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괴롭힘의 대명사 ‘다구리’…칡·등나무가 주는 교훈
73. 괴롭힘의 대명사 ‘다구리’…칡·등나무가 주는 교훈
  • 미디어붓
  • 승인 2020.09.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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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가는길.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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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칡과 등나무다. 마치 ‘다구리’처럼 여럿이 하나를 괴롭히는 형세다. 칡(葛·갈)은 덩굴지면서 다른 나무를 감아 올라간다. 덩굴줄기는 10m가 넘게 뻗어 나가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 완전히 덮어 버린다. 등나무(藤·등)도 줄기를 길게 뻗어 가지를 치면서 다른 물체를 타고 감아 올라가는데 줄기가 비비 꼬여서 엉키게 된다. 덩굴식물은 종류마다 정해진 방향으로 감는데, 중간에 억지로 뒤바꿔 놓아도 끝내 다시 원래 제방향대로 되감는다. 유전자라는 것이 명령을 내린 탓이다.

칡과 등나무가 같은 나무에 감아 올라가게 되면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이러니 덩굴이 교차하며 서로 얽히는 것이다. 덩굴손으로 거머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건을 얽고 두르며 뒤질세라 서둘러 감아 올라간다. 이런 형태를 ‘전요식물(纏繞植物)’이라 한다. ‘전요’란 덩굴 따위가 친친 휘감거나 얼기설기 마구 얽힌다는 의미다. 전요식물은 줄기의 끝이 죽 곧게 자라지 않고 좌우로 회전하며 자란다. 이렇게 감아 올라가는 식물들 중에서 칡, 나팔꽃, 메꽃, 박주가리, 새삼, 마 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오른돌이고 등나무나 인동, 한삼덩굴 등은 왼돌이다. 물론 더덕처럼 좌우 양방향으로 감는 식물도 있다.

갈등은 좌충우돌이다. 견해, 주장, 이해관계 따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다. 고부간(姑婦間)의 갈등, 세대 간(世代間) 갈등, 계층 간(階層間) 갈등은 칡과 등나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마리 풀기가 쉽지 않다. 갈등은 플롯 상 대립과 투쟁 관계다. '햄릿'에서 햄릿과 클로디어스 왕 사이의 갈등, 윤흥길의 '장마'에서 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의 갈등은 인물 상호간의 갈등이고, '오디푸스 왕'은 주인공과 운명과의 갈등을, '노인과 바다'는 자아와 그들을 둘러싼 자연과의 갈등을, 최인훈의 '광장'은 주인공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단일한 갈등구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이 복합될 수도 있다. 칡과 등나무는 서로에게 갈등하지 않고 남에게만 갈등을 일으킨다.

창원 평발리.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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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진동면 다구리

어느 마을(도시)을 가든 기억에 남는 건 하나라도 있다. 그것이 맛이든 멋이든 경관이든 간에···. 다만 나쁜 기억은 추억으로 남지 않는다. 앙금으로 남는다. 그때의 감정, 그때의 인상은 평생 잊지 못할 흔적이 된다. 창원 다구리를 갔을 때의 느낌도 그랬다. ‘다구리’라는 말(명사)에서 느껴지는 폭압적인 행간은 지역의 산과 물을 접하면서 금세 정감으로 바뀌었다. 다구리(多求里)는 마을 뒤로 봉화봉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태봉천이 남해로 흘러드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마을이다. 다구는 구지(곶)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하구지라고도 하며, 후에 다구리가 됐다고 한다. 도만은 다구리 안에 있는 마을이다.

‘다구리’는 부랑배들의 은어로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을 이르거나, ‘몰매’, ‘패싸움’을 뜻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한사람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이나 폭행 등을 일컫기도 한다. 단순히 여럿이 싸우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한 사람을 괴롭힐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선 ‘모대가리’ 또는 ‘모다구리’라고도 한다. 일본어 ‘다찌 마와리 나구리(둘러싸고 때리기)’에서 왔다고도 한다. 혹은 검열삭제를 뜻하는 은어 ‘빠구리’ 에서 여럿을 뜻하는 ‘다’를 붙여서 생긴 단어라는 해석도 있다. 다구리가 주는 어감은 그래서 유쾌하지 않다. 까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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