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족
혼족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1.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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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중 3명은 혼자 산다. 이름 하여 혼족이다. 나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혼술(홀로 술), 혼밥(홀로 밥), 혼여(홀로 여행), 혼영(홀로 영화), 혼놀(혼자 놀기)이 자연스럽다. 혼자 산다는 건 자유와 여유다. 민폐를 안 끼쳐 좋고, 눈치코치 안 보니 이만한 호사도 없다. 사실, 혼밥은 쓸쓸하고 목이 메는 밥이다. 먹어도 우울하고 배고픈 밥이다. 하지만 외로움, 배고픔보다 더 큰 것이 자유로운 ‘밥숟가락’ 아닌가.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은 담소의 밥이 아니라 갈등의 밥이다. 결혼, 취업, 생활고를 얘기하다보면 담백(淡白)보단 독백(獨白)이 낫다. 차라리 인생사 소음이 아닌, 혼자서 조용히 삭히는 묵음(黙音)을 즐기는 것이다.

▶혼술 만큼 독하고 아린 것은 없다. 어둠이 내려앉고 그 어둠위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술은 암흑이 된다. 마셔도, 마셔도 취기는 더디다. 더구나 혼자 먹는 술엔 갖은 상처와 추억과 외로움들이 희석돼있다. CMYK 감산혼합이다. 파랑(Cyan), 자주(Magenta), 노랑(Yellow), 검정(Black)이 모이면 저마다의 색깔이 아니라 검정색이 된다. 여러 빛깔이 모여 하나의 색깔이 된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미스터리다. 혼술을 즐기고, 혼자만의 사색으로 이 밤은 처절하게 빛난다. 군중 속의 고독은 바로 혼술이 주는 무한한 매력이다.

▶‘관태기’란 관계와 권태기를 합친 신조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인간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을 멀리 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한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없어도 있는 척 하는 게 피곤하고, 있어도 진짜 있는 척 하기가 권태롭다. 모든 시간이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의 단절이 아니라, 대화 그 자체를 단절하고픈 마지막 절벽이다. 관태기는 사회상의 바로미터다. 연애, 결혼, 출산, 집, 희망, 건강, 외모, 가족사(事) 그 어느 화두를 잡더라도 관태기는 온다. 비혼(非婚)이란 것도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아닌가.

▶돈 좀 벌고, 명예 좀 있다 싶으면 각종 모임에 단골으로 출몰한다. 나 좀 알아달라고 하는 허세인데, 이런 모임은 단명(短命)한다. 한두 번쯤 굴러가다가 그 ‘인간’ 때문에 절멸하게 돼있다. 주변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생기면 혼족이 생긴다. 혼자 술 마시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영화 보면서 세상을 떠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 ‘자싸’다. 혼자 산다는 건 불편함과의 이별이다. 타인에게 마음의 창을 닫는 방어기제다. 이 밤도 머그잔에 소주를 따른다. 벌컥벌컥, 술은 쓰지만 시간은 달다. 세상만사, 시끄러운 얘기 들을 일이 없으니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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