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 칼럼으로 본 정치학]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역주행'
[미디어붓 칼럼으로 본 정치학]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역주행'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9.1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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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뉜 조국 파문으로 격랑을 일으키고 있는 청와대. 연합뉴스
연합뉴스

▶주인 없는 꽃, 주인 없는 꿈, 이름 하여 정치다. 주인 없는 꽃은, 꽃세(稅)를 내지 않아도 마음껏 볼 수 있다. 결국 주인 없는 꽃은 주인 없는 꿈이다. 허락받지 않고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이다. 주인 없는 그 꽃의 정령은 꽃술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민주주의에도 꽃이 핀다. 국민이 발아시킨 이 꽃은 주권의 힘으로 피고진다. 민초(民草·백성)들은 주인이라 칭하지만 주인 없는 꽃으로 살아간다. 그 눈물 꽃은 버려진 꿈과 버려질 꿈으로 분화된다. 버려질 줄 알면서도 기꺼이 몸 바쳐 희생하는 하루살이 꽃이다.

▶흔히들 ‘새대가리’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쥐어 터져도 돌아서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기 때문이다. 새대가리의 원조는 닭대가리다. 닭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가 맹금류가 하늘에 뜨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는 아무 ‘구멍’에나 무조건 머리를 들이민다. 몸통은 나와 있는데 대가리만 감추니, 감춘 게 아니다. 도망간 것 또한 아니다. 정치라는 것도 ‘닭’과 닮았다. 정치인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이 항거하면 도망친다. 그리고 아무 ‘구멍’에나 머리를 박고 숨어버린다. 그 ‘구멍’이 제 몸에 맞지 않는데도 일단 들이대니 ‘닭’이다. 뻔뻔한 민낯을 드러내고 대가리만 감추니 ‘닭’이다. 그 저열한 몸통은 흑묘백묘(黑猫白猫)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리사욕을 채운다. 물론 일부 국민들도 흑묘백묘다. 뽑아놓고 후회하고, 후회하다가 또 뽑는다. 망각이라는 환각제를 먹고서.

▶모든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게 핵심이다. 자기과잉, 자기함몰의 시대, 더욱 약삭빠른 동물이 되라고 독려하는 이 정치문화는 자기중심주의를 극대화한다. 그래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똑같은’ 정치가 보기 싫다면 ‘똑바로’ 뽑아야하는데 ‘또 같이’ 뽑는다. 그러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는 진눈깨비와 닮았다. 진눈깨비는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는 것이다. 눈 같기도 하고, 비 같기도 하다가, 다시 눈도 비도 아닌 혼혈의 정경을 띤다. 꽃비처럼 아름답지만 땅에 닿는 순간 진흙탕을 만든다. 때문에 떨어지기 전까지만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낙화(落花)하면 쓰레기다.

