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전쟁 대행사 에어 아메리카
비밀 전쟁 대행사 에어 아메리카
  • 미디어붓
  • 승인 2019.12.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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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전쟁의 중심이었던 롱쨍 비행장. 2015년 이후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된 아주 비밀스러운 곳이다. 활주로는 남아읶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비밀전쟁의 중심이었던 롱쨍 비행장. 2015년 이후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된 아주 비밀스러운 곳이다. 활주로는 남아있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베트남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인 라오스 내전은 흔히 ‘비밀전쟁’ 또는 ‘대리전쟁’이란 이름으로 20년 동안 지속됐다. 이 전쟁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비밀스럽게 시작됐고 흐지부지 끝났다. 내전의 시작은 1954년 7월 제네바 협정으로 프랑스가 라오스에서 철수한 이후다.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조약기구(The 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 SEATO)’를 창설하고 미국이 냉전정책을 펼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라오왕정의 수상인 수완나 푸마(Souvanna Phouma) 왕자와 이복동생인 수파누웡(Souphanouvong) 왕자는 ‘자유라오스운동’을 조직 프랑스를 몰아내는데 힘을 합쳤다. 그러나 자치정부-점진 독립이란 구상에 쏠린 푸마와 달리 수파누웡은 월맹과의 공동전선을 모색, 양자 간의 불화가 깊어졌다. 프랑스 철수 후 라오스는 좌우대립의 내전의 양상으로 변질됐다. 1950년 8월 수파누웡은 베트남 월맹의 지원을 기반삼아 무장단체 ‘빠테라오’를 결성했으며 이미 후아판 주 등 2개의 주를 장악했다.

미국의 후원을 받은 우익 쿠테타가 1957년과 60년에 발생했고 1958년 계획적인 원조중단으로 중도파를 자처한 푸마 수상이 일시적으로 하야했다. 라오스 지배계층인 왕실 귀족 들은 식민지배이래 서구식 생활에 물들었고 미국 원조로 유지돼 왔다. 왕실과 푸마는 중립연정을 표방했다. 1963년 푸마의 친미적인 행태로 중도파 내부의 불만이 싹텄고, 4월 암살사건 발생 등으로 빠테라오는 연합정부에서 탈퇴했다.

1970년대 몽족 왕빠오 장군이 진두지휘하던 롱쨍 비행장의 모습.
1970년대 몽족 왕빠오 장군이 진두지휘하던 롱쨍 비행장의 모습.

1964년 4월, 군부 우익세력의 쿠데타를 계기로 중도파마저 내각에서 모두 제거 당했으며, 대대적인 군비증강이 시도됐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 이후로 빠테라오는 동북지방에서 비엔티안 정부를 상태로 전면 투쟁에 돌입했다. 베트남전이 격화되면서 라오스 내전도 가열, 푸마 수상은 호치민 루트와 씨엥쿠앙 항아리평원에 위치한 빠테라오 거점들을 미군이 공중 폭격하는 데 동의했다.

1962년 7월 23일에 서명된 제네바 협정으로 라오스는 중립국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공개적으로 라오스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전면에 AID(국제개발처)를 앞세우고 실질적으로 미국 중앙정보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운영하는 민간 항공회사인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가 군작전을 수행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개입은 본격화됐고 몽족 비정규군을 빠테라오 소탕전에 투입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에어 아메리카는 1976년까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국 여객 및 화물 항공기 회사였다. '무엇이든(Anything), 어디든(Anywhere), 언제든지(Anytime), 전문적으로(Professionally)'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라오스 비엔티안, 베트남 사이공, 태국의 우돈타니 등 3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이 항공사는 왕실 라오스 군대를 훈련시킨 미국 특수 부대에게 직간접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1962년부터 1975년까지 항공 아메리카는 미군을 뽑아 투입했으며, 왕립 라오군, 왕빠오(Vang Pao) 장군의 지휘 하에 있는 몽족군, 태국의 자원군 등 약 1만5000여명을 훈련시켜 임무를 수행했다.

1970년대 에어아메리카가 활동하던 롱쨍비행장의 헬기.
1970년대 에어아메리카가 활동하던 롱쨍비행장의 헬기.

라오스 북부에서 베트남으로 이어지던 베트남 공산군의 물자수송로인 일명 호치민 트레일(Ho Chi Min Trail)이라고 부르는 물자수송로를 차단하고, 베트남 공산군에게 억류된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며, 안으로는 라오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빠테라오에 대항했다.

