같은 거피들을 털어내는 일이다. 잊고, 또 잊고, 다시 잊어가면서 새살이 돋아나도록 뛴다.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을 잊으면서 나이를 잃고, 사랑을 잊으면서 사람을 잃어간다. 그 알싸한 상실감은 돌이킬 수 없는 윤회다. 고민과 잡념들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증거다. 하루하루를 대강대강 산다면 영혼의 찌꺼기는 생기지 않는다. 달리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근력을 키워준다. 몸은 다소 피곤하지만 오늘 달리면 내일 다시 달릴 힘이 생긴다. 그런데 혼자서 달리면 완주하기 힘들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시작한다는 건 도전이다. 도전은 잘해도, 못해도 ‘반타작’이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중간’이란 없다. 이때 중요한 건 패배하더라도 인정하는 거다. 작은 패배든 큰 패배든 일단 절망하고 나면 근력이 생긴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그것이 인생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숨 가쁘게 살아온 인생에는 반드시 권태기가 따른다. 권태기(倦怠期)에서의 ‘권’이 ‘게으를 권(倦)’자 아닌가. 사람이 게을러진다는 건 ‘번아웃(Burnout syndrome)’의 징조다. 모든 게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는 것이니 소진, 연소, 탈진을 뜻한다. 오랜 기간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이때 등장하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기운 빠지는 억양을 갖고 있다. 짜증, 쇠약, 예민, 슬럼프, 회의감, 불만, 노여움, 우울 등등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훅 불타버린다. 에너지 고갈상태 ‘마음의 감기’다. ‘번아웃 사회’는 긴 노동 끝에 짧은 휴식을 준다. 물론 짧은 노동, 긴 휴식을 준다 해도 가벼이 쓸 종족은 없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방기해도 좋을 일이 있지만 총량은 같다. 오늘 ‘잠깐’ 쉰다한들 내일 ‘당장’하지 않으면 금세라도 멸망하는 듯 후폭풍이 몰아친다. 간교한 피드백, 저열한 후유증이다. 문제는 육체의 연소보다 정신의 연소가 더 비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름 하여 ‘일태기’(일+권태기)다.

▶번아웃에 걸렸을 때의 처방은 간단하다. 빈둥거리면 된다. 우린 필요이상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떠안고 산다. 본인의 짐도 무거운데 필요이상으로 참견한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하게 된다. 지나친 오지랖이다. 하기 싫을 땐 하지 말아야한다. 사실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사이에도 권태기는 온다. 그 사람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 사랑이 변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넘어진다. 무르팍이 깨져서 멈췄을 때 비로소 자기애(自己愛)를 발견한다. 다시 일어서려면 주변 시선 의식하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사람은 아픔보다 창피함이 앞서 ‘죽는 척’을 한다. 남들이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른다. ‘척’을 하니 아픔이 대뇌피질서 전율한다. 대뇌에 저장되는 기억은 물질의 형태가 아니다. 장기 기억은 신경 세포 사이의 시냅스 회로에 새겨진다. 마치 낙인처럼.

▶대한민국은 피로하다. 빨리 빨리를 외치다가 번아웃이 너무 빨리 왔다. 소진상태다. 걷는 미덕을 거스르고 무작정 달려온 대가다. ‘쉼’의 가치를 상실했다. 쉼표가 없으면 중간에 느낌표 없이 바로 마침표다.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피의자가 너무 많다. 그나마 유죄로 보는 대상은 위정자다. 우린 그들을 용서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잘난 척을 한다. 2019년 미국도, 북한도 대한민국을 이용한다. 그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간'을 본다. 지구상 가장 비열한 '미개종족' 일본은 안하무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린 그 자리다. '금붙이'를 모아서 IMF위기를 넘기고 ‘자존’을 모아 한반도위기를 넘어보려 하지만 국민만 ‘번아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내 앞길이 구만리인데 남의 앞길을 챙겨야 할 때다. 국가에게 위로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를 위로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정치 등살에 생존의 임계치에 다다랐다. 언제쯤 ‘대한 자존’의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며 웃을 수가 없다. 무르팍이 깨지더라도 다시 달려야 하나, 다시 달리면 무슨 일이 생기지, 온통 잃어가는 것투성이인데 어디로 달려야하나 의문부호가 찍힌다. ‘파락호’의 위정자들에게 묻는다. 우린 진짜 안녕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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