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누상에서 맞는 죽음은 헛헛하고 덧없다
80. 누상에서 맞는 죽음은 헛헛하고 덧없다
  • 미디어붓
  • 승인 2020.11.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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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농촌 풍경. 미디어붓DB
경기도 농촌 풍경. 미디어붓DB

객사리(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여행은 객지(客地)를 떠돌아다니는 행위다.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가며 하나둘씩 알아갈 뿐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모든 게 무(無)다. 그 하얀 여백은 때론 두렵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뒤가 켕긴다. 평택에 있는 객사리에 당도했을 때 객사(客死)가 오버랩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유추다. 여행 내내 불안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객사’의 의미가 전전긍긍의 감정으로 이입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심정, 물도 불도 아닌 애매한 매개(그릇)에 무엇을 담을 지도 모르는 여정은 외롭다. 물은 물이고 불은 불이다. 불은 불로써의 개별성만 가진다. 사람도 물과 불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할지 몰라도 낯선 이방인에게는 불친절하다. 여행 중 길바닥에 놓인 비애를 가슴으로 안으면, 길바닥의 죽음일 뿐이다. 길바닥의 개는 어제 꼬리 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는 마치 이 밥만 죽을 것처럼 먹고, 잘 때는 자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이 잔다.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순간의 집중이다. 어제 일어난 일은 어제 일이고, 내일 일어날 일은 내일 일이라는 식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객지에서의 삶 또한 어제를, 오늘을 복기하면 내일부터의 여정이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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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客舍)는 고려·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館舍)를 일컫는다.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주로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관찰사가 일을 보는 동헌보다 외려 격이 높았으며, 관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임금의 교지(敎旨)를 전했다고 한다. 일제 때 조선 시대의 관청들을 없애버린다는 식민지정책에 따라 많은 객사가 없어지고, 현재 강릉의 객사문(客舍門·국보 51호), 전주객사(보물 583호), 고령의 가야관(伽倻館) 등이 남아 있다.

반면 객사(客死), 누상에서 맞는 죽음은 헛헛하고 덧없다. 알아주는 이도 없으니 더없이 가량하고 처연하다. 객사(客舍)에서의 하룻밤이 아니어도, 하늘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아니어도, 최소한 길바닥만은 피해야 한다.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客舍里)는 객사가 있던 마을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자연마을로는 동촌(東村), 주막거리, 서촌(西村), 대정리, 향교말(校村) 등이 있다. 동촌은 객사리의 동쪽, 서촌은 서쪽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주막거리가 있는 것을 보면 꽤 성업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에도 객사리가 있다. 평택의 객사리와 마찬가지로 객사가 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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