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아파하는 이유는 아파트 때문이다
국민들이 아파하는 이유는 아파트 때문이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1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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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의 푸세식 뒷간은 담장 밖 구석에 벽을 치고 두 발을 올리도록 ‘부돌’을 놓았다. 잘사는 집은 2층에 뒷간을 만들어 다락에서 싼 변(便)을 아래층에서 쉽게 모을 수 있게 했다. 재와 왕겨를 덮어 발효시킴으로써 냄새를 약화시키는 지혜도 발휘했다. 궁중에서는 왕의 용변을 ‘매우’라고 불렀다. 왕실 사람들은 뒷간을 따로 가지 않고 나무와 비단으로 만든 ‘유아용 좌변기’처럼 생긴 ‘매우틀’에서 볼일을 봤다. 내 인생의 절반도 푸세식에 잠겨있었다. 다섯 번의 자취 생활 중 세 번이 재래식이었는데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가 쏟아놓은 이물질을 보는 게 무서웠다.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부지불식간에 그 ‘변탑’을 보고야 말았다. 1958년 서울 종암동에 첫 선을 보인이래 아파트는 변신을 거듭했다. 62년 마포아파트에 수세식 변기가 도입된 것은 그야말로 ‘두 다리 사이의 혁명’이었다.

▶나의 서울 셋방살이 시작은 돈에 방을 맞추다보니 재건축이 임박한 ‘고물집’이었다. 억수비라도 쏟아지면 천장에서 물이 새는 통에 대야를 방바닥에 놓아야 했다. 더더구나 조금이라도 각도가 어긋나면 방안은 온통 물 천지가 되고 말았다. 겨울엔 외풍이 어찌나 심한지 비닐을 구해서 창문에 덧대야했다. 그러다보니 집안은 온통 곰팡이로 얼룩졌고, 너무 심하다싶으면 칫솔로 문질러 제거하는 게 범사였다.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 건강문제였다. 숨통이 나지 않고, 볕이 들지 않으니 아이들 ‘광합성’이 걱정됐고 때로 감기라도 걸리면 괜한 죄책감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삥 둘러앉아 지짐이를 부쳐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는 정겨움이 있었으니 말이다. 또 고추, 오이, 토마토 등 채소들을 옥상 텃밭에 키워 이웃과 삼겹살파티를 하는 것도 큰 별사였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생활의 편리함을 주지만 정서적으론 불편함을 준다. 온도와 습도와 구조와 벽지의 색깔이 비슷하니, 삶은 다를지언정 똑같은 하루를 강요한다. 우리는 그곳에 살면서 매일같이 입원하듯 귀가하고 다시 퇴원한다. 이웃 간의 층간 소음은 잡음거리가 된지 오래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의 ‘상대성 이론’은 아파트 마천루의 폐해를 이렇게 입증한다. 고도가 높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며 고도가 1피트(30.48㎝) 높아질 때마다 10억분의 90초씩 빨리 늙는다는 것이다. 시계를 지표면에 가까이 놓으면 인력이 더 강하게 작용해 높은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 높은 고층 아파트 맨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보다는 저층에 거주해야 더 오래 산다는 얘기가 된다. ‘하늘’을 너무 지향하다보면 ‘하늘나라’ 가는 일이 빨라진다.

▶방바닥에 파스를 놓고 등을 굴려 붙이던 시인 함민복이 장가를 갔다. 충북 중원(현 충주시) 출신의 남편과 충북 음성 출신 아내다. 시인은 결혼 전 바닷가 월세 방에 살았다. 그는 으리으리한 아파트보다 월세 10만 원짜리가 행복하다고 했다. 시골의 삶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시골사람들이 놀면 ‘놀이’라 하고 도시사람들이 놀면 오락, 배운 사람들이 놀면 레크리에이션이라고 부른다. 노인들은 평생 모은 돈으로 48평(158㎡) 아파트를 사서 기뻐하지만 결국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는다. 방 네 개는 혼자 논다. 1평(3.3㎡)마다 행복의 크기가 커질지는 몰라도 외로움의 크기도 커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욕심의 크기가 커질수록 상심의 깊이도 커진다. 집은 낡고 작아도 365일 36.5도의 훈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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