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달리기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1.14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의 두 발에는 52개의 뼈와 38개의 근육, 214개의 인대가 있다. 몸 전체 뼈 206개의 약 4분의 1이 모여 있는 셈이다. 발가락들은 ‘발’로서의 개별성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는 객체로서의 보편성을 띤다. '발(足)'은 보직만큼이나 견뎌야할 고통도 크다. 딱딱한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체중의 1.5배에 이르는 충격이 고스란히 52개의 뼈에 전달된다. 발에 전달된 자극은 발목과 무릎, 척추를 거쳐 전신으로 퍼진다. 보통 1.5㎞를 뛴다면 발뒤꿈치는 땅바닥에 1000번 정도 닿는다. 42.195㎞를 뛰려면 최소 66만번을 지면과 맞닿아야한다. 때로는 오르막, 때로는 내리막, 혹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평탄한 길을 견뎌야하는 것이다. 2시간2분대의 마라톤 세계기록을 달성하려면 42.195㎞를 100m당 17초로 달려야 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에겐 전력 질주에 가깝다. 달리기란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자 '어제의 자신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일'이다.

▶달린다. 왜 달리냐고 묻는다면 그냥 달린다고 답한다. 달리기란 그런 것이다. 지구를 발로 밀어내듯 달리는 건 중력을 떨쳐내는 일이다. 처음 달리기는 러닝머신으로 시작했다. 걷기에서 달리기로 옮겨간 첫 번째 사건이었다. 러닝머신이라고 불리는 트레드밀(treadmill)은 원래 죄수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19세기 세계 전역의 교도소 수감자들은 곡물을 빻기 위해 몇 시간이고 트레드밀 위를 걸어야했다. 고된 육체노동이 탈옥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걷지 않으면 넘어지고, 뛰지 않으면 쓰러지는 기계 위에서, 인간은 걷거나 뛰며 유쾌한 고통을 즐긴다.

▶보통 성인은 하루에 2500~3000㎉를 먹는다. 숨 쉬면서 가만히 있어도 1500㎉가 쓰이고 일상적인 활동으로 1200㎉가 소비된다. 이를 덧셈, 뺄셈해보면 대략 300㎉가 몸속에 쓰레기로 남는다. 하루 밥 한 공기에 해당하는 여분이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을 경우 한 달에 1㎏이상의 살이 찐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1만보’가 바로 300㎉를 잡는 특효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심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고로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얘기는 뛰지 않겠다는 변명이다.

▶걷기와 달리기 초심자였을 때는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욕심 없이 달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세 켤레의 밑창을 갈았다. 그 바닥이 닳은 만큼 근육의 질은 두꺼워졌다. 두발로 느끼는 법을 터득하고서야 귀찮아지지 않았고, 살균된 육체의 냄새가 좋아졌다. 달리면서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걸을 때는 항상 한발이 지면에 닿아있지만 달릴 때는 늘 한발이 지면에서 떨어진다. 한발 앞에 다른 한발을 놓는 식이다. 우리가 달리는 건,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단지 세상 안에서 달리고 싶은 것이다.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 것이 달리기다. 달리기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고통스럽게 고통을 앓는 것. 그리고 알아가는 것. 인생 밑바닥에 깔려있는 고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씹는 것. 고통은 동시에 자기 치유를 관통한다. 어둠을 끄집어낸다. 답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답인 것처럼,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소외의 고통을 잊는다. 모든 것을 해결한 다음에 걸음을 걷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걸어보겠다는 집념이다. 첫걸음을 통해 지나온 발자취를 묵상한다. 과거는 뒤에 남겨진 흔적이기에.

▶달리는 일은 적어도 침묵의 시간을 부여한다. 걸을 땐 누군가와 말하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엔간한 사람들이라면 뛰는 동안 완상(玩賞)이나 수다의 여유를 부릴 짬이 없다. 온정신이 맥박에 쏠린다. 마음이 진공상태가 되는 것이다. 달리기 땐 생각이 걷는다. 반대로 걸을 땐 생각이 달린다. 좀 더 샤프하고 민첩하게 정리정돈이 된다. 걸음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달림으로써 생각을 첨삭한다. 하루 중 이때만큼 정리정돈이 잘되는 시간도 드물다. 뻐근한 경련, 회복을 반복하며 강해진다. 집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따르듯이, 달리기는 즐거운 윤회(輪廻)다.

▶인생은 레이스다. 뛰기 싫어도 뛰어야한다.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하다. 멈추면 끝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것도 없다. 제자리서 뛸 수는 있어도 시간은 잡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달리기다. 인생의 종착지가, 한 걸음에서 시작되듯 걷고 뛰며 정거장을 채워간다. 가장 절망스러울 때, 가장 절박할 때 멈추지 않음으로써 ‘초심’을 복기하는 것이다. 이건 절망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일 뿐이다. 셸위런(Shall we run)?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