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섬기고, 독자를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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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0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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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feel-창간 특별인터뷰]'충청 큰 어른’ 염홍철 전 대전시장

인간성 상실의 시대, 어른다운 어른들이 사라지고 있다. 어른의 행불(行不) 사태는 사회 구성원들의 불협(不協, Dissonance)과 공동체 붕괴를 의미한다. ‘어른다움’에서 ‘어른’만 남고 '다움'이 빠지면 사회를 이끌어갈 알고리즘(algorithm)이 혼돈에 빠지게 된다. 과묵하나 곧은 소리를 내고, 거침없으나 관용을 베푸는 일, 그것이 어른다움의 본질이다. 포용과 상생의 리더십을 통해 ‘충청의 큰 어른’으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염홍철 전 대전광역시장을 만나 시대가 던진 철학적 사유와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 사진=미디어붓DB
염홍철 전 대전시장. 사진=미디어붓DB

-지역의 큰 어른이라 불리고 있다.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글쎄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은 아니다. 난 ‘지역의 어른’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 또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 다만 지역 원로들이 네트워킹이 되어 지역문제에 조언을 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40년 공직생활을 함축한다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공직자의 자세에 맞는 적절한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일할 때는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고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성심이 없으면 더욱 그렇다. 난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할 때 상식과 순리를 존중했다. 요령보다는 원칙을 지켜야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다. 물론 아쉽거나 후회되는 점도 많다.”

-10년 시장(市長) 재임을 포함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시민·공직자들이 많이 협조해줬고, 운도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임명직 시장으로 ‘대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2조원 가까이 투자 받았다. 대전발전을 10년 이상 앞 당겼다는 평이다. 기억에 남는 일은 정부3청사의 대전 이전, 과학비즈니스벨트의 대전 유치, 문화예술의 전당,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평송수련원, 예술가의 집, 시립연정국악원 등 문화예술 인프라를 기획했거나 착공한 점이다.”

‘엑스포 시장’으로도 불린 그는 사회적 자본 확충의 일환으로 시작한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안착시켰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시민대학을 비롯한 평생진흥원도 설립했다.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복지만두레는 어땠는가.

“복지는 정부의 책임이지만 정부 만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복지만두레 같은 민관협력 모델을 만들어 민관 복지자원의 투입을 확대시켜야한다. 이는 공동체문화를 새롭게 형성하는 일이다. 복지만두레를 통해 어느 정도 실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어느 시장의 브랜드’라며 소극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

-‘익사이팅(Exciting) 대전’도 히트를 쳤다.

“시민이 즐거워야 도시가 발전할 수 있다. 즐거움을 느끼려면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 등이 활성화돼야 하고 손쉽게 감상할 수 있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소소한 공원을 많이 만들어 쉴 수 있게 해야 하고 다목적 체육관, 하천 도보길, 산책길, 둘레산길 등을 조성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한다. 이런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위해 ‘익사이팅 대전’이라는 화두를 만들었다.”

시장의 지시도 옳지 않으면 거역하라 했다… 트램은 엇나간 판단

그는 포용의 리더십으로도 유명했다. 모든 일은 시민중심으로 하고, 시장의 지시도 옳지 않으면 거역하라고까지 했다.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공직자들이 있어야 시정이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도시철도 2호선 기종을 지상고가의 ‘자기부상열차’로 결정했는데 노면전차인 ‘트램’으로 바뀌었다. 정책적 변화로 대전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것 같다.

“너무 아쉽다. 원래 계획대로 추진됐으면 지금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을 것이다. 1조4000억원(그중 60%는 중앙정부 부담)이 투자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설계 직전에 백지화돼 엄청난 시간과 예산을 낭비했다. 안타깝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 연속성을 강조하는 공직자들이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정부의 최종 허가까지 받은 것을 하루아침에 번복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공무원 내부나 시민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트램은 민선 6기의 공약이라고 하지만, 당선 후 시민타운홀 미팅에서는 7대3의 비율로 고가-자기부상열차가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설명 없이 뒤엎었다. 이 결정에 주무부서 공무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6기 4년 동안 트램에 대한 홍보만 했을 뿐 사업진척은 없었다.”

