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팩트(fact)다’
‘역사는 팩트(fact)다’
  • 나인문 기자
  • 승인 2020.01.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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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설 연휴 극장가에서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단연 흥행을 주도했다. 이 영화의 원작은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가 쓴 논픽션물로,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펼쳐진 공작정치 전반을 다뤘지만 영화는 ‘박정희 독재’를 끝낸 10·26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전율을 느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행태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 또 하나는 비단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조직문화에도 어김없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배신의 아이콘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영화에서 김규평(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역, 이병헌 분)이 묻자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박정희(이성민 분)가 답한다.

박통의 의중을 묻는 박용각(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역, 곽도원 분)을 비롯한 부하들에게도 입버릇처럼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곧바로 뒤통수를 내려치는 그의 행태에 소름이 돋았다.

필자가 청춘을 바쳤던 신문사 오너의 행태와도 너무도 닮은꼴이어서 구역질까지 났다.

오히려 계엄사령부 합수단장을 맡았던 전두환의 입을 통해 곽상천(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 역, 이희준 분)과 충성경쟁에서 밀려나자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한 못된 놈으로만 세뇌됐던 김재규에게 일말의 동정심마저 생겨났다.

“나는 10. 26혁명의 처음이요, 끝이요 전부입니다. 오직 나의 책임인 것입니다. 재판부 여러분께서는 이 사건의 성격 자체와 역사적 관점에서 심판해 주십시오. 아무쪼록 법률조항에 매달리지 마시고, 내 부하와 불쌍한 가족들을 각별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독재의 사슬을 끊어낸 김재규가 형장이 이슬로 사라지기 전 최후진술을 통해 부하직원들을 살려보려 했던 처절한 절규가 묵직한 울림을 전해줘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어쩌면 좋냐? 박정희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대.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다냐?”

1979년 10월 26일 밤 7시40분경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통이 살해되자, 필자의 어머니가 저녁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했던 그 말이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니 하는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두환이 김재규를 처단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스스로 청와대의 주인자리를 꿰차고 박정희 독재보다 더 참혹한 독재를 자행했다는 점이다. 총으로 집권한 박정희가 총으로 암살당하고, 유신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전두환이 총으로 정권을 유지했던 역사의 수미상응(首尾相應)이 아직도 충혈된 눈으로 세상을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고(故) 이병주 선생은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말했다.

의미심장하게도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80일도 채 남지 않는 시점이다. 박정희 시대의 종식을 고한지 41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정치는 몇 발짝이나 나아갔을까 생각하니 회의감마저 든다.

기이한 역사의 인과가 반복되면서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섬뜩한 기시감(旣視感)이 가슴을 저민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늘 새로운 세상을 외쳐왔지만 무엇이 변화했는지 알 수 없는 먹통 같은 정치가 국민의 가슴을 시리게 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국민을 세뇌해 몽매(蒙昧)한 백성으로 만드는 역사의 끝은 부메랑으로 다가와 반드시 응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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