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서 33년간 헌혈 400회 달성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
대전서 33년간 헌혈 400회 달성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03.17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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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정인학 씨 헌혈 400회…대한적십자사 총재상·보건복지부장관상
헌혈 계속하기 위해 금연·절주·꾸준한 운동…앞으로 600회가 목표
헌혈 캠페인 1000회·산행 2000회도 도전…“헌혈은 사랑입니다”
400회째 헌혈로 ‘헌혈왕’에 이름을 올린 정인학 씨가 지난 1월 7일 적십자사 대전세종충남혈액원 헌혈의 집 둔산센터서 헌혈을 하고 있다. 대전세종충남혈액원 제공
400회째 헌혈로 ‘헌혈왕’에 이름을 올린 정인학 씨가 지난 1월 7일 적십자사 대전세종충남혈액원 헌혈의 집 둔산센터서 헌혈을 하고 있다. 대전세종충남혈액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로 헌혈이 급감하며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33년째 꾸준한 헌혈로 이웃에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이가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대전에 사는 정인학(57) 씨로 헌혈 400회를 기록했다.

그는 ‘헌혈왕’으로 불린다. 지난 1987년 첫 헌혈을 시작해 해마다 12회씩 헌혈한 셈이다. 한 번의 헌혈로 3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하니 어림잡아도 1200여 명의 생명을 살렸다. 정 씨는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평생 600회 헌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씨가 헌혈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자신이 갖고 있는 건강한 신체(혈액)를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헌혈은 일반적으로 만 16세부터 만 64세까지만 할 수 있지만, 만 64세까지 정기적으로 헌혈해 온 사람에 대해서는 만 69세까지 한 차례 더 연장된다.

“헌혈은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꾸준히 하게 됩니다. 주사바늘이 무서워 망설이는 분도 많은데 이 또한 처음이 힘듭니다. 하면 할수록, 남과 나눈다는 생각에 아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아요. 그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뿌듯한 생각만 납니다. 한마디로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할 수 있다는 용기, 해낼 수 있다는 용기 말입니다.”

대전이 고향인 정 씨는 어릴 적 가난과 '동거'했다. 삼성동 작은 굴다리 주변에서 친구들과 호떡을 나눠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을 만큼 배고팠고 추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헌혈 봉사를 하며 ‘혈관이나 장기조직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지만, 피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헌혈로만 공급할 수 있다. 헌혈이 중요한 이유다.

이후 정 씨는 자타공인 ‘헌혈 중독자’가 됐다. 매월 1회 헌혈의 집이나 혈액원 차가 보이면 달려갔다. 2003년 사스나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거르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 횟수가 30회 이상이면 ‘은장 배지’, 50회 이상이면 ‘금장 배지’를 준다. 정 씨처럼 300회 이상 헌혈한 사람에겐 헌혈 유공장 최고명예대장(총재상)을 주는데 전국에 200여 명뿐이다. 보건복지부장관상도 받았다. 복지부장관상은 헌혈인에게 주는 최고 훈격의 상으로 전혈헌혈 50회, 성분헌혈 100회 이상 실천한 사람 가운데 매년 전국 15개 혈액원에서 1명씩 추천해 최종 선발한다.

“처음엔 헌혈을 하며 베푼다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헌혈을 계속할 수 있는 몸을 갖고 태어나게 된 것에 감사하고, 헌혈을 준비하면서 금연과 절주를 실천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된 것에도 감사합니다. 매일 1만보이상 걷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피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건강해야 헌혈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죠.”

