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명품’ 같던 고향 시골집과 女工의 ‘하품’
96. ‘명품’ 같던 고향 시골집과 女工의 ‘하품’
  • 미디어붓
  • 승인 2021.02.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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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라이딩 시 촬영한 농촌풍경. 미디어붓DB
경기도 라이딩 시 촬영한 농촌풍경. 미디어붓DB

고향의 외딴집은 둔덕 위에 있었다. 붉은 기와로 이어붙인 지붕은 햇볕과 비를 막기에 충분했다. 방 3개, 부엌, 창고가 한 틀에 포치됐다. 앞마당엔 장독대가 있고, 그 옆엔 토마토와 간단한 채소류를 길러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었다. 집 뒤로는 소나무 숲이 있어 한풍을 막아주었고 비탈엔 사과나무가 홍조 띤 얼굴로 하늘을 떠받쳤다.

밤이 되면 등잔불을 밝혔고 작두펌프로 길어 올린 물은 달콤한 자리끼였다. 상추가 먹고 싶으면 열 보만 걸으면 뜯을 수 있었고 고추와 파, 마늘도 지근거리에 있었다. 집 앞 채소밭이 ‘야채가게’였던 셈이다. 아궁이에 장작 열 토막만 넣어도 등짝이 뜨끈뜨끈해 몸살기가 녹았고, 살문만 열어놔도 시원한 통풍에 더위가 달아났다. 지금도 어느 봄날,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푸성귀 가득한 녹색밥상을 먹던 기억과 달큼한 오수를 즐기던 때가 그리워진다.

1960~1970년대 ‘한국의 기적’은 중졸과 고졸 여공(女工)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어두컴컴하고 날 선 소음, 먼지에 찌들어 숨이 턱턱 막히는 공장에서 하루해가 저물었는데도 공작기계는 쌩쌩했다. 컨베이어에 실려 끝도 없이 나오는 부품들을 조립하다 보면 여공들은 화장실 갈 틈조차, 하품할 시간조차 없었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다 다시 일하고, 잠시 잠을 자고 와서는 다시 일하고 또 일하고. 잔업을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였다.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뚜벅거리다가 만난 붕어빵 리어카. 입에 침이 고이지만 ‘붕어’를 살 수는 없었다. 그 붕어빵 값이면 동생의 주린 배를 조금은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똑바로 설 수조차 없는 2층 다락방. 온통 절뚝거리는 어둠뿐인 그곳에서 그녀들은 책을 읽으며 희망을 꿈꿨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 그것이 꿈의 끝이었다.

하품리(명품리)(경기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下品里)는 원래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에 속했던 마을이다. 주민들의 원성에 따라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폐지됐다. 산북면에는 원래 윗동네인 상품(上品)리와 아랫동네인 하품리가 있었으나, 하품리 주민들이 ‘우리가 품질이 낮은 사람들이냐’며 마을 명칭을 바꾸자는 여론을 형성해 여주시 승격에 맞춰 개명에 성공했다. 대신, 종전의 하품리 일원에 명품리와 주어리가 신설됐다. 하품 취급을 받다 명품으로 도약하게 된 마을 주민들도 개명에 매우 흡족해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충주시 이류면(利柳面)을 꼽을 수 있다. 이류면은 원래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이안면과 유등면의 앞글자를 따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류가 ‘일류’에 비해 뒤처지는 ‘두 번째(二流·이류)’라는 오해를 산다는 마을 주민들의 개명 요구에 2012년 개명했다. 이곳은 조선 시대 지방을 돌아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했던 역원이 생기면서 불렸던 옛 지명을 살려 ‘대소원면’이 됐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도 원래 한자 지명인 ‘怨慟山’에서 발음은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른 ‘圓通山’으로 개칭했다. 종전의 원통산(怨慟山)의 한자 지명이 원망할 ‘원(怨)’에 서럽게 운다는 의미의 ‘통(慟)’으로 일제가 바꾼 것을 강점기 이전의 명칭을 되찾은 것이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죽리는 대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작명됐고, 행정구역상 ‘죽 1리’와 ‘죽 2리’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발음이 좋지 않아 웃음거리가 돼 왔고, 주민들은 오랜 고민 끝에 개명을 요청, 2006년 ‘원평리’로 바꾸었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현 조리읍) ‘죽원리’도 ‘죽었니’로 읽혀 발음이 매우 거북하다는 이유로 조선 시대 때 이름인 ‘대원리’로 지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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