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꽃피운 한국인 詩 "자유 영혼으로 살면 詩가 되죠”
인도네시아에 꽃피운 한국인 詩 "자유 영혼으로 살면 詩가 되죠”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12.08 15: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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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시인 지상(紙上) 인터뷰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 시(詩) 61편 번역본 출간
자카르타서 출판기념회…반둥 인니교육대서 북토크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 번역본인 '야자수 성자' 시집을 발간한 최준 시인. 최준시인 제공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 번역본인 '야자수 성자' 시집을 발간한 최준 시인. 최준시인 제공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인니)를 대상으로 한 시(詩) 61편이 단행본으로 발간돼 화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2007년) 수혜작인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를 냈던 최준 시인은 11월 29일 자카르타 암바라 호텔에서 번역본인 ‘야자수 성자:Orang Suci, Pohon Kelapa)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후 두 차례(한-인니문화연구원·반둥 인도네시아 교육대학교)에 걸쳐 북토크도 열었다. 해외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최 시인과 지상(紙上) 인터뷰를 가졌다.

-시인에게 시(詩)란 어떤 의미인가.

“사람이란 자고로 자연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 어떤 시는 짧은 시간에 쓸 때도 있다. 시는 손으로 쓰고 소설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시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영감이라는 것이 가슴속에 들어있어 머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난 머리가 나쁘다. 좋지 않다. 그래도 시가 된다. 여러분도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시가 된다.”

-이번 시집은 어떻게 내게 됐나.

“한국에서 60편 정도 썼다.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살면서 나같이 게으른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하하) 마치 방학 숙제를 안 하고 있다가 이틀정도 남겨놓고 후다닥 해치우는 것처럼 시도 그렇게 벼락공부 식으로 쓴다. 스릴이 있다. 간절하면 써진다. 난 시집을 발간하고 쓸 때 커다란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걸 좋아한다. 우연히 한 편씩 생겨난 시들을 모았다가 시집 내는 걸 싫어한다. 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매번 선택해서 쓴다.”

-언뜻 보면 가학적 난센스로 보인다.

“사람들(타인)의 이마는 다 반짝인다. 희망이 보인다. 내 이마는 반짝이지 않는다. 이마가 반짝이게 잘 닦으면 희망도 안 꺼진다. 시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녀야 한다. 꺼내놓고 다니면 불편하다.”

-시인에게 인도네시아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네시아는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나라다. 문명은 몸밖에 있고 자연은 몸 안에 있다. 사람의 마음은 자연 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몸은 자꾸 문명 쪽으로 가고 있다. 문명은 몸을 편하게 하지만, 문학과 예술은 사람의 마음 쪽에 간다.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문명은 속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연은 순리를 지킨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문명에 기대 있지만 마음은 자연이기를 바란다. 그게 순명이다.”

왼쪽부터 나영순 시인, 이덕주 문학평론가, 최준 시인 모친 조원자 씨, 최준 시인 남동생 최민 씨, 신영덕 인니 한국어교육과 교수, 이전순 인니한국교육과 교수,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나영순 시인 제공

-인니사람들과의 만남에 의미가 있다면.

“배우는 사람들은 내일을 책임질 사람들이다. 인니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있는 것을 행복해해 해야 한다. 만남이란 소중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작은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재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재능인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때문에 천재성을 잘 모른다. 어쩌면 그 재능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천재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자신의 천재성과 맞는 길을 찾아가기 바란다. 문학의 길이 천재성을 확인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란 문자와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큰 문명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문명은 사람의 정신 속으로 끼어들지 못한다. 육체보다 마음과 정신을 중요시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사실, 난 한국보다 인도네시아가 더 좋다. 여기에는 큰 이유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축복받은 나라다. 한국에는 빈틈이 없다. 인니는 굉장히 넉넉한 틈이 있는 나라다. 틈이 있다는 건 여유롭다는 뜻일 수도 있다. 문명은 여유롭게 하지 못해 자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잘 산다는 것은 애초의 마음을 간직하는 일이다.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착한 마음을 가져야한다. 인니는 착하다.”

-시인에게 물질(돈)이란.

“한국은 시인이 굉장히 많은 나라다. 5000만 인구 중에 약 2만 명이 시인이다. 그런데 시인들 대부분은 가난하다.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시를 쓰면 가난하다는 게 공식처럼 돼있다. 그래서 시를 쓰고 싶어도 시인의 길을 가려하지 않는다. 가난이 눈에 보이는데 그 길을 가고 싶겠는가. 가난과 부자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을 의미하지만 세상에 흘러 넘쳐 내 주머니에 가득하다는 것은 남의 주머니를 털어왔다는 뜻도 된다. 마음의 부자는 그렇지 않다. 마음 안에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길 바란다.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를 사랑해달라. 그러면 부자가 된다.”

