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사진작가’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나간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사진작가’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나간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10.09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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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은 꿈을 이룬 남자’ 우희철 사진작가
20년 넘게 사진기자로 활약하다가 라오스로 이주
한국사진기자협회서 생태사진으로 수많은 ‘사진상’ 수상
라오스에서 경험하고 배운 이야기 묶어 라오스인문지리서 출간예정
우희철 사진작가는 패러모터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시선의 각도는 신의 영역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상상보다도 더 큰 앵글이다. 우희철 사진작가 제공

‘이카로스(Icaros)의 꿈’은 정녕 백일몽일까. 누구나 한번쯤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러나 신(神)은 영영 인간에게 날개를 주지 않았다. 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하늘을 나는 길을 찾아냈다. 그 중 하나가 패러모터(Paramotor) 비행이다. 패러글라이딩이 무동력 비행이라면 패러모터는 작은 엔진으로 하늘을 나는 기구다.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패러글라이딩에 비해 패러모터는 혼자 힘으로 하늘을 날게 해준다.

우희철 사진작가는 패러모터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시선의 각도는 신의 영역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상상보다도 더 큰 앵글이다. 그의 블로그 이름도 ‘버드아이’(birdeye)다. ‘새’가 되어 날고 싶다는 염원과 ‘새’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우 작가는 현재 라오스에 살고 있다. 벌써 7년째다. 왜 떠나야했는지, 왜 머물러야 했는지 미궁이지만 여전히 ‘새’처럼 하늘을 날며 ‘태초의 원시’를 찍고 있다.

“새가 돼 날고 싶다는 꿈은 오래전의 일이다. 사진 기자로 살면서 생태 사진에 몰두했었다. 당시 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갈증이 났다.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니 똑같은 앵글만 나왔다. 그래서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색다른 앵글과 느낌을 찾았다. 미세한 셔터 소리에도 새들은 (야속하게) 푸드득 떠나버렸다. 그 새를 쫓아 날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패러모터를 찾게 된 이유다.”

패러모터는 선풍기처럼 생긴 것을 등에 매고 날 수 있는 장치다. 당시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대출 받아 장비를 구입했고, 청주 무심천변에서 처음 날았다. 장비는 간단하다. 분해해서 차에 싣고 다닐 정도로 부피가 작고 혼자서도 운용하기에 편하다. 평지에서 모터의 힘으로 이륙해서 촬영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하늘을 직접 비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자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몇몇 선배 분들이 무선동력장치를 이용한 항공사진 촬영은 있었다. 연합통신사에서 운용했던 ULM 기종을 조종했던 기자가 있었고, 한국일보 고명진 부장 등이 모형 비행기를 이용한 항공촬영을 시도했다. 이때는 드론이 본격 출시되기 전이다. 지난 2009년 시작한 비행은 어느덧 100회를 넘었다. 한번 비행하면 1~2시간 동안 하늘에서 ‘새’가 돼 머문다. 몇 번은 동력이 불시에 꺼져 위험천만한 경험도 했다. 초보자들이긴 하지만 종종 비극적인 사고 소식도 들린다.”

우 작가는 지역의 변화를 사진에 담기 위해 고향 창공 위를 날았다. 지상에서 느낄 수 없는 고향의 원형질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땅의 속살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땅의 변화가 보인다. 다큐 사진은 순간의 미학을 담는 것이기에 ‘찰나’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훑어보는 시각은 ‘찰나’를 넘어 지속적인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보도사진이라고 하더라고 그는 피사체에 철학적 담론을 담고자 했다. 사진을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행을 통해 얻은 항공사진은 신문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우 작가는 과거 항공사진을 찾아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했다. 다시 같은 높이, 같은 장소를 찾아 변한 모습을 만들어 과거와 현재의 변화한 모습을 기록하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세종시(행복도시) 건설 모습, 4대강 파괴 현장은 생생한 기록화로 남아있다.

