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에도 손대라더니 ‘이것이 검찰개혁의 요체인가…’
살아있는 권력에도 손대라더니 ‘이것이 검찰개혁의 요체인가…’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01.10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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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방사우]대통령이 뽑아놓고 대통령이 부랴부랴 ‘칼질’
윤석열 라인 변방으로 쫓고 친문검사 포진…검찰 항명 VS 대학살 논란
1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검찰 인사를 두고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연합뉴스
1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검찰 인사를 두고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연합뉴스

싹 걷어냈다. 표가 나도 너무 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비리사건과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울산 선거개입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참모들 모두가 한직으로 좌천됐다. 그 자리에는 이른바 친문(親文) 검사들로 채워졌다.

뭐가 그리 성급했을까.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 인근까지 바짝 다가오자 두려웠던 것일까. ‘윤석열 수족 자르기’로 표현되는 이번 인사는 ‘검찰 대학살’로 불린다. 조국 전 장관 일가 비리의혹 수사를 비롯해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수사 등 전국의 특수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으로 쫓겨났다. 울산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지방검사장 중 가장 말석으로 꼽히는 제주지검장으로 갔다.

윤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검찰의 입장을 알렸던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으로 밀려났다. 이 부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면 조사했던 특수통 검사다. 대검 서열 2위였던 강남일 대검 차장은 대전고검장에,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 차장에 임명됐다. 이두봉 대검 과학수사부장도 대전지검장에 임명됐다. 윤 총장과 가까워 ‘소윤’이라고도 불렸던 윤대진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밀렸다.

윤 총장 측근이 물러난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 참여정부 인사로 채워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는 사실상 현 정부를 수사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라고 말한다. 전임자가 수사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받은 것이 뻔한데, 어떤 후임자가 적극적으로 수사 지휘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윤 총장은 야당이 뽑은 게 아니라 대통령이 뽑았다. 박근혜 정부 때 권력에 대한 수사로 좌천됐던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면서 ‘국정농단 수사의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지난해 7월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는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윤 총장이 막상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자 미운 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물먹은 검사를 고속 승진시켜 검찰총장까지 시켜줬는데 당신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투였다. 결국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다가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내쳐지는 신세가 됐다.

윤 총장의 실수는 대통령의 말을 너무 믿었다는데 있다. ‘청와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으면 수사하라’는 그 말을 믿고 직진한 게 잘못이었다. ‘추다르크’로 불리던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총장이 내 명(命)을 거역했다’며 조선왕조시대 어투까지 쓰고 있다. 무소불위다. 지금쯤 청와대나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제 발로 검찰을 떠났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하지만 버텨내고 견디면서 수사를 끝마쳐야 한다. 그게 검사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다.

당장은 문 대통령의 권력이 이겼다.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다. 그때는 ‘권력의 충견 노릇만 하는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이번에 통과시킨 법은 ‘검찰이 권력에 덤벼들지 못하게 하자’로 바뀌었다. 검찰개혁, 검찰개혁을 외친 것이 결국 이런 거였나 싶다. 몇 달 후면 공수처가 공식 출범한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검경 수사의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 청와대의 울산 시장 선거 공작, 유재수 감찰 비리 중단 같은 수사를 모두 공수처로 가져와 ‘삭제’하면 끝이다.

지난 1973년 10월 20일, 닉슨 미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전격 해임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분수령이 된 ‘토요일 밤의 학살’이다. 법무부 장관은 ‘콕스 해임안’을 거부하고 사임했고, 법무부 차관도 뒤를 따랐다. 닉슨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내몰려 중도 사퇴하게 된 건 워터게이트 호텔에 소재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도청한 본안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정권 핵심부로 좁혀져 오던 수사를 막으려 수사팀장을 해임한 사법방해 혐의가 결정타였다.

이번 사건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의 문제도 더더욱 아니다. 본질은 정권 범죄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핵심부를 권력이 통째로 들어냈다는 거다. 과연 이것이 검찰개혁의 함의인가. 독 오른 ‘윤석열’을 패싱하고 자신의 식구들로 채워 넣는 것이 개혁인가. 정권 입맛에 맞지 않으면 누구라도 잘릴 수 있다는 암시는 섬뜩하기만 하다.

지금쯤 ‘의혹의 종합세트’ 조국(전 법무장관)은 웃고 있을 것이다. 대선 댓글 조작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김경수(경남지사)도 웃고 있을 것이다. ‘정권의 시한폭탄’ 송철호(울산시장)도 뒷방에서 웃음을 참고 있을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 못하고, 사법부마저 대통령의 입을 쳐다보는 형국에서 대한민국은 ‘참’과 ‘거짓’이 사라진 권력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절대 권력이란 없다. 거짓 충성경쟁과 환관정치는 몰락을 부른다. 혁명 뒤에 등장하는 정권이 이전 정권보다 꼭 나으라는 법은 없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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