그는 트램이 대전 도시철도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전의 도로구조상 4거리 체계가 많아 차로 잠식에 의한 교통정체가 극심해지거니와, 대형 교통사고를 유발해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도로 2-3차선을 잠식하기 때문에 공사 중 몇 년 동안 엄청난 교통 혼란이 예상되고, 설사 개통이 된다하더라도 지상교통의 흐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해 신속성과 정시성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시-세종시는 제2의 수도 만드는 협력관계

-세종시·대전시가 제2의수도가 될 거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세종시에 대부분의 중앙부처가 포진했기 때문에 행정수도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정부3청사가 대전에 위치하고 있고 대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으로 볼 때, 대전과 세종의 기능이 통합돼야 실질적인 행정수도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는 미흡하지만 대전과 세종의 상생을 위해 더 적극적인 협력과 조치가 필요하다.”

-세종시와 대전의 상관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설정해 나가야 하는가.

“세종시는 역사와 전통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대전시는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세종시와 협력해야 상생 발전할 수 있다. 시장 재임 시 건배사를 할 때도 ‘대한민국의 대세는? 대전, 세종’이라고 했다. 단순한 건배사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웃음)”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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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市長)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선7기가 출범한 후 ‘시장에게 바란다’는 내용의 기고를 공개적으로 한 바 있다. 가장 강조한 것은 다음 재선을 준비하지 말고 10년 또는 20년 후의 대전발전을 위한 비전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민이나 공무원들보다 너무 빨리 가지 말고 반걸음정도만 앞서가라고 당부했다. 항상 뒤를 돌아 시민을 안아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고 그들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시청 내외에 이른바 ‘비선실세’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금 추상적일지 모르지만) 시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들이 대전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한다. 대전은 정신적, 학문적, 종교적으로 뿌리 깊은 도시다.”

 

시장은 시민이나 공무원들보다 너무 빨리 가지 말고 반걸음정도 앞서가라

그는 대전에 KAIST를 비롯한 19개의 대학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대학과의 협력을 주문했다. 대학의 자산을 살리고 활용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인구 감소다. 고정인구 뿐만 아니라 유동인구의 유입을 위해서 인프라와 이벤트 확대가 절실하다. 교육청과 협의해서 초중고 교실의 첨단화를 통해 학생들의 지역 유출을 방지해야한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인생 덕목은.

“‘역지사지’가 좌우명이다. 모든 문제를 상대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면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업무에 있어서는 순리와 상식을 존중하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공직을 떠났어도 글로써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공직을 떠난 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후 매일 지인이나 시민들에게 글을 남겼다. 시민들과 소통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 그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이나 앞으로의 다짐을 글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지금도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수백 명과 답글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있다.”

-페북을 보면 용서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용서에 대해서는 혜민 스님이 잘 표현했다. 용서는 배신한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정말로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신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벗어버려야 하고 또한 과거에 사로잡힌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이다. 그런 뜻에서 용서를 강조한 것이다.”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과 경제서, 에세이 등 다양한 집필 활동도 벌여왔다.

“이번에 <염홍철의 생각더하기>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머리글의 제목이 ‘어정쩡한 지식인의 자기고백’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한 독백(獨白)이라 할까. 일단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즐겁다. 나이 들면서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의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자기 위안을 얻는다.”

그는 2008년부터 지인들에게 보낸 아침편지를 묶어 <아침단상>, <다시 사랑이다(2011)>, <염홍철의 아침편지(2014)> 등을 펴냈다.

-시(詩)란 무엇인가.

“‘시’의 어원은 ‘창조하다’라고 한다. 자신 또는 상대의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순간이 있는데 시는 그 순간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시와 행정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정(市政)과 시정(詩情)사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섬긴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 또한 행정은 소통과 공감을 얻어내야 하고, 시는 공감과 일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행정과 시를 관통하는 것이 ‘정서적 공감’일 것이다.”

