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뒷골목서 설쳐댄 야인시대 건달들의 ‘주먹’
76. 뒷골목서 설쳐댄 야인시대 건달들의 ‘주먹’
  • 미디어붓
  • 승인 2020.10.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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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건달마을.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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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에 관한 스토리는 그 옛날 ‘주먹세계’와 연결된다.

자유당 시절, 그러니까 1951년부터 약 10년 간 실정(失政)과 비리(非理)로 얼룩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야인시대였다. 종로통 주먹들을 제압하고 오야붕에 오른 김두한을 비롯해, 그의 후계자 조일환, 일명 ‘오따’로 불린 정종원, ‘낙화유수’ 김태련, 이정재 등이 뒷골목에서 득세했다.

김두한은 일제강점기 말 18세 약관으로 경성의 유력한 건달패의 우두머리로 군림했으며 1943년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의용정신대)을 조직했다. 제3대·6대 국회의원 땐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했다.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한국 비료 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하자 국회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며 국무위원 등에게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이정재는 제1공화국 시절 동 카포네(동대문의 알카포네), 말렌코프라는 닉네임을 달고 정치 주먹으로 악명을 떨쳤다. 단성사 저격 사건, 야당 정치인들을 향한 테러를 지시한 배후이기도 하다. 그는 힘이 굉장히 세서 씨름대회 상품으로 걸린 황소는 전부 다 이정재의 몫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한때 종로·동대문 점포 2900개를 관리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61년 혁명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이후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백주 대낮 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44세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소림사 쿵푸 뺨치게 무술에 능했던 양익 스님은 출가하기 전까진 건달이었다. 어느 날 강원도 시골마을을 지나가는데 30명 정도의 건달들이 동네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화가 난 스님은 ‘입에 걸레를 문’ 건달들을 삽시간에 곤죽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깡패’라는 호칭보다 ‘건달’을 선호했다. 낭만과 의협을 내세우는 주먹을 포장하기에는 ‘깡패’보단 협객 느낌이 나는 ‘건달’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깡패란 말이 ‘갱스터’와 ‘패거리’가 결합된 어형이라는 설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깡패’라는 단어가 ‘갱(gang·무리·일당)’과 ‘패(牌·패거리)’가 결합된 어형이기 때문이다. ‘갱패’ 즉 ‘깡패’는 ‘건달패, 난장패(亂場牌), 놀량패, 동패(同牌), 왈짜패, 왈패, 주먹패’ 등과 같은 ‘패’ 자 돌림이다.

영덕 건달길 모습. 미디어붓DB
영덕 건달길 모습. 미디어붓DB
영덕 건달길 모습. 미디어붓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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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리(건달길)(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네가 건달이냐? 언제까지 그렇게 놀고먹으며 빈둥거리기만 할 거냐?”

건달(乾達)의 사전적 의미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건달’은 원래 불교의 ‘건달바’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고, 수미산 꼭대기에 불법을 수호하는 제석천이 산다고 한다. 그런데 건달바는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면서 제석천의 음악을 맡아보는 신을 지칭한다.

인도에서는 건달바가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악사나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같은 뜻으로 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건달’이라는 말로 줄어들었고, 할 일 없이 먹고 노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뜻으로 변하게 됐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건달은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힌다는 뜻까지 갖게 되었고, 깡패라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게 됐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실제 ‘건달길’이 있다. 이곳은 동해안 최북단 휴전선과 접해 있는 곳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1952년까지 북한의 공산치하에 있다가 6·25 동란 때 국군의 북진으로 수복됐다. 38°36′51″을 경계로 휴전선과 접하고 있는 현내면은 동해안 최북단 접적지역으로 통일전망대와 화진포를 소재하고 있어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현내면 대진리 앞바다에 어로한계선이 지나고 있다.

건달리(乾達里)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하늘이 가깝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하지만 1915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의 남쪽에 말이 누워 있는 형태와 같다하여 붙여진 마직리(馬直里)와 건달리의 '달(達)'자를 합해 마달리(馬達里)로 바뀌었다, 현재는 도로명 주소에 따라 이 지역에 건달길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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