헌혈 400회를 기록한 정인학 씨는 오랫동안 헌혈을 하기 위해 금연, 절주는 물론 산행을 비롯해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정인학 씨 제공
헌혈 400회를 기록한 정인학 씨는 오랫동안 헌혈을 하기 위해 금연, 절주는 물론 산행을 비롯해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정인학 씨 제공

현재 대한민국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국민들의 외부 활동이 크게 위축된 데다 기업, 공공기관, 군부대 등의 단체도 대외활동을 꺼리거나 헌혈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당연히 혈액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혈액보유량은 평균 3일치에 불과하다. 0형은 2.5일치, A형 3일치, B형 3.7일치, AB형은 3.3일치로 이런 상황이 지속돼 보유량 3일 미만이면 혈액위기상황이 도래한다. 혈액 재고 단계는 1일 평균 혈액 소요 예상량을 토대로 1일분 미만은 ‘심각’, 2일분 미만은 ‘경계’, 3일분 미만은 ‘주의’, 5일분 미만은 ‘관심’으로 분류된다. 적십자사는 안정적인 혈액 보유량을 5일분으로 보고 있다.

“1시간 정도(성분헌혈의 경우) 시간을 투자하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 혈액 보유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걱정입니다. 헌혈은 혈액을 소모하는 게 아니라 다시 새로운 피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소진이 아니라 충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 몸속 혈액량의 15%는 비상시를 위한 여유분이고, 헌혈량은 7~10%로 건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헌혈을 하더라도 빈혈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죠. 식사 한 끼로도 대부분의 영양소는 금방 회복되고 면역력이 감소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금연과 절주는 물론 등산을 취미로 하고 있다. 그래서 목표가 생겼다. 헌혈 600회, 헌혈 캠페인 1000회, 등산(산행) 2000회다. 정 씨는 청년시절 산악회 산악대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아마추어 복싱선수를 하고 있었던 때라 ‘건강맨’이라 불렸다.

“헌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헌혈자와 수혈자 안전을 위해 혈액관리법이 제정돼 있어 우선 헌혈이 가능한지를 확인합니다. 헌혈기록카드와 헌혈대장도 작성해 10년간 보존하죠. 병력과 약물 복용에 관한 것도 깐깐하게 살핍니다. 실제로 헌혈을 희망하는 사람들 중 20%는 문진 및 사전 검사, 헌혈금기약물 처방, 과거 병력, 헌혈 및 검사 기록 조회를 통해 부적격 판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건강해야합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명예의 전당 대상은 올해 1만2000명가량이며 등록된 사람들은 100회 이상 3222명, 200회 이상 624명, 300회 이상 137명, 400회 이상은 55명이다. 이중 가장 많이 헌혈한 사람의 헌혈 횟수는 724회이다. 헌혈 횟수 700회 이상은 30년 이상 꾸준하게 헌혈하신 사람들만 가능한 숫자다.

“헌혈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입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자유의사에 따라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기 때문입니다. 1분마다 3.4명, 1시간마다 203명, 하루에 4881명이 수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혈액 자급자족을 위해서 해마다 300만 명의 헌혈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혈액은 살아있는 세포죠. 5일 이상 장기간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헌혈이 이뤄져야 해요.”

헌혈을 주도하던 학생 헌혈자(139만 명)가 4년 만에 22만 명이나 급감했다. 고령화로 전체 헌혈자 가운데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로 떨어졌고, 이제 45%까지 위협받고 있다. 반대로 혈액이 필요한 노인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외국처럼 헌혈이 무엇인가를 학창시절부터 인식하도록 초·중·고 교과서에 게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혈은 지금 당장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혈액 제제 사용량을 보면 국민 10명 중 1명은 연1회 이상 수혈을 받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의 가족, 나의 노후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헌혈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2초의 찡그림’이라는 헌혈 캠페인 문구가 있다. 짧은 순간의 찡그림이 누군가에게는 밝은 웃음이 된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헌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사활동, 초코파이, 적십자, 헌혈증서, 수혈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든 언제, 어디서 수혈을 받게 될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 즉, 건강할 때 헌혈을 실천하는 것은 나 자신과 가족, 더 나아가 우리 이웃 모두를 위한 생명 나눔 사랑의 실천이 된다.

33년간 장장 400회 헌혈을 해온 정인학 씨, 그가 ‘피 말리는’ 혈액부족 상황 속에서 600회를 향해 서슴없이 두 팔을 내려놓는 모습은 ‘헌혈 영웅’의 따뜻한 메시지이자 진정한 박애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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