대학(경희대 정치학사)을 졸업한 그는 학문을 향한 집념과 열정이 대단했다. 연세대 행정학석사, 중앙대 정치학박사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성균관대, 경희대 강사를 거쳐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경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또한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수로 유학, 학문의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특히, 당시 학계의 관심사였던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치·경제발전 이론인 ‘종속이론’을 집중 연구해 ‘제3세계와 종속이론’이라는 책을 저술,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초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스테디셀러다.

-국립 한밭대 총장 재직 시 기억에 남을만한 일은.

“내가 부임할 때는 교명이 대전산업대학이었다. 공고, 전문대, 개방대의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산업대학이라는 명칭이 부합되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 사회, 인문, 예술 계열의 학과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종합대학 체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 교명부터 바꿨다. 종합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과 연구소가 활성화해야 되기 때문에 대학원을 추가로 신설했고 다수의 연구소도 열었다. 그리고 평생교육원, 영재교육원, 대학원 CEO과정 등을 신설해 명실 공히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췄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대전광역시장, 한국공항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뒤 98년 경남대로 다시 돌아가 북한대학원장을 지냈다.

-등산(히말라야), 헬스, 걷기 등 운동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건강 비결은.

“연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고산병 없이 4300m를 올라갔다. 요즘은 하루 3만보씩 걷는다.(지난달 기록을 보니 1일 평균 2만8500보) 주위에서 너무 무리한다고 만류하지만 틈새시간을 활용해 걷는 것이 습관화됐다. 점심이나 저녁 약속이 있을 때 30분 이내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건강뿐만 아니라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어 좋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소수파 인생의 대명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고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진학하니까 이른바 ‘소수파’였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도 ‘촌놈’으로서 소수파를 실감했다. 지방대학의 교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학벌이나 조건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소수파였다. 다만 공직에 들어와서부터는 소수파라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소수파를 배려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웃음)”

-고등학교 때 결성한 ‘한다발’ 모임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대전 시내 여러 고등학교 남녀 학생 10여명으로 ‘한다발’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생에 걸맞지 않게 민주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통일 등을 주제로 많은 토론을 했었다. 모임을 만든 사람들은 유창종 변호사(전 중수부장)가 있고 우리 1년 후배로 강창희 의장이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는 김양희 중앙대 명예교수, 고현욱 전 북한대학원대학 총장, 허성도 서울대 명예교수, 문형식 변호사, 신영철 대법관, 송기호 서울대 교수 등이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김종수 천주교 주교, 김칠환 전 의원, 이기창 전 중도일보 사장, 송행수 변호사, 이영선·김응종 충남대 교수 등이 있고 학계, 법률계, 의료계 등에도 많이 진출해있다.”

-‘스승의 날’ 뿌리가 된 ‘은사의 날’을 전국화 시켰다.

“스승의 날 뿌리는 강경여고다.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RCY(청소년 적십자단) 활동을 했는데 1963년 가을 서울 RCY중앙협의회에 충남대표로 참석했다. 그때 강경여고를 비롯한 충남지역에서 실시하는 스승의 날(당시에는 은사의 날이었음) 행사를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다음해부터 스승의 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스트레스를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주 가는 장소는.

“유등천과 보문산을 자주 걷고 매일 시청 앞 가로수길을 걷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처럼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듣고, 걷고 그리고 지인들과 차담도 하고 식사도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어른다운 어른이 필요한 시대,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염·홍·철, 그가 걸어온 삶이 진정 울림이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있을 때나, ‘그 자리’를 떠났을 때나 항상 무변(無變)이라는 것이다. 순리와 상식을 존중하면서 마치 '미늘 없는 민낚시'처럼 세상을 주유하는 조용한 파격. 청춘보다 뜨거운 '문(文)'을 잡고 ‘비움(空)’을 낚는 처세가 지금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담담(淡淡)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답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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