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나왔다.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을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 은희가 사랑받기 위해 작지만 힘찬 날갯짓으로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네레이션 14 플러스 부문에서 대상을 받는 등 국내외 25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단행본 '벌새-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아르테 펴냄)에는 영화에서 편집된 40여분이 그대로 담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수록됐다.

김보라 감독과 영화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테스트'를 고안한 미국의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이 직접 만나 '여성, 서사, 창작'에 관해 나눈 대담도 실렸다. 두 사람은 시대와 공간, 매체를 뛰어넘어 예술가로서, 개인으로서 진솔한 고민을 나눈다. 소설 '쇼코의 미소'를 쓴 최은영 작가, '페미니즘의 도전'을 발표한 여성학자 정희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변호사 김원영, 남다은 영화평론가가 각각 쓴 '벌새'에 관해 글도 수록됐다. 정희진은 "이 영화의 역사성은 1994년 가족과 학교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통증과 폭력의 일상을 그려낸 데 있다"고 평했다.

김 감독은 서문에서 "벌새를 만드는 과정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비로소 집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됐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때로 잔혹하고, 서늘하고, 아프고,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었다"고 썼다.

나재필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