“겨울에 번식하는 부엉이를 찾기 위해 눈 오는 날 절벽지대를 돌아다니고, 흰목물떼새의 모습을 찍으려고 푹푹 찌는 텐트 속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했다. 비 오는 날, 호반새를 찾아 온 산을 돌아다닐 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새 사진을 촬영하다보니 새의 눈높이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새의 자유로움도 부러웠다. 하늘을 날면서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를 찍고 싶어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높이였다. 그 높이는 희망의 높이, 꿈의 높이였다. 땅 위에서 카메라를 들면 큰 것만 눈에 띤다. 작은 것은 안 보인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면 모든 게 작게나마 한눈에 보인다. 또 추하고 악한 세상보다는, 아름답고 깨끗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육지에는 '길'이 있다. 누군가 닦아놓은 길은 따라서 가는 길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길이 없다. 비행기는 항로가 있지만, 새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바로 길이다. 산을 넘고 싶으면 산을 넘는다. 강의 살갗을 아슬아슬 느끼고 싶으면 저공비행을 한다. 인간이 새와 가장 가까워 질 수 있는 방법,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패러모터의 매력이다.”

우 작가는 사진기자로 활동할 당시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중 ‘송골매의 킬러본색’이란 사진에 애착이 많다. 지난 2006년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서 찍은 매 사진이다. 비둘기를 잡은 매가 넘실대는 파도를 배경으로 모래톱에 앉아 있다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찍었다. 이 사진이 한국사진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은 물론 2007년 생태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때 ‘하늘다람쥐의 외출’이라는 사진도 우수상을 받는 등 생태사진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2009년엔 한국사진기자협회의 ‘보도사진전’에서 ‘흰꼬리수리의 결투’로 네이처 부문 최우수상도 받았다. 또한 20~30차례나 연재하는 굵직한 기획시리즈로 세간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히말라야를 취재하고 르포기사도 직접 작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사진기자는 기자이자, 작가’라는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울퉁불퉁, 색다르게 사진기자의 삶을 살았던 계기는 뭐였을까.

지난 2006년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서 찍은 매 사진. 한국사진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은 물론 2007년 생태부분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희철 사진작가 제공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온 이모부가 카메라를 물려줬다. 이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는 사진기 가진 집이 많지 않았을 때라 주변 사람들 애경사에 많이 불려 다녔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일까. 자나 깨나 카메라를 안고 살았다. 이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좀 더 심도 있게 사진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엔 산악회 선배의 사진 작업실에서 흑백사진을 배우면서 더 깊숙이 발을 들였다.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 중에 신문사에 다니던 형의 권유로 사진기자 시험을 봤다. 20년 넘게 ‘신문 밥’을 먹게 된 시초다. 하지만 사진기자가 힘든 직업군이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 없으면 사진으로 기록을 할 수 없기에 시공간을 뛰어 넘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람이 큰 만큼 고충도 컸다.”

그는 신문사 5년차까지 수시로 회의감과 상실감에 빠지곤 했다. 매일 비슷한 행사나 날씨 스케치 등 신문 지면에서만 쓸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에 염증이 났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00년 충북지역 산악인들과 밀레니엄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원정등반에 참여하게 되며 제2의 삶이 시작된다.

“아내가 첫애 임신 8개월 정도 된 때였다. 돌이켜보면 욕심이 많았다. 한 달간 출장을 받아서 떠났는데 결국은 두 달을 다 채우고 돌아왔다. 첫 아이 출산 4일전에 귀휴했다. 다행히도 출산이 예정일과 딱 맞았다. 세계 최고봉을 취재하고 온 이후 세상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더 큰 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가장 추웠던 2001년 1월에 사표를 냈다. 더 큰물에서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스펙이 필요했다.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 포토저널리즘에 진학해 제2의 사진공부를 시작했다.”

우 작가는 사진을 ‘기록’의 관점에서 본다. 시간을 정지시켜놓는 가장 정확한 자료이자 지나간 세월을 정확히 알게 하고, 훗날 많은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사진은 누구나 잘 찍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현장에서 찍었는가, 그것을 기록에 남겼느냐의 여부다. 하지만 삶은 ‘가치의 진실’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막상 대학원을 나와 보니 묘한 ‘지점’에 서 있더라는 것이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에도 나이가 찼고 경력도 애매해 여러 가지로 불리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다시 신문사 사진기자의 길로 회귀했다. 이때부터는 보도사진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반복되는 신문사진이 아니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사진을 갖고 싶었다.

“문화일보 김연수, 세계일보 이종열 선배가 롤 모델이 됐다. 부산 국제신문 박수현 기자, 한라일보의 강희만 기자 등도 생태사진을 하는데 큰 힘이 돼준 동료였다. 특히 생태사진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생태다큐멘터리 작가인 김수만 선배였다. 당시 MBC다큐멘터리 ‘현충의원의 봄’ 프로그램 촬영 당시 자주 찾아가 새의 생태와 촬영에 대한 노하우를 익혔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백운기 박사, 천부적인 새 전문가인 이영석 씨의 도움도 컸다.”

