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여행이란 익숙함과 낯섦의 요상한 거래
60. 여행이란 익숙함과 낯섦의 요상한 거래
  • 미디어붓
  • 승인 2020.05.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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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사람의 반대편에는 속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는 사람이 계속 속는다. 속는 것에도 습관이 생긴 탓이다. 속이는 데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다. 일명 트릭(trick)이다. 그런데 잘 속이는 사람이 의외로 잘 속는다.

사기꾼들은 욕망의 끝을 건드린다. 감정의 촉수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고민인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래서 맞춤형으로 접근한다. 필요하다면 학력을 속이고, 직업을 속이고, 호주머니를 속인다. 여기에 말귀 잘 알아듣는 공범만 있으면 속임수의 절반은 끝난 것이다. 사기꾼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바람잡이 효과’라는 게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촘촘히 엮은 투망질을 하면 대부분 미끼를 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바람잡이가 여러 명이면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여자의 로맨스를 노리는 사기꾼들은 누구나 알법한 전형적인 수법을 쓴다. 너무 단순한 꼼수여서 누가 그런 것에 당하냐고 떵떵거리다가 속절없이 덫에 걸린다. 사기꾼은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등 SNS를 통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SNS에 올린 사진과 글, 댓글만 봐도 상대의 취향,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기꾼은 같은 취향을 가진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욕구를 자극한다. 잘 속는다는 건 욕망이 크다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욕심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뛰어든다. 돈이 없을 때 더 잘 속는 이유다. 돈에 굶주린 사람일수록 돈을 갖고 싶은 욕망에 쉽게 빠진다.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 간에는 일정한 법칙들이 있다. ‘3의 법칙’은 알면서도 속는 경우다. 동전 앞면이 연속으로 2번 나오면 그 다음 동전은 뒷면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같다. 그럼에도 패턴은 익숙함을 낳고, 익숙함은 참 또는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기꾼은 익숙한 패턴으로 속인다. 돈을 빌리고 시기에 맞춰 몇 번 이자만 주면 믿을 만한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호한 자극에서 유의미한 어떤 것을 찾아내는 심리를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 믿는 경향)라고 한다.

또한 사람은 익숙하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이런 상황을 ‘인지적 편안함(Cognitive ease)’이라고 표현했다. 시식코너도 일종의 신뢰를 쌓기 위한 전략이다. 바자르(Bazaar·지붕이 덮인 시장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세계 전통시장) 상인도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물건 매매 전에 항상 차(茶)부터 대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에토스(Ethos·호의·인간적 측면), 파토스(Pathos·감정), 로고스(logos·논리)를 말했는데,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에토스를 꼽았다. 감정이나 논리보다 인간적인 것이 약효가 빠르다는 논거다.

불안한 사람은 미신을 잘 믿듯이 속임수도 잘 믿는다. 사람은 불안할 때 경계심이 풀어진다. 평상시 같으면 무시했을 말도, 불안할 때 오히려 귀를 쫑긋거린다. 사기꾼들은 불안요소가 없다면 불안함을 느끼도록 마음을 흔드는 방법까지 사용한다. 용한 점쟁이는 ‘바넘효과(Barnum Effect:자명한 이치)’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보편적인 묘사들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얼핏 보면 상대방을 간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느 누구한테나 들어맞는 말이다.

“음력 2월에는 봄바람에 내리는 가는 비가 목마름을 적셔 주니 여기저기 좋은 일만 생기네. 신수가 대길하므로 도처에서 구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오래 바라던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동쪽이나 서쪽으로 가시게. 그리하면 그곳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교만함을 버리면 더욱 좋아지겠고.”

딱 맞는 얘기라고 생각할 테지만 뻔한 말이다. 여름에는 물 조심하고 겨울에는 불조심하라는 얘기와 같다. 잘 맞춘다는 건 그만큼 애매하게 말한다는 뜻이다. 콜드 리딩(Cold Reading)은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상대방의 성격이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방법이다. 정반대의 방법으로 속이기도 하는데 핫 리딩(Hot Reading)이다. 상대의 정보를 사전에 몰래 알아내서 맞추는 방법이다.

썩은 애피타이저 흔들기 전략은 고객이 원하는 전세방을 형편없다고 깎아내린다. 원하는 가격대에 나쁜 물건(썩은 애피타이저)을 보여주며 비싼 물건을 파는 것이다. 반대로 보물 흔들기 전략은 비싼 모델을 쭉 보여주고 그보다 싼 가방을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싸게 느끼게 해서 파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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