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워커홀릭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1.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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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나를 워커홀릭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들인데 속내를 보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다. 그런데 뭐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뛰지 않고 걸었다는 점이다. 걷는 것은 느리지만 항상성(恒常性)이 있다. 반면 뛰는 것은 빠르지만 매우 유동적이다. 변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누구나 목적지를 향해 뛰고 걷는다. 하지만 막상 그 목표에 다다르면 손에 남는 건 허무뿐이다. 돌아보건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난 늘 후회를 거듭하며 살았다. 그 '후회'를 후회하기 시작한 시기는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때였다. 그때부터 그림자처럼 걷는다. 그림자는 빛을 부정하며 홀로 견딘다.

▶노동자들은 아침 9시부터 기계가 멈출 때까지 일한다. 주5일제 도입이후 일은 조금 줄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하루를 더 놀게 한 것이 아니라, 적은 돈을 받고 하루를 판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 스스로 하루를 매도한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돈을 더 받고 주6일제 근무를 자처하기도 한다. '하루'를 팔고 사는 건 마치 매춘(賣春) 같아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불편하다. 그래도 등 따습고 배부르려면 '하루'어치의 절망을 살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공부보다는 노동에 방점이 찍힌다. 일을 하면 밥을 줬고, 밥을 먹으면 일을 했다.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또 배고팠다. 뱃속에 '거지'가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일부러 거지처럼 굴어 일의 양을 줄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왜 어른들이 '뼈 빠지게'라는 관용구를 입에 달고 사는지 절감했다. 고통스러운 노동은 해가 질 무렵, 진을 다 빼고서야 끝이 났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시지푸스의 노동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이어졌다. 농활을 왔던 친구들은 평상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기타를 치며 놀았다. 왜 그 녀석들이 일을 돕지 않고 '베짱이'처럼 굴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아무튼 진땀으로 걸레가 된 내 모습을 보고 씨익 웃던 그 야릇한 미소가 잊히질 않는다. 하지만 탓하지 않았다. 그저 창피했을 뿐이다.

▶일이 지겹다는 건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시키는 일만 하면 나중에도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뇌는 그렇게 조작된다. 갈대의 노동은 그냥 흔들리는 것이다. 바람에도 흔들리고 빗방울에도 흔들리며 사념을 불태우는 것, 그게 갈대에겐 노동이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도록 하는 게 신의 뜻이었다면 신은 분명히 망했다. 해가 없어도 노동자의 밤은 환하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다. 모든 건 지나간다. 한번 왔다가는 '가불인생'의 기나긴 돌려막기는 언젠가는 끝난다. 참다운 노동의 날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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