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무대가 법이고 밥이다"
"뮤지컬 무대가 법이고 밥이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0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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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feel]뮤지컬 배우 최정원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뮤지컬 스타 최정원은 무대가 법이고 밥이다. 무대로 출근해 무대서 퇴근하는 그녀는 벌써 데뷔 30년 차다. 한시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작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열정의 디바(diva).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도 최정원의 이름은 알 정도로 독보적 카리스마다. ‘죽도록 무대를 사랑한다’는 그녀를 충남 논산(건양대)에서 만나 멋진 예술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로 데뷔했으니 구력이 30년이다.

“1987년(고교 3학년) 롯데월드 예술단 1기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뮤지컬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한 눈 팔지 않고 한길만 걸어왔다. 난 무대에 서는 게 제일 행복하다. 관객과 교감하며 박수갈채를 받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나이를 먹는데도 아직까지 칭찬받는 걸 보면 잘 살아온 것 같다.”

-오랫동안 무대에서 빛나는 비결은 무얼까.

“공연하는 날은 즐겁지만 공연이 없는 날은 오히려 컨디션 조절이 잘 안 된다. 배우로서 살아온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이제 배우는 내게 직업이 아닌 삶 자체다.”

27년간 출연한 작품이 도합 30편이니 요즘 10년차 배우가 보통 30편 정도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소작(小作)에 가깝다. 그만큼 다작보다는 한편, 한편에 심혈을 기울이는 스타일이다.

-배우로서의 자부심은.

“예쁘고 늘씬하고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는 배우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죽을 만큼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나를 능가할 배우가 있을까 싶다. 그것이 자부심이다. 드라마를 한 번도 안하면서 뮤지컬 스타가 된 예는 거의 없었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역으로 객석을 쥐락펴락한다.

“공연을 본 분들이 실시간으로 좋은 평을 해주고 있다. 나이 오십에 무대에 서는 것도 좋은데 칭찬까지 받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남경주 씨가 그러던데 최고의 상대 배우라고 하더라.

“남경주 씨도 그렇지만 다른 배우들과도 호흡이 잘 맞는다. 록시 역의 아이비와는 늘 감동적인 무대를 꾸미고 있고, 김지우 씨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무척 잘한다. ‘시카고’에서 난 골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골을 잘 넣게 어시스트하는 조력자라고 보면 된다.”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시카고’를 18년 동안 공연했다. 어떤 기분인가.

“시카고를 시작할 때가 한창 물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던 시기다. 개런티도 중요하지 않고 작품만 봤다. 다른 작품들이 와도 모두 거절했다. 어쩌면 그 의리를 지켜온 게 오랜 기간 시카고를 해온 이유일 것이다. 18년 간 시카고 작품을 한 여배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없다. 또 두 역할을 번갈아 한 사람도 없다. 똑같은 작품을 오래 하면 지겹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작품을 보는 눈은 경험칙에 따라 달라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새롭다. 이제는 대본을 갖고 놀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훨씬 재미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대에 선다.”

-자기관리의 대명사다. 비결은 뭘까.

“뮤지컬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30년을 살아왔다. 아직도 무대에서 서면 떨린다. 그만큼 연습이 중요하다. 똑같은 동작을 100번, 200번 반복해야 한다. 준비를 완벽하게 하면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딱히 체력관리는 안하는데 공연만 하면 자연적으로 충전된다. 커튼콜 때 박수 받으면 에너지가 불쑥불쑥 솟는다. (다만) 저혈압이라 잠자기 전에 와인을 한잔 한다. 서른 살에 결혼했는데, 평생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산다. 이 또한 긍정 에너지의 한부분이다.”

그는 지난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탭댄스를 추다가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이후 하루 3~4시간씩 재활 치료를 받았다. 실제 다쳐보니까 비명이 나오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나왔다며 배우로서의 투혼을 상기했다.

-딸이 마흔을 넘겨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공연 때문에 바쁘게 살아,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딸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제 딸이 지금 스무 살인데 엄마같이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자기 일을 사랑하면서도 러블리하다고 그런다. 무대에서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하는 게 멋지다고. 딸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늦게 시집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족 때문에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는 일들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슬럼프는 없었나.

“슬럼프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출산 후 복귀할 때 이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살짝 위태했다.”

-수중 분만하는 모습이 TV로 방송돼 화제가 됐었다.

“배우생활을 더 오래 하려고 했다. 무대에 오래 있으려면 인공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출산을 해야 했다. 당시 서른한 살이었는데 19세 주인공을 연기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더라. 하지만 이후 슬럼프 없이 변신에 성공했다.”

-후진 양성 계획이 있는가.

“난 그 딴 거 모른다. 언제까지나 무대 위에서 살고 무대 위에서 죽을 것이다.”

-충청도 공연이 많은 편이다.

“그런 것 같다. 대전·충남·세종에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쉬고 싶은 마음은 없나.

“앞으로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30년을 해왔으니 앞으로 30년은 더 무대에 올라야 한다. 멈출 이유도, 멈출 생각도 없다. 무대가 내 인생의 전부다.”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뮤지컬 스타 최정원. 사진=미디어붓DB

-인간 최정원은 어떤 사람인가.

“부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돈이나 명예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 받을 때 행복하고, 사랑을 베풀 때 행복하다.”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는데.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타라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면 안 된다. 무대에서는 앙상블이 중요하다. 무대에서 주연과 조연은 따로 없다.”

그녀는 ‘최정원이 나오면 봐야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남길 소망했다.

-연기의 묘미는.

“어릴 때는 액션이 중요했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리액션이 재밌다. 상대방이 어떤 뉘앙스를 주느냐에 따라 웃을 수 있고 울 수도 있잖은가. 예전엔 머리로 연기했다면 지금은 가슴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대사를 외우는 게 더 쉬워졌다.”(웃음)

그녀는 ‘죽기 전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서 습관처럼 운동하고 관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가 천직인 것 같다.

“무대에서는 단역이어도 상관없다. 역할보다는 어떤 공연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연을 빛낼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 대사가 한마디 없어도 할 수 있다.”

공연을 향한 무한 사랑, 무대 위에서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가 보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성 뮤지컬 1세대 레전드, 그녀의 긍정 에너지가 30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은 그냥 ‘촉’이 아니었다. 최정원은 금세 ‘벨마’가 되어 커튼콜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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