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를 생각하며 ‘소확행’을 떠올린다
마누라를 생각하며 ‘소확행’을 떠올린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11.17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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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떠올린다. 과연 행복한지 자문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선뜻 3초 내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해 ‘같기도’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이는 ‘행복’에 관한 확실한 정의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꼼수다. 다만 여러 가지 단어가 행불행의 행간에서 조심스럽게 진실을 찾아가려고 발버둥 친다. 대부분 고갈, 핍진, 결핍, 상실, 부족, 도피, 절벽 등 외통수에 가깝다. 그래서 더하고 빼고 나눌 게 없다. 장삼이사들은 ‘인생에서 친구 셋만 건져도 성공했다’고 거들지만 이 또한 난센스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남는 건 불투명한 결론일 뿐이다.

▶여보, 당신, 자기, 부인, 임자, 와이프, 안사람, 집사람, 마누라, ○○엄마….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 이렇게나 많다. 하지만 애칭이 별칭으로 바뀌는 순간 아내는 ‘야, 이봐, 어이~, 거기~’로 전락한다. 그나마 여보는 낫다. 은근하게 존중의 뜻을 비치는 ‘여보’는 ‘여기 좀 보시오’에서 나왔다. 굳이 한자로 표현하고 싶다면 如寶(여보:보배처럼 소중한 사람)로 쓰면 된다. 또 당신(當身:마땅할 당, 몸신)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내 몸과 같다’는 뜻이니 퍽 괜찮은 애칭이다. 외국에선 베이비(baby), 허니(honey:벌꿀)처럼 달달한 애칭이 단골이다. 남편을 뜻하는 허즈번(husband)은 ‘집을 묶는 사람’, 와이프(wife)는 ‘피복을 짠다’는 의미다. 남편은 틀을 만들어 주고, 아내는 그 틀에 무늬를 넣어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누라는 마립(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두머리(頂上)를 뜻한다. 하지만 ‘마누라’를 ‘마주 누워 자는 여자’, ‘남편과 같이 못 있고 마루 밑에나 있는 여자’, ‘마주한 누나’, ‘마, (이제) 누우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우스갯소리다. 호칭은 언필칭 딱 ‘중간(무례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이어야 좋다. 아무리 ‘님’을 100개 갖다가 붙인들 존경심이 없다면 그건 ‘님’이 아니라 ‘남’이다. 부부란 긴 세월 함께하다보니 얼굴 표정까지 닮는다. 울고 웃고 표현하는 감정방식이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식성과 생활습관이 같아져 병까지 닮는다는 연구도 있다. 부부는 100점과 100점이 만나는 게 아니라 50점과 50점이 만나 100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자기’는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마누라’는 한없이 사람스럽다. 그래서 감정을 무장해제 시킨다. 사랑이 변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변하는가.

▶어느 날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미술심리치료법인데, 당신이 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이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빨강’이라고 답했다. 한참동안 답신이 없었다. 질문에 대한 ‘해답지’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주황은 애인 같은 마누라, 노랑은 동생 같은 마누라, 초록은 친구 같은 사람, 파랑은 편안한 사람, 남색은 지적인 여자, 보라는 섹시한 여자’였다. 그런데 빨강은 ‘그냥 마누라’였다. 나중에 주석(註釋)까지 달렸다. 남편들에게 물어보고 ‘빨강’이라고 답하면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랬다. 마누라는 어느새 ‘그냥 마누라’가 돼있었다. 최소한 애인 같은 마누라는 아니어도 친구 같은 사람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이 늙어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소확행’에 대해 얘기하며 구구절절 변명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치환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가끔 ‘오감(五感)의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살아있다면 분명 행복한 것이다. 만약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쓰고 맵고 달디 단 귓속말을 들을 수 없고, 처마 스치는 빗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귀가 뚫려 상대의 소리를 알아듣고 반응한다는 자체가 행복이다. 후각과 미각, 촉각은 어떠한가. 이러한 감각들은 소소하나 강력한 각성과 마성을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행복의 근원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볼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한 발 한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눈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 가고자 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볼 수 있어 가능한 것들이다. (물론) 다 좋은 말씀이긴 한데, 오감에 대한 고마움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욕망의 거세’란 그만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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