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모서리는 변두리처럼 외롭지만 창조적이다
69. 모서리는 변두리처럼 외롭지만 창조적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20.08.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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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팔조리 근처. 미디어붓DB
경주 팔조리 근처. 미디어붓DB

풍광 좋은 길을 라이딩할 때 행복했지만, 사실상 변두리(모서리)가 더 좋았다. 번잡하지 않고 거칠지 않으며 배척하지 않는 느낌이 푸근했던 것이다. ‘변두리’라는 단어엔 왠지 모를 비애가 꾹꾹 밟힌다. 메인도 아니고 그 중간치도 아니고 왠지 동떨어진 가장자리. 주류는 절대 아니고, 주류가 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는 끝 중의 끝. 삶의 흠집을 안고 소외와 멸시 속에서 무소의 뿔처럼 걸어갈 수밖에 없는 순명(順命) 같은 느낌 같은 거 말이다.

변방으로 밀려난 듯한 라이더 형제가 변두리를 달리는 일은 일종의 해방이었다. 고독, 외로움, 무력감을 떨쳐내니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 변두리에 서니 그제야 사랑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졌다.

변두리는 끝을 지향하는데 그 끝은 어디인가를 되작거리다가 사라진다. 모든 것은 생겨난 이후 바로 사라짐을 향한다. 소멸하되 죽지 않는 것, 이것을 거스르는 존재는 없다. 결국 변두리는 희로애락을 통해 소멸되어간다. 어느 변두리 동네 가파른 오르막에서 바라본 석양은 쓸쓸하고 암울한 삶의 각도다. 그 빛은 자식의 눈치를 살펴가며 슬며시 스며들 듯 귀가하던 능력 없는 아버지의 등 굽은 허리를 닮았다. 포용하기 정말 힘든 무거운 희망, 간절한 소망들은 변두리에서 점화되고 변두리에서 증발한다. 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거운 짐을 지고 우회했을 삶의 꼭짓점. 그 끝이 바로 변두리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모서리

경북 경주시 강동면에 모서리(毛西里)가 있다. 지명이 풍기는 날 선 느낌과 달리, 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서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너머로 형산강이 흐르고 있다. 동쪽에는 산줄기가 뻗어 나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모서, 서당골, 소귀, 포전, 대촌, 별봉, 양지 마을 등이 있다. 모서마을은 모암산 서쪽 아래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특산물로 모서딸기와 부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변두리를 지향하면서 곡진하게 돌아서간다. 습관이다. 꽃길이 아닌 진흙길로 가면서 새 길을 열어가는 변방의 질김, 그것이 ‘가장자리’가 주는 힘이다. ‘모서리’는 왠지 ‘변두리’ 느낌처럼 외롭지만 창조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한 2007년 1월 9일, 신문들은 ‘모든 것을 바꿔놓을 혁명’이라는 그의 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술의 새로운 변곡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작은 것과 큰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시적 은유를 ‘0’과 ‘1’이라는 디지털 언어와 접목시켰다. 아이폰은 ‘모서리’를 둥글게 결정함으로써 단순함, 궁극적인 실리를 추구했다.

현대적 손목시계를 상업화한 사람은 ‘왕실의 보석상’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였다. 그는 브라질 비행사 산토스 뒤몽이 ‘조종하면서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게 불편하다’고 불평하자, 모서리를 살짝 둥글게 처리한 사각형 모양의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지금도 ‘까르띠에’ 브랜드 라인에 있는 ‘산토스’가 그것이다.

흙을 벗고 시멘트를 입는 근대풍(近代風) /호박꽃 속에서 /아기가 나던 조상의 밭은 큰 거리로 나가고 /변두리만 남아서 /대머리처럼 외로이 /등성이로 슬슬 기어오른다 /바람이 왔다가도 정둘 곳 없어 /잡초와 놀다가 홧김에 구름을 몰고 와서 /마구 깎아 낸 기슭 /뻐얼건 황소 엉뎅이에 죽으라고 비를 퍼붓는데 /도심(都心)을 태우는 불은 꺼지지 않고 /거멓게 탄다. -김광섭 '변두리' 中

모든 창조와 혁신, 새로움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시작됐다. 지구상의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몽골, 그들의 시작도 중원이 아닌 초원의 변방이었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또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가난과 기근으로 고아가 된 그는 도적의 무리인 홍건적의 두목이 되고 결국 패권을 잡았다.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도 만주족이라 불린 여진족이 세웠다. 주변인 거란족에게마저 하등민 취급을 받던 민족이다.

이처럼 나라를 세웠던 세력들은 모두 중심부 엘리트가 아니라 변방의 약체들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도 신라귀족이 아닌 개성 변두리에 있는 상인 아들이었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아주 먼 변방, 여진족과 어울려 사는 함경도 끝자락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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