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코로나, 그리고 '서민' 우린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았나
기생충과 코로나, 그리고 '서민' 우린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았나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02.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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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방사우]아카데미 4관왕 차지한 영화 ‘기생충’이 전한 이 시대 화두
백수 서민 가족 신분상승 위해 일탈하는 스토리…지금 서민들의 삶은 어떤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며 101년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도 새로 썼다. ‘기생충’은 세계 영화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딛고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영화 ‘기생충’의 근본 뼈대는 전원 백수인 서민 가족의 신분상승기이자 좌절기다.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인 이유다.

반지하 집에서 살다가 (신분) 계단을 올라 저택으로 진입하지만 결국 반지하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암전이다. 말 그대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려다가 실패한’ 기생충 인간의 얘기다. 이 영화는 부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가난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착한 흥부이지만 못된 놀부는 되지 못하는, 우리네 서민들 모습이다. 주인공 남매가 사회적인 스펙을 위해 명문대 졸업증을 위조하는 모습은 묘하게도 ‘조국 가족’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왜 가난하면 ‘X구멍’이 찢어지는가. X구멍은 눈물과 콧물을 배설하는 통로가 아니라, 가난과 부자의 끼니가 ‘양극화’를 거쳐 빠지는 수채통이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찢어지는 것이다. 풀떼기와 한숨으로 버무린 피죽이기에 피가 나는 것이다. 가난은 속살을 들킨 양 부끄러워 남들 모르게 땀 흘리는 세상의 ‘겨드랑이’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꿈일수록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희망을 가장한 절망의 정치도 그렇다. 서민정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들 부자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 340만여 가구가 혼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두 평(6.6㎡)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라면과 간장 종지를 놓고 끼니를 때운다. 이들 중 절반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이다. 청년 실업자, 알바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있는 ‘신빈곤층’만 800만 명인 세상에 서민들 삶도 ‘기생충’을 닮아간다.

'기생충'의 배경인 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외신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의 배경인 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외신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초년고생(初年苦生)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이 상투적인 말은 알고 보면 헛소리다. 고생을 해서 이루는 성취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게 백배 낫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다는 건, 계란이 바위에게 까부는 격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게 정치다. 스펙보다 열정을 가르쳐야하고, 학벌보다 여벌의 진정성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금수저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약자의 그늘이 없다. 계급사회에서 배워온 권력의 질서만이 엿보인다.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다. 밑바닥은 눈물부터 차오른다. 밑바닥 정서는 ‘금수저들’의 밥을 오롯이 떠먹이는 원심력에 근거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공적으로 돕는 게 정치다. 고로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정치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중력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심방, 우심방’에 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어야 한다. 임기가 끝나면 또 다시 선거에 도전하고 싶지 않아야 정상이다. 때문에 당연히 월급도 박하고 비정규직이어야 옳다. 절망이 지배하는 정치는 불행하다.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 신종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뒤숭숭하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염병은 특히 서민들에게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마스크 한 장 사기 힘들어서 발을 동동 구른다는 소식도 들린다. 신종 코로나를 얕봐서는 안 된다. 지난 시절, 마마(천연두)로 인해 5억 명이 희생됐다. 1300년대 중국에서 창궐한 페스트(흑사병)로 유럽의 인구 70%가 죽었다. 유럽의 각종 전염병(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이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아즈텍, 잉카문명도 멸망했다.

19세기 말 다시 나타난 페스트로 600만 명이 사망했고,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최대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1년 LA에서 에이즈 감염자가 발견된 이후 4200만 명이 감염됐으며 수만 명이 죽었다. 사스로 750명,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520명, 에볼라(C형간염 에이즈)로 1만1000명, 신종플루로 1만8000명(한국 270명), 신종 코로나로 1000명 가까이 희생됐다. 전염병은 100년, 200년 주기로 발생해 면역체계 무방비 상태의 인류를 공격한다. 70년대 후반 이래 새로 발견된 전염병만 30여종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이 전염병이다. 이는 사람의 몸보다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가난도 전염된다. 가난하면 마음이 먼저 병들고 그 다음에 육신에 병이 든다.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삶, 그 기저에는 '기생충 인자'가 있다. 춥고 배고프면 종장엔 너덜너덜해진다. 전염병이 무서운 건 누군가는 전염될 것이라는 확신, 정부의 사후 정책이 미덥지 않은 불신, 서민일수록 더 위태롭고 무방비일 거라는 배신의 삼합이 공존한다.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타던 날, 서민들의 삶이 오버랩 되는 건 ‘서민의 삶’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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