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구라’는 걸쭉한 재담이 아니라 갈등의 언어
84. ‘구라’는 걸쭉한 재담이 아니라 갈등의 언어
  • 미디어붓
  • 승인 2020.11.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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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들은 대체로 ‘구라’가 세다. 처음엔 구라(뻥)로 상대방 기를 죽이고, 그것이 안 되면 떼로 덤빈다. 구라는 허약함의 표출로 주먹 대신 ‘말의 흉기’를 드는 것이다.

구라가 남을 흠집 내고 욕보이는 양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욕하는 사람이 욕하는 자기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욕의 흠집 내기 양상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가령, 김삿갓이 수다한 욕시(辱詩)와 탈춤판 말뚝이나 취바리가 내뱉는 욕은 대체로 한(恨)에 그친다. 허물없는 농판(농지거리판)에서 흥을 돋우는가 하면, 준엄하게 벌 내리는 꾸중 판에서 서릿기운을 돋울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아수라장 같은 싸움판에서는 독을 뿜고, 장거리의 흥정판에서는 저울대 구실을 한다.

구라와 욕의 독성(毒性)은 대부분 남녀 성기를 들먹이는데 있다. 제기랄, 우라질, 빌어먹을, 젠장 등은 무심코 내뱉는 감탄사로 전용된 욕이다. 하지만 굳이 피해나 상처를 주기 위해서 인간 본질의 가려진 부분을 대상(代償)으로 하면 쌍욕이 된다. 일종의 리비도(libido: 프로이트가 규정한, 모든 행위의 숨은 동기를 이루는 근원적인 잠재의식하의 욕망. 곧 성욕의 본체)다. ‘X빨아라, ○먹어라, X대가리 같은 놈, ○구멍 같은 X’ 등은 남녀성기를 극단적으로 비하하면서 리비도의 발산을 촉진시킨다.

구라를 별난 재담 혹은 사나운 재담 또는 걸쭉한 재담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욕은 민중의 희극이 아니다. 갈등의 언어가 아니다. 적개심, 증오, 대립이다. 욕은 갈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반란의 언어다. 그래서 욕은 체면이고 염치고 모든 걸 내던진 인격적 알몸 상태다. 여기에 스스로 ‘구라’라는 별칭을 부여한다고 해서 면피(免避)가 되지는 않는다. 혀의 생리학은 극단적이다. 가장 위험한 것이자, 가장 모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구라리(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여행 중 ‘구라리’라는 이정표를 보자 웃음부터 나왔다. 결단코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코에서 바람 빠지듯 ‘피식’ 웃었다. ‘구라’는 어감 때문인지 일본어가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くらます(쿠라마스)’에서 나왔을 것이란 추측에 기인한다. 쿠라마스는 ‘행방을 감추다, 남의 눈을 속이다’라는 뜻인데 도박판에서 타짜들이 속임수를 써서 승부조작을 한다는 뜻의 은어였으나 이것이 확장되면서 거짓말, 속임수라는 뜻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구의 뜬공, 즉 플라이(옛날 발음으로는 후라이)가 구라로 변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구라를 ‘친다’ 또는 ‘깐다’고 표현한다는 주장이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九羅里)의 지명은 물(낙동강)이 좋고 기름진 구레(고래실)들이 있다 하여 구레, 구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 애장왕이 꽃들이 만발한 화원읍 구라리에 감탄해 아홉 번이나 들러 이름이 붙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도 구라리(九羅里)가 있다. 청도천이 흐르고 있으며 크고 작은 저수지가 매우 많은 지역으로, 마을의 안산인 구라리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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