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Go냐, Stop이냐, 화투 ‘고도리’의 애환
88. Go냐, Stop이냐, 화투 ‘고도리’의 애환
  • 미디어붓
  • 승인 2020.12.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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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고도리 전경. 미디어붓DB
예산 고도리 전경. 미디어붓DB

충남 예산군 봉산면 고도리(古道里)는 홍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수정봉, 수창봉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이다. 높은 골짜기에 있어 고도실 또는 고도촌이라 불리던 것이 고도리로 불리게 됐다.

경북 영천시 고경면 고도리(古道里)는 곧은 골짜기란 뜻에서 고도곡이라 불리다 이후 고도실에서 고도리로 개명됐다고 한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고도리(古道里)는 본래 해남군 군일면의 고도지리(古道旨里) 지역으로, 고만이터 또는 고둣물이라 불리던 것에서 고도리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고도리는 다섯 마리 새(五鳥)를 일컫는 일본어로, ‘고(ご)’는 숫자 5를, ‘도리(とり)는 새(鳥)’를 뜻한다. 새끼고등어(古道魚)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고스톱을 칠 때 화투짝 세 개를 모아 새가 다섯 마리가 되면 그것이 ‘고도리’가 된다. 화투의 일본말은 하나후다(花札)다. 고스톱은 ‘Go’를 할 것이냐 ‘Stop’을 할 것이냐를 묻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48장의 화투(새로 생긴 보너스 패는 제외)에는 인생의 만휘군상처럼 예측할 수 없는 묘수가 다 들어있다. 정말 형편없는 패를 손에 쥐고도 이기는가하면 오광을 모두 쥐고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스톱 문화가 많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시골 경로당에 가면 카키색 담요 위에서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세기 말 일본에서 시들해진 화투가 대마도(對馬島) 상인을 통해 부산에 전파되면서 가정집, 초상집, 술집을 넘어 직장에서도 활화산 같은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오락이나 심심풀이를 넘어 가산을 탕진하는 도박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오락’에 그치면 다행인데, 돈이 오고가는 ‘도박’으로 변질되면서 급기야 ‘고스톱 망국론’까지 나왔다. ‘화투’는 그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대충 꼽아도 ‘고스톱, 도리짓고땡, 민화투, 삼봉, 섰다, 육백’ 등 예닐곱 가지가 된다.

사는 것은 일단 즐거워야한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일종의 ‘노름’이다. 대박을 위한 도박(賭博)의 의미가 아니다. ‘도 아니면 모’라는 생각도 더더욱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열정의 총량을 말한다. 확률은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다. 일상적 권태감과 무력감에서 탈출하려는 의지, 그 정도(正道)의 삶을 살 수 있는 패(牌) 정도는 읽고 써야한다는 얘기다.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지만 평생 마흔아홉 번이나 상처(喪妻)했고,54명의 자식이 먼저 죽었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지만, 사람은 필멸(必滅)한다. 세상에 불멸은 없다. 죽음이란 결국 비움이고, 비움은 죽음을 위한 채움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무게가 생전보다 21g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걸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라고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마지막까지 살려고 버틴다. 그러면서 갖고 가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한다. 인간의 유전정보(DNA)에는 죽음에 대해 저항하도록 돼 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잘 받아들여도 폭력(暴力)이다. 되레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던 사람이 편안하게 간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내 인생을 괜히 헛된데다 보냈구나’, ‘회사 일에 미쳐서 정작 소중한 가정을 소홀히 했구나’ 후회하지 않는다. 죽음을 배우면 사는 것(生) 또한 달라진다.

예산 고도리 전경. 미디어붓DB
예산 고도리 전경. 미디어붓DB

고도리(충남 예산군 봉산면)

모든 시작은 끝에서 비롯된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에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습관대로 하려는 본능적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바로 ‘바뀐다’는 것이다. 화가들이 화구를 들고 들판을 나왔을 때 비로소 서민의 시대가 열렸듯 여행자도 안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진정으로 자신만의 여정이 열린다.

오토바이 여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000㎞를 단번에 돌아다니는 일은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굉장한 일이다. 물론 오토바이를 타다가 마음대로 내릴 수 있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것은 무한의 자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바이크 라이딩은 바람에서 시작해 바람으로 끝난다. 바람이 가장 큰 복병이다. 계절과 상관없다. 섭씨 27℃에도 바람은 냉골이다. 특히 해안선 바람은 위력적이다. 습기 머금은 해질녘에는 칼바람으로 돌변한다. 바다와 바람은 분명 인척관계다. 내륙에서 느끼는 촉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온 후 부는 바람은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 때문에 살갗에 닿는 순간 솜털을 얼리고 혈관을 냉기류로 바꾼다. 이쯤 되면 마음속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다. 그래서 라이더들은 바람 때문에 몸에 골병이 든다고 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만난 예산 고도리는 그래서 풍경이 더욱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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