그는 현재 라오스에 살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 라오스로 이주를 했다. 처음엔 물설고 낯설었던 이국땅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처음엔 그냥 라오스를 알기 위해 지냈고, 언어를 배운다고 학교도 다녔다. 라오스국립대학교 안에 라오어를 배우는 ‘삐끼암’이라는 1년 짜리 언어과정이 있다. 한국의 세종학당 같은 것으로 중국, 베트남, 한국, 캄보디아 등 외국인들이 라오어를 배우거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코스다. 2014년 9월부터는 민박집과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해봤다. 이때가 가장 즐거우면서도 어려웠던 때로 기억된다. 그러면서 여행업을 알게 됐다. 지금은 트레킹, 자전거, 오지, 봉사 관련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여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만큼 고객층은 얇은 편이다.”

라오스에 처음 갈 때는 아들 교육, 제2의 인생 이모작이라는 식의 여러 구실을 댔다. 그런데 사실은 ‘도망’이었다. 차마 지금은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지만 같은 직종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너무 컸다. 환멸이었다. 결국 그걸 이겨내지 못해 라오스로 떠나게 됐다.

“2011년 8월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이준우 교수와 취재를 갔던 것이 라오스와 첫 인연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세 번을 더 다녀왔다. 당시 취재 내용은 해외조림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 이렇게 다니면서 라오스와 묘한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급하지 않은 라오스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우 작가는 라오스에서 여행업을 하며 ‘산악 트레킹’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5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서 KBS2 영상앨범 ‘산’에 라오스 산을 소개했다. (2015년 영상앨범 산-라오스 푸카오쿠아이 국립공원 https://www.youtube.com/watch?v=-yi-BB05CZA, 2019년 영상앨범 산-라오스 방비엥 정글트레킹:정글 넘어 칼산 https://www.youtube.com/watch?v=MUGYYj5u31s)

“첫 산행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다녀온 계룡산이다. 대전시립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 2명과 함께 신탄진에서 버스를 타고 동학사에 갔다. 동학사-남매탑-갑사로 넘어갔다가, 다시 갑사-연천봉-은선폭포-동학사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첫 산행치고는 꽤 긴 거리였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푸근했다. 대전역에서 먹었던 자장면 맛을 잊지 못한다. 본격적인 산행은 대학 때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사촌형과 같이 간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모습을 보고 대학에서 산악회 활동을 했다. 공부보다는 산악부가 우선일 만큼 심취했다. 2000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2007년 청소년오지탐사대, 2011년 청소년 오지탐사대 등 히말라야를 세 번 다녀왔다.”

그에게 산은 도전이고 개척이다. 어찌 보면 라오스로 간 것도 개척이란 의미로 볼 수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아무나 갈 수 없는 길, 아무도 보지 못한 길을 찾아 나서는 ‘방랑’이 개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작고 소소한 것 사이에서 개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산’이라는 거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 작가는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라오스에서 살며 정리한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문지리서다. 틈틈이 찍었던 사진과 함께 불교, 문화, 경제, 지리 등 라오스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출판을 앞둔 책의 일부는 현재 충청권 뉴스매체 ‘미디어붓’에 연재되고 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사진과 풍경들을 오롯이 담을 예정이다. 그동안 출간된 책들과 다른 게 있다면 부정적인 이야기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라오스 책들은 미소의 나라, 순수의 나라, 힐링의 나라 등 아름다움만 나열해놨지만 출간 예정인 책에는 안 좋은 경험이나 기억, 라오스 사회문제 등도 다뤘다. 없는 이야기를 포장하지 않고, 그냥 보이는 것과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우 작가를 보면 ‘다름’과 ‘틀림’의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사진기자로 살면서 다른 시선을 가졌고, 여행 작가를 하면서 다른 관점을 가진 그다. 틀린 삶이 아니라, 다른 삶으로 향하는 ‘이카로스’의 꿈이 느껴진다. 일단 물 흘러가는 대로 살겠다는 우 작가는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가보겠다고 했다. 물은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르지, 다시 높은 곳으로 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라오스 사진전도 계획돼 있다. 한국에 라오스를 알리고, 라오스에도 한국을 알리고 싶어서다. 머나먼 이국땅 라오스에서 ‘굿모닝’을 외치는 개척의 달인은 지금도 ‘높은 꿈’을 향해 하늘을 향해 비상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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