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갈구리는 ‘軍소리’가 아닌 칡덩굴이다
82. 갈구리는 ‘軍소리’가 아닌 칡덩굴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20.11.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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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

“빨리 먹어, 빨리 입어, 빨리 뛰어. 빨리 싸. 빨리, 빨리, 빨리…. 박아, 뻗어, 기어, 벌려….” 예전 군대에서 횡행하던 짤막한 문맹어(文盲語)는 비겁했고 야비했다. 회식시켜준 뒤 괴롭혔고 칭찬한 뒤 폭력을 휘둘렀다. 군복은 마치 핏기 없는 수의처럼 눈물에 젖고 또 젖었다. 하얀 밥 먹고 국방색 배설을 하고 검게 생각하는 군상들. 봄여름가을겨울, 다시 봄여름가을겨울…. 갇힌 젊은 날, 그 3년을 살면 입에선 비루먹을 ‘軍소리’만 나왔다. 군대란 아무리 좋아봤자 군대다.

흔히 검불이나 곡식 따위를 긁어모으는 데 쓰는 갈퀴를 경상도에서는 ‘갈구리’라고 부른다. ‘갈구다’는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것에 대한 비어(卑語)다. “부장이 허구한 날 갈궈서 못 살겠다(I am stressed out by the manager's constant nagging)”는 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쉽게 쓰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표를 쓰고 싶다는 얘기다. 갈퀴질하듯 아랫사람이나 후임을 갈구는 행위는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혼’을 괴롭히는 것이다. 군기를 잡기 위해 신참을 갈구는 것도, 시어머니가 표독스럽게 며느리를 갈구는 것은 물려주지 말아야 할 악행의 전승이다. 고참도 처음엔 신참이었고, 시어머니도 며느리였던 때를 망각하는데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지날 때 만난 길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평생 품고 산다. 어릴 적 학교를 오가던 비포장 길, 가족 여행 중에 만난 길, 이역만리에서 만난 이국의 길까지 모두가 낯설지만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만남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갈구(渴求)한다.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좇는다. 울면서도 웃음을 찾고 슬퍼하면서도 미소를 떠올린다. 힘듦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괴로운 시간에도 꿈을 얘기하는 것은 기분 좋은 계륵이다. 인생에서 만난 아름다웠던 일들은, 짧게 스쳐가는 추억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을 데워줄 기억이기 때문이다.

시범케이스는 ‘여럿’을 잡기 위해 ‘하나’만 족치는 전술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야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모범’적인 것을 ‘시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범적이지 않은 시범이기 때문이다. 장점은 조직 관리에 있어서 리스크도 적고, 후폭풍도 약하다는 점이다. 시범케이스를 내세우면 공포가 전이되며 삽시간에 기강을 잡을 수 있다. 타깃이 된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속으로 웃는다. 그런데 시범은 시범으로만 끝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비열함이 조직을 들쑤셔 조직이 물렁해지기도 한다. 군기의 유효기간은 짧다. 잠시 납작 엎드려 있을 뿐 스멀스멀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기막힌 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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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葛九里)는 ‘칡 갈(葛)’자가 말해주듯 칡덩굴을 헤치고 터를 잡았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자연마을인 갈머리는 갈화미발형(葛花未發形)의 첫머리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거서리(巨西里)는 집이 띄엄띄엄 있는 산촌이어서 아주 큰 동네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산은 마을 앞의 산이 아홉골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지세가 거북의 꼬리처럼 생겼다 해 구미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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