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인간은 씻고 나가서 씻으러 돌아오는 게 삶이다
95. 인간은 씻고 나가서 씻으러 돌아오는 게 삶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21.02.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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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 빨래
간만에 민박집서 목욕하고 온돌방에 빨래를 널은 모습. 미디어붓DB

목욕의 역사는 매우 길다. 한국 문헌에 기록된 최고(最古)의 목욕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인 알영부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대에 즈음해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래되자, 절에는 대형 공중목욕탕이 설치되고 가정에도 목욕시설이 마련됐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목욕은 대중화되기 시작됐다. 대가에서는 목욕시설인 정방(淨房)을 집안에 설치하여 난탕·창포탕·복숭아잎탕·쌀겨탕 등을 즐겼다. 오늘날은 모든 가정에 욕실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다. 1999년엔 찜질방이 등장했고 개인주택이나 별장에도 한증막을 설치할 정도로 목욕탕과 사우나가 대중화됐다.

인간들은 집에서 씻고 나간 뒤, 돌아와 다시 씻는다. 씻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자 끝이다. 도시는 오로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사람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다. 때문에 아침이 되면 두꺼운 분장을 하고, 저녁이 되면 두꺼운 분장을 벗겨낸다.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땀 냄새가 나도록 일하지만 삶은 여전히 악취로 혼곤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술을 마시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바르는 것에 유난 떠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집 없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다. 전국 10가구(자가 보유자 포함) 중 2가구가 월세로 산다. 온전히 자신의 집에서 씻을 수 없는 사람도 많다. 아파트는 ‘콘크리트 감옥’이다. 그 감옥을 사기 위해 우리는 평생 몸을 바친다. 우리는 그곳에 살면서 매일같이 입원하듯 귀가하고 다시 퇴원한다. 두께 30㎝의 윗집과 아랫집에 프라이버시는 없다. 30㎝의 분리공간에서 배설하고, 옷을 벗고, 씻는다. 그리고 낡고 처진 삶을 원망하며 징징거린다. 마음껏 씻을 수 있는 곳을 달라고….

목욕리(전북 정읍시 산외면)

라이딩 할 때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씻지 못하는 거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비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청결이 문제다. 취사시설이 있는 무료 캠핑장에서 씻는 건 호사에 속하고, 거의 태반 공동화장실이나 공원 수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얼굴만 대강 닦았다. 한낮 라이딩을 끝내면 온몸이 땀에 젖어 썩은 내가 났다. 하지만 마땅히 씻을 곳이 없으면 그 불쾌한 육신을 텐트에 억지로 구겨넣었다. 땀 냄새에 취하고, 다시 자신의 몸 냄새에 취하는 슬픈 후각동물의 밤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정읍의 목욕리(沐浴里)는 이상하게도 반가움 그 자체였다. 아예 마을 전체가 목욕탕으로 조성된 것 같은 지명이니 몸에 청신함이 돌았다. 목욕리는 자연마을인 마시동, 목욕소, 밧멱수, 새터, 안멱수, 영하동 등이 있는데 목욕소는 물이 맑고 좋아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런 지명 탓에 목욕리는 한 때 온천이 개발된다고 하여 난리법석을 떨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온천을 개발하기에는 수량이 부족해 개발이 흐지부지 됐다. 목욕리는 원래 외목마을과 내목마을로 나뉘어있다. 외목마을은 선녀가 물을 뜨러 온다는 약수터가 유명하다. 반면 내목마을은 화경산의 불기운을 막아준다는 솟대 당산이 있어 외목은 물기운, 내목은 불기운이 강하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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