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산다는 건
아파트에 산다는 건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12.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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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짖지 않는, 새가 울지 않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곳이란 얼마나 삭막한가. 개가 짖지 않는 것은 울타리에 갇혀있기 때문이고, 새가 울지 않는 것은 정원이 없기 때문이며, 저녁연기가 없는 것은 밥 짓는 굴뚝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오로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정(情)이란 수액이 메말라 사람들은 밤이 되면 두꺼운 분장을 벗겨내고 세포사이에 퍼지는 피처럼 흘러 다닌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급여의 숫자와 득달같이 독촉하는 카드명세서. 순진한 취객들은 날마다 통음(痛飮)하고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오롯이 토해내고 만다. 아파도 아픈 인기척이 없는 아파트. 저마다 ‘아트 아파트’라며 으스대지만 소통이 안 되니 먹통이고, 먹통이니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는 집이라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의 서식지’일지도 모른다.

▶뉴욕은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론스크, 리치몬드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탄생 배경이 이채롭다. 1621년 네덜란드 총독 피터 미뉴잇은 인디언으로부터 고작 24달러 상당의 장신구를 주고 맨해튼 섬을 샀다. 하지만 1664년 이 섬은 영국령이 되고 찰스 2세가 동생 ‘요크’에게 넘기면서 뉴욕이라 부르게 됐다. 거쳐 간 나라가 많아서였을까. 뉴욕이란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하다. 짧은 역사 속에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던 뉴요커들은 일에 미쳐 도시를 살렸다. 땀 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는 현실을 날마다 목격했기 때문이다. 뉴요커는 연예인이 옆에서 햄버거를 뜯어도 쳐다보지 않는다. 그저 함께 어울려 사는 노동자로 바라볼 뿐이다. 억만장자와 건설 노무자가 땀 냄새를 나누며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머리를 맞대고 조는 곳. 바로 뉴욕이란 도시의 얼굴이다.

▶빌딩으로 가득한 뉴욕 거리를 콘크리트 정글이라고 부른다. 뉴요커들은 뉴욕을 단순하게 ‘더 시티’라 부른다. 그들은 헝그리 정신으로 일하고 ‘본전 뽑는’ 정신으로 즐긴다. 프라다, 샤넬, 페라가모, 루이비통, 버버리, 구찌의 마케터들은 부티크 앞에서 매끈한 모델을 무기로 ‘멍청한’ 여자들을 유혹한다. 그녀들은 몸을 팔아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명품에 항복한다. 몸으로 일하고 몸으로 보상 받는 식이다.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땀 냄새가 나도록 일하지만 삶은 제대로 즐기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도 피멍 드는 하이힐과 꽉 조이는 드레스를 벗어버리고 일의 투사가 된다. 결국 뉴욕은 치열한 노동의 현장이고, 뉴요커는 그 노동으로 얻은 명품으로 호사를 부리는 두 얼굴의 도시다.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술을 마시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바르는 것에 유난 떠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었다지만 집 없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 전국에서 월세로 사는 사람은 350만 가구를 넘었다. 전국 10가구(자가 보유자 포함) 중 2가구가 월세로 살고 있는 셈이다. 지방은 월세가 전세를 추월했다. 이런 판국인데도 우리사회가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법석을 떠는가. 아파트는 ‘콘크리트 감옥’이다. 그 감옥을 사기 위해 우리는 평생 몸을 바친다. 아니, 평생을 바쳐도 그 불온한 감옥을 소유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두께 30㎝의 윗집과 아랫집에 무슨 프라이버시가 있겠는가? 30㎝의 분리공간에서 배설을 하고, 탈의를 하고, 끼니를 때운다. 저마다 낡고 정적인 삶을 살며 징징거린다. 자고 나면 아파트가 세워진다고 해서 별명이 붙은 ‘벌떡 아파트’는 지금도 부(富)의 마천루를 쌓아가고 있다. 벌떡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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