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감을 ‘뿜뿜’했던 허세의 상징 성냥개비
근자감을 ‘뿜뿜’했던 허세의 상징 성냥개비
  • 최진섭 기자
  • 승인 2019.01.20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분이라면 누구나 성냥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위기 좋은 카페나 생일 케잌을 사면 얻을 수 있는 성냥 외에 쉽게 성냥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과거에는 성냥 한 갑도 아껴 써야하는 어렵고 고단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성냥 한 갑도 아껴야할 만큼 힘겨운 시절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냥이 생활필수품이었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추억의 팔각성냥. 사진=미디어붓DB
추억의 팔각성냥. 사진=미디어붓DB

전기가 일상화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 성냥 1통이 쌀 1되 값과 맞먹었다고 하니 당시 성냥은 정말 귀한 물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긴 어린 시절 제 기억에도 부엌에 늘 팔각 성냥이 한 통씩 있었습니다. 성냥을 쏟아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던 추억도 떠오르는군요.

당시에는 라이터가 귀해 담뱃불도 성냥을 사용해야했고, 전기가 나가면 초를 켜야 했기 때문에 초를 넣어두는 분유 깡통에도 항상 성냥이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냥은 단순히 담뱃불을 붙이고, 불을 켜는 생활용품이 아니라 멋쟁이들의 패션을 완성하는 하나의 소품으로 진화(?)했습니다. 성냥이 바바리코트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아이템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죠.

그 시절을 함께 공유했던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느와르 영화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영웅본색’! 이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죠. 빗발치는 총탄과 피를 철철 흘리는 주인공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처절하게 느껴지는 그들만의 의리. ‘영웅본색’은 그렇게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졌습니다.

지금은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한 장면들로 넘쳐나는 영화들이 많지만, 당시 붉은 피가 솟구치는 자극적인 장면들은 여성들에게 다소 혐오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에게는 그야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끓어오르게 하는 주술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특히, 중,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는 영웅본색의 장면, 장면이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빠의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성냥개비를 질겅거리는 남학생들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문난 말썽꾸러기들이 바바리코트 복장으로 등교해 교실에서 영화의 장면을 흉내 내기도 했고, 숫기가 없어 차마 친구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학생들도 아마 집에서는 거울 앞에 서서 성냥개비 좀 질겅거렸을 것입니다. 그때는 그 무엇도 ‘바바리코트와 성냥개비’라는 시대의 흐름을 대체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교실 안 한 장면이 있습니다.

학생 몇몇이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전교생의 가방을 검사하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 반 학생은 57~58명 정도 였는데, 예상하셨겠지만 우리 반 모든 학생들의 가방에서 성냥이 나왔습니다.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더 웃긴 것은 학교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몇 명의 학생들 가방에서는 성냥 한 갑이 아닌, 성냥개비 몇 개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유행을 따라가고는 싶은데 성냥 한 갑을 통째로 넣고 다니기에는 용기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선생님도 교실에서 벌어진 상황이 어이가 없었던지, 미소를 지으시고는 반장에게 모두 수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별도의 체벌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별 것 아닌 작은 성냥개비 하나도 이렇게 추억으로 되살아나니, 지나간 시간들을 그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냥개비 하나로 대동단결(?)했던 그날의 기억을 안주 삼아 오늘은 소주 한잔 해야겠습니다.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