미국은 북베트남군의 보이지 않는 지원국인 라오스를 대상으로 편법으로 전쟁을 치른 것이다.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해당국의 공산화를 막고 라오스 공산군을 괴멸하기 위해 라오스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다. 미군은 1964~73년 사이에 60만회의 출격을 통해 약 200만t의 폭발물을 투하했다. 이는 9년 동안 쉼 없이 8분에 한 번씩 폭탄을 투하한 꼴이다.

롱쨍(Long Tieng, Long Chieng, Long Cheng) 비행장은 당시 씨엥구앙(현재 싸이쏨분)주에 위치한 비행장이다. LS-20A(Lima Site-20A) 롱쨍 비행장은 1962년 CIA의 관리 하에 몽족 출신의 왕빠오 장군이 본부를 처음 설치했다. 1964년 1260m의 활주로가 완공됐고, 1966년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가 됐다. 한마디로 북베트남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비행기 출격이 가장 많은 비행장이었다. 이때 롱쨍은 인구 4만 여명이 모여 살아 라오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됐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 장소’로 묘사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950m의 높은 계곡에 위치해 추운 밤과 차가운 안개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활주로의 북서쪽 에는 카르스트의 높은 봉우리가 있다. 이곳에선 활주로와 인근의 모든 지역이 내려다보인다. 이 비행장은 1975년 2월 비행장을 지키는 전초기지가 패하고 5월 10일 더 이상 비행장을 유지하지 어려워 철수에 들어갔다. 미국 C-130 및 C-46 항공기로 몽족 군부 지도자들과 CIA 직원들 탈출했다. 남겨진 수만 명의 몽족 전투원과 난민들은 남쪽 태국으로 탈출했다.

당시 에어 아메리카가 만든 비행장은 30곳이 넘는다. 이 시기에 세워지기 시작한 비엔티안의 랜드 마크인 승리의 문 ‘빠뚜싸이’는 일명 ‘서 있는 활주로’로 불린다. 이것은 비엔티안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들어가야 할 시멘트로 건설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당시는 라오스 북부 비엔티안, 씨엥쿠앙, 싸이쏨분, 후아판 주 등에 항공 시설이 주로 위치했다.

에어 아메리카가 비엔티안에 주둔하면서 라오스 북부지역에 준 군사 전투 작전을 수행하는 많은 활주로와 항공시설을 만들었다. 이런 비행시설엔 ‘LS(Lima Site)’라는 약어를 사용했다. 롱쨍(L-20A)처럼 긴 포장 활주로가 있는가 하면 씨엥쿠앙 므앙캄에 위치했던 LS-2 산티아우(San Tiau) 같이 폭 30m 길이 240m의 작은 활주로도 존재했다. 일부 활주로는 평탄하지 않은 산 능선에 있었고 대부분의 활주로는 비포장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루앙프라방(L-54), 롱쨍(L-20A), 싸바나켓(L-39), 빡세(L-11), 비엔티안(L-08) 등 5곳은 군용 항공 작전 본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방비엥 활주로는 LS-6, 씨엥쿠앙 므앙쿤 인근의 푸케(Phou Khe 1890m) 산에 위치한 활주로는 LS-19 등으로 불렸다.

롱쨍비행장의 옛 모습은 미군이 사용했던 포탄을 통해서나마 확인할 수 있다.
롱쨍비행장의 옛 모습은 미군이 사용했던 포탄을 통해서나마 확인할 수 있다.

후아판 주의 푸파티(Phou Pha Thi, 1786m) 산꼭대기에 있는 LS-85는 일반 활주로가 아닌 레이더 기지였다. 1966년 정상 절벽부에 미 공군은 조종사들의 폭격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레이더 전술 항공 항법 시스템(TACAN)을 설치했다. 1967년 후반에 이 레이더기지는 북베트남에 대한 폭파 작전의 55%를 지시했던 중요한 기지였다. 1968년 3월 10일 벌어진 LS-85 전투는 베트남 전쟁 중 미 공군 지상전투에서 가장 큰 손실을 가져온 전투였다. 총 13명의 미국 요원과 42명의 태국과 몽족 군인들이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

라오스는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비밀 전쟁의 희생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당시의 항공기지와 시설들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라오스는 그동안 빠테라오의 중심의 활동지에 대한 관광 개발에 집중했다. 이제는 에어 아메리카를 앞세웠던 미국의 기지가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40년 동안 외부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롱쨍 비행장이 2015년부터 개방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후아판 주에 있는 푸파티 산의 경우는 오르지 못하는 절벽지대에 철재계단을 설치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리고 당시 설치됐던 활주로, 버려졌던 포탄도 이제는 관광 자원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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