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복수'가 아니라 '복'을 누리며 오래 사는 동네
81. '복수'가 아니라 '복'을 누리며 오래 사는 동네
  • 미디어붓
  • 승인 2020.11.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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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갑천변 모습. 미디어붓DB
대전 갑천변 캠핑족 모습. 미디어붓DB

복수동(대전시 서구)

“아….”

사도세자는 외마디 비명도 없이 뒤주에서 눈을 감았다. 11살 이산은 천둥처럼 울었다. 14년 후, 정조가 조선 22대 왕에 오르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노론(老論)’ 세력들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숙청의 피바람이 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조는 복수하지 않았다. 그는 조정의 문신 중 자질 있는 자들을 뽑아 규장각에서 밤새도록 경연(經筵·토론)하는 걸 즐겼다. 더욱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탕탕평평하게 인재를 썼으며 서얼출신도 등용했다. 백성의 민원을 직접 듣는 여론정치는 물론 박해 받던 천주교에도 관대했다.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노비제를 없애려 한 것도 당시로선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혁신이었다.

정조는 새벽닭이 울고 푸른 햇살이 첫낯을 비출 때까지 책을 읽었다. 조강(아침) 주강(낮) 석강(저녁)을 거르지 않다보니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안경쟁이가 됐다. 역사가 정조를 가리켜 백성을 끔찍이 사랑한 명군으로 부르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불행을 뛰어넘은 까닭이다. 만약 복수에만 천착했다면 그는 성군이 아니라 폭군이 될 운명이었다. 조선 시대 통틀어 최고의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태평성대를 연 것은 그가 개혁가였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사형수에게는 집행 당일 몇 가지 ‘특전’이 주어진다. 우선 죽는 방법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총살당할 것인지, 교수형에 처해질 것인지, 독극물을 주입받고 죽을지를 결정한다. 총살형을 선택한 사형수는 의자에 가지런히 묶인다. 5명의 사수(射手)가 총을 겨눈다. 총알은 4정의 총에만 장전이 되고 다른 한 정에는 공포탄이 들어 있다. 사형 집행수들끼리도 누구의 총에서 죽음의 총탄이 발사됐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 일종의 살인면죄부다. 살인자를 죽이는 또 다른 살인자가 되기 싫어서다.

사형제는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형수는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생명을 박탈당할 순간엔 ‘죽어 불쌍한 놈’이 된다. 어떤 사형수의 마지막 부탁은 “우리 어머니를 가끔 들여다봐줘요”였다. 누군가의 가족을 죽여 놓고도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의 가족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다. 사형수가 죽어 복수가 된 것인지, 복수를 하려고 사형을 한 것인지는 법의 잣대다.

대전시 서구 복수동(福守洞)은 복을 누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다. 대전 서남부권의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21세기 대전 서구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꼽힐 만큼 주변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충남 금산군에는 복수면(福壽面)이 있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살라는 땅 이름의 미학이다.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에서, 새롭게 합쳐지면서 태어난 땅 이름이다. 면 소재지에 해당하는 다복(多福)과 수영(壽永)의 이름을 하나씩 따 합성된 것이 복수다. 결국, 복수는 합성어이지만 그 의미와 추구하는 바에서 ‘복을 누리면서 오래 사는데’ 있으므로 수복을 뒤집은 것과 마찬가지다. 미식가들이 최고로 치는 복수한우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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