▶인간 DNA를 늘어놓으면 대략 2m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99.9% 이상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단지 0.1% 미만의 차이가 종족, 외모 같은 ‘구분’을 만들어낸다. 32억개 염기 중 98%는 쓸모가 없는 ‘정크(쓰레기) DNA’다. 하지만 ‘정크 DNA’의 80%는 암, 심장병, 정신질환 등 각종 질병과 돌연변이를 파악하는데 긴요하게 쓰인다. 쓰레기가, 쓰레기로 불리기 이전에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버려지는 것과 버리는 것으로 나뉜다. 스스로 버려지고 싶은 쓰레기는 없다. 단지 보는 이의 관점에서 쓰레기도 되고, 쓸모도 된다. 물론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엔 쓰레기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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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속지 않아’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더 잘 속는다. 사람은 제 수준의 정치를 갖는다. 사람은 제 수준의 정치인을 만난다. 국민을 버린 국가도 문제고, 그걸 관망하는 국민들도 문제다. 정치의 정한은 버려지는 것과 버리는 것으로 구분된다. 버려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국민을 버리고 있다. 버려지면 안 될 국민들이 버려졌으니, 그들이 쓰레기다. 참담한 정치의 오후다. 해바라기는 8개월 동안 준비해 한 달 정도 핀다. 얼굴을 활짝 편 해바라기는 꽃잎을 드러내고 씨마저도 숨기지 않는다. 해바라기를 두고 ‘변절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줏대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변절하지 않고 애면글면 태양만 바라보고 사는 충정의 꽃이다. 진정한 용기는 적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진영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쓴 대통령은 비민주적이었던 전두환이었다. 정치에 들락날락 하지 않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은 말을 번복하며 들락날락했다. 지역 탕평인사를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코드 인사’로 비판받았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을 자주 언급했으나, 그때처럼 남북 관계가 경색된 적이 없었다. 붕당정치는 우리의 불행한 유산이다. 어짊과 어리석음, 높고 낮음은 오직 파벌에서만 통했다. 문재인(대통령)은 노무현처럼 ‘보통사람’(論)을 주창한다. 그러나 그가 꿈꾸는 ‘보통사람 시대’는 모두가 살아봤던 세상이다. 노무현도 ‘보통사람’을 주창했지만 완성하지 못했고 ‘보통사람’의 원조 격인 노태우도 실패했다. 아무리 ‘보통사람’이 주인이어야 한다고 떠들어봤자 국민들은 밥 세 끼 먹기에도 바쁘다. 그리고 또 ‘보통 이하’로 살 수밖에 없다.

▶초년고생(初年苦生)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이 상투적인 말은 알고 보면 헛소리다. 고생을 해서 이루는 성취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게 백배 낫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건 기적이다. ‘7포 세대’(연애·결혼 등 7가지 포기), ‘헬조선’(hell朝鮮:지옥 같은 한국)이라고 절규하는 시대다. 한번 약자(弱者)는 평생 약자다. 신분 고착화의 절망 담론이 사회를 난도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를 향해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금수저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약자의 그늘이 없다. 계급사회에서 배워온 권력의 질서만이 엿보인다.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다. 흙수저의 비애를 모르는 자들이, 맨손가락을 빨면서 가슴으로 우는 사람의 심정을 알 리 없다. 가난해보지 않았는데 어찌 눈물로 짜는 가난을 아랴.

▶밑바닥은 눈물부터 차오른다. 밑바닥 정서는 ‘금수저들’의 밥을 오롯이 떠먹이는 원심력에 근거한다. 공부만 잘하면 어떤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금수저 정치’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이다. 정치는 공부가 아니다.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학습형 발상으로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메시아적 선언만 나열하는 습관은 흙수저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정치는 ‘머리만’ 똑똑한 사람이 아닌 ‘가슴이’ 똑똑해야 한다. 정치인의 질(質)은 정치의 질(質)이다. 정치 떠버리들은 민심을 잘 속인다. 잘 속으니 또 속이는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잘 속는다고 느끼겠지만, 속는 척 할 뿐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공적으로 돕는 게 정치다. 고로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정치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중력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심방, 우심방’에 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어야 한다. 임기가 끝나면 또 다시 선거에 도전하고 싶지 않아야 정상이다. 때문에 당연히 월급도 박하고 비정규직이어야 옳다. 절망이 지배하는 정치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는 법이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 최선을 다한 다음에도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건 정치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징징거리는 ‘금수저 정치’가 아닌, 희망을 주는 ‘흙수저 정치인’이 안 보인다. 흙맛은 짜다. 눈물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안희정, 이재명 그리고 조국…. 또 속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어찌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다. 맹목적인 것은 무모한 짓이다. 한쪽만 보면 한쪽만 보인다. 철석같이 믿었다간 뒤통수를 맞는다. 안희정이 대통령이 됐다면 어찌 됐을까. 끔찍하다. 우린 그렇게 어리석다. 사람 볼 줄을 모른다. 정치 모리배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역사는 지문을 남긴다. 지문은 시간의 상처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내 몸에 낙인을 찍는 일이다. 언제까지 정치놀음에 속아야하나. 버려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국민을 버리고 있으니 참혹하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우린 경고해야한다. 지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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