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도 아내 앞에선 떨린다"
"레전드도 아내 앞에선 떨린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04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재필의 feel]뮤지컬 스타 남경주
남경주. 사진=미디어붓 제공
남경주. 사진=미디어붓 제공

남경주는 뮤지컬계 전설이라 불린다. 1세대 뮤지컬 배우인 그는 데뷔 37년 동안 흔들림 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탑 오브 탑이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투철하고,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다. 생의 반 이상을 무대에서 보낸 그는 많은 배우들이 롤모델로 꼽는다. 그가 뮤지컬 ‘시카고’ 공연을 위해 대전을 찾았다. 저녁6시, 대전역에서 자동차로 픽업해 충남대 정심화홀까지 이동하며 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봤다.

-왜 매니저 없이 혼자 공연을 다니나.

“기차가 빠르고 좋다. 전국 투어 공연을 자동차로 다니면 힘들다. 혼자 배낭 메고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그는 6년 만에 뮤지컬 ‘시카고’에 합류했다. 앞서 세 번의 시즌에 참여했던 그는 네 번째 빌리 플린을 연기한다. 오랜 만에 빌리 플린 역으로 돌아온 만큼 소회도 남다를 것 같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여러 일이 있었다. 당시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세 시즌을 하다 보니까 다음에 또 같은 역을 하게 됐을 때 본능적으로 두려운 게 있었다. 이미 내 근육과 머리가 그 배역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느끼지 않는데도 그냥 하고 있더라. 배우가 같은 걸 계속하면 발전이 없다. 정체돼있는 느낌이 들어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공부도 하고 교편(청운대 뮤지컬과) 생활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교편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3년 되던 해 교단을 떠났다.”

-‘시카고’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들었다.

“시카고가 만들어진 지 30년 정도 됐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세련됐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롱런하고 있는 뮤지컬 아닌가. 국내서도 14번째 시즌을 맞아 시간이 갈수록 빛 발하는 역대급 무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좋은 작품은 어느 시대에 갖다놔도 보편적인 걸 담는다. 이전엔 작품을 겉에서 봤다면 이젠 속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다. 빌리 플린은 대사가 많은 편인데, 전에는 그냥 변호사라는 태도만 갖고 자신감만 가득 차서 연기했다. 이번엔 좀 다르다. 하고 있는 대사 하나하나를 조금 더 살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예전에 했던 빌리 플린은 좀 그렇다.”

-같은 역할을 오래 하니 이제 편해지지 않았나.

“여유는 생겼지만 아주 편한 건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것들을 지킬 수 있어 좋다. 내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젠 상대방 대사와 행동을 보게 됐다. 때문에 내가 할 언행들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그는 연기를 잘하려면 내가 할 것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 나한테 하는 얘기를 진실로 보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뭔가에 의해서 나오는 거라면서.

-뮤지컬 레전드인데 무대공포증이 있나.

“대통령이 앞에서 봐도 긴장을 안 한다. 그런데 연습이 안됐거나 준비가 덜 돼있으면 공포를 느낀다. 때로는 의리 때문에 일을 할 때도 있는데,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중력이 흩뜨려지게 마련이다. 묘한 건 아내와 딸이 공연을 볼 때 여지없이 떨린다.”

그는 37년 경력에도 늘 무대 위의 자신을 경계한다. 관객들에게 본인의 연기가 진심으로 와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남경주. 사진=미디어붓 제공

-집에서는 어떤 남편, 아빠인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평범하다. 교육은 엄마가 담당한다. 자아자찬 같지만 청소, 설거지, 쓰레기 분리를 도맡아한다. 특히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집에서는 거의 휴식하는데 시간을 쓴다. 응접실서 뒹굴뒹굴하면서 와이프랑 차담(茶啖)하는 걸 즐긴다.”

그는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생선을 팔던 어머니가 좋은 건 자식 먹이려고 빼뒀다가 조려주었단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고등어·삼치·서대·민어 등 다양한 생선 조림을 먹었다. 무와 감자를 밑에 깔고 양념간장을 생선 위에 뿌린 다음,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조린 생선은 그에게 ‘고향’ 같은 요리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오리다. 반건조 상태의 가오리를 양념장해 찜통에 넣어 찌면 정말 맛있고 쫄깃쫄깃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술은 잘하는가.

“술은 외탁이어서 거의 안하는 편이다. 마신다면 와인 1~2잔정도 한다. 같은 동네 사는 친형님(남경읍)은 꽤 잘 마시는데 둘이 만나면 2병을 나눠마신다.(형이 1.5병, 본인이 반병) 후배들과 공연 뒤풀이를 해도 소주 2~3잔 마시면 끝이다.”

-형님 때문에 뮤지컬에 입문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교회 다니면서부터 형이 성극(聖劇)을 시켰고, 집안 분위기 자체가 음악적 소양을 기르는 환경이었다. 조각가 김영원 선생님의 고교 애제자였다. 맨날 작업하면서도 노래 부르고 춤추고 기타를 뚱땅거렸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가.

“맞다. 문경새재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왔고, 형은 중학교 때 상경했다.”

-호흡 잘 맞는 배우를 꼽는다면.

“최정원 씨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와서 연기하기가 편하다. 우린 뮤지컬계의 최불암, 김혜자 아닌가.(웃음) 30년 이상의 활동 중 정원 씨와는 거의 28년 같이 활동했다.”

-공연가는 지역마다 리액션(호응도)가 다를 텐데, 충청도는 어떤가.

“작품마다 다르지만 지역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얼마 전 전라도 여수를 다녀왔는데 굉장히 열광적이었다. 그런데 울산의 경우엔 다소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좋아는 하시는데 즐기는 방법이 달라보였다. 충청도는 생각 외로 열광적인 곳이다.”

-공연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늘 조그만 실수들은 생긴다. 하지만 배우가 실수를 해도 관객은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만큼 배우들과의 협연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 아이비 씨와 대사를 하는데 앞뒤 대사를 바꿔서 뱉은 적이 있다. 우린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대사를 외운 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를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싸우는 다찌마리(합을 맞추는 일)는 실수가 용납 안 된다. 실수를 하는 순간 큰 사고를 부른다. 리허설하고 또 클린업하고 또 리허설하면서 정신을 곧추세운다.”

-후진양성을 하고 있나.

“3월부터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돈 받고 하는 건 아니고) 매일 오전 7시에 모여서 탭댄스, 발레, 대본읽기 등을 공부한다. 좋은 연기자란 본인 스스로 매력을 느껴야한다. 매력 있는 사람이 될 것과 발전성 있는 배우로써의 마음가짐을 주지시킨다. 흉내 내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고 동작하라고 주문한다. 개성 있는 네 자신이 되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티베트지방의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지, 오지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자족하고 무욕하고 즐길 수 있는지를 배운다고 했다.

무대 위 맑고 멋진 남자 남경주가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배우란 몸이 악기라고 강조하는 남경주.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배우고 기름칠하고 훈련하는 그는 영원히 뮤지컬을 사랑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뮤지컬계 살아있는 화석이자 믿고 보는 배우 남경주. 그의 한 우물 장인정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남경주는

1964년 경북 문경 출생.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이자 뮤지컬 연출가다.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 수많은 수상 기록을 자랑한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했고 82년 연극 ‘보이체크’로 데뷔했다. ‘위키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카고’,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삼총사’, ‘아이 러브 유’, ‘키스 미 케이트’, ‘벽을 뚫는 남자’, ‘렌트’, ‘아가씨와 건달들’, ‘레미제라블’, ‘그리스’, ‘싱잉 인 더 레인’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