자카르타 반둥 인니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최준 시인 출판기념회에 현지인 80명과 한국 교민 20여명이 출판기념회 이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영순 시인 제공
반둥 인니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최준 시인 북토크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는 시적 경지를 아주 치밀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를 읽는 시적 재능이 차고 넘친다. 시말의 운용이 그렇고, 대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그렇고, 언어적 감각이 그렇고, 따스한 시인의 마음의 자리 또한 그러하다.

“시적 통찰 혹은 서정의 깊이라고 본다. 천진성 혹은 광기다. 두개의 죽음(아버지와 동생) 사이를 뿌리 뽑힌 영혼으로 유랑하면서 삶-시간-세계의 의미적 층위를 인간학으로 고양시켜 가고 있다. 이를테면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원근법적 시선으로 투시한다. 기존의 기행시가 가진 한계점들을 여지없이 논파시키면서 육화된 문화인류학적 비전들을 세세하게 기록했다고 본다.”

-시인의 시말운동은 체험의 육화과정이거나 생활세계에 내재된 존재론적 비애를 따스한 시선으로 옴쳐내는 역동성을 띠고 있다.

“동감(同感)의 순간을 보편적 정서로 끌어올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삶-시간-세계의 문양들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물론 생활세계 속에 육화된 문화적 양태는 결코 동일한 것으로 표상되지 않지만, 혹은 이슬람 문명과 한국의 문화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인의 '말길'은 문명과 문명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보편어로 가로질러 가려고 했다.”

-너(인도네시아)와 나(한국)를 우리(세계)라는 공감대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인가.

“문화와 문화를 소통시켜 헤르더(Herder)적 공감에 접근시키려한다. 인도네시아인의 삶의 양태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에 새겨진 존재론적 음영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녹아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을 속속히 들여다보고 체험하면서, 그것을 한국적인 시적 서정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언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다.”

-시인의 ‘자바섬 바나나’를 잠시 읊는다. ‘어디에나 그 여자가 서 있다. 하늘과 땅의 중간쯤에서 하늘을 조금 끌어내리고, 땅을 조금 들어 올리고 눈높이에 키를 맞추고 남편 없는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세상 건널목 다 건너온 여자의 아이들이 양말을 신지 않았다. 강이든 바다든 들판이든 집이든 슬프게 흔들리는 청파라솔 쓴 여자의 발치엔 늘 그림자가 있다.’ 다분히 관조적이고 애잔하다. 시인도 그런 시상(詩想)으로 쓴 것인가.

“문화란 눈높이가 다른 고유한 습속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에는 각각의 상이한 이해의 심급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시는 여성의 운명적 삶을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할렘 혹은 여성의 숙명.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 여성의 삶을 바나나로 비유하면서 문화 속에 기입된 존재론적 음영들을 보편의 정서로 예인하고 있다. 슬픔 혹은 기다림.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이다. 바나나는 인도네시아 여인들의 지난한 삶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주렁주렁 매달린 남편 없는 아이들이다. 바나나는 부양책임으로부터 면제된 남성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수동적인 여성의 운명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은 어땠는가.

“그야말로 광기의 나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유랑생활 내부에 두 개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은 칠흑같이 어둡고 황량하다. 아니 인도네시아는 차라리 생을 욕동시키는 강렬한 태양이 아니라, 죽음을 유혹하는 절망의 언어이다. 세상의 앞면을 화려하게 채색한 욕망의 언어가 아니라, 그 욕망을 가볍게 키질하면서 욕망 밑에 가라앉은 생에의 본질을 응시하고 있다.”

-시인의 삶을 응축한다면.

“시인이란 그 자체로 운명이어야 한다. 자고로 시인이란 운명과 마주서서 운명을 꿰뚫어 보는 마성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성 혹은 천진성. 영악하고 너무도 계산이 밝은 시인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시는 어리석거나 이단아적 발상을 가져야할 지도 모른다. 가령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을 다 꿰뚫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아예 모르겠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어렵다. 시인은 그저 시인의 이름으로 살 뿐이다.”

누군가는 최준 시인을 보고 천재성과 천진성을 동시에 겸비했다고 했다. 시를 우산 삼아, 시인이라는 업을 천형처럼 여기며 사는 모습은 자칫 지독한 집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시는 그저 일상에 쉽게 접하는 말이고 글이고 밥이다. 늘 하는 것이기에 지겹기도 할 테지만 끝끝내 버릴 수 없는 애인과도 같은 존재, 최 시인의 시는 국경을 넘어 이방인의 가슴속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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