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각서 쓸 일 없이 사는 게 잘 사는 것
101. 각서 쓸 일 없이 사는 게 잘 사는 것
  • 미디어붓
  • 승인 2021.03.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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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과 달리 수없이 많은 각서(覺書)를 쓴다. 돈을 빌리며 꼭 갚겠다고 쓰고, 사랑싸움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를 쓴다. 또 아내에게 올해 안에 꼭 무엇을 사주겠다고 각서를 쓰고, 다시는 외박을 하지 않겠다며 각서를 쓴다. 이행각서, 양해각서, 면책각서, 합의 이혼각서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심지어 신체 포기각서도 쓴다. 그래서 각서는 소금이다. 눈물이 배어있으니 짜다. 각서도 모자라 공증까지 받는 경우도 많다. 법정에서 법적 효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절차다. 그래서 각서는 사약이다. 마시면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 각서다. 각서는 차갑고 매정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안 쓰면 좋으련만 돈을 빌리려고 쓰고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도 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09년에 매국노 이완용과 일본의 소네(曾禰荒助) 간에 사법권 이양에 관해 체결한 기유각서(己酉覺書)가 각서의 효시라고 한다. 각서보다는 더욱 형식을 갖춘 문서로써 노트(note)가 있는데, 이는 공문 또는 통첩 등의 의미를 가진다. 각서는 다분히 상대적이다. 여름엔 겨울의 냉기를 그리워하고, 겨울엔 여름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그 그리웠던 겨울이 오면 다시 여름날의 폭염이 그리워진다.

이 맹추 같은 악순환은 슬픈 예감이다. 여름과 겨울 사이, 겨울과 여름 사이에 잠깐 머무는 ‘봄과 가을’은 꿈이자 슬픔이다. 사계절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득달같이 왔다가 쏜살같이 간다. 그래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슬플 때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이 날아올 땐 온전히 슬퍼해야 하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온전히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복기(復棋)’가 필요하다. 제대로 복기하지 않으면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또다시 겨울을 기다리며 여름을 산다는 건 억울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후회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반성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허세 부리며 탕진했던 날들을 반성한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술과 담배에 의지한 날들을 반성한다. 내면에 ‘상처’라고 부르는 것들을 키우고, 그 상처가 고개를 들면 꾹꾹 눌러 태연한 척했던 날들을 반성한다. 내 밖의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고, 함께 울어주고 싶은데 가슴이 없었으니 반성한다. 고통이 있었고 상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화해한다. 통절한 게송(偈頌)이다.

각서리(경북 문경시 문경읍)

일하고 있든, 놀고 있든 인생의 화두는 ‘먹고 사는 문제’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더더욱 그렇다. 오토바이 라이딩을 할 때도 생각이 참 많았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지.’ 혼자서 묻고 혼자서 답했다.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라면집을 차릴까. 아니면 푸드트럭으로 장사를 해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온라인신문사를 창간하는 건 어때?’하며 만리장성을 쌓았다가 부셨다 했다. 아이템은 대략 10가지 정도가 나왔다. 그러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다. 생각의 양이 많아지자 근심의 양도 많아졌다.

시시때때로 화가 나기도 했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자꾸 옆에서 따라오는 그림자의 존재가 불편했다. 문경새재에서 연풍 방면으로 가는 언저리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담뱃불을 댕겼다. 저 멀리 보이는 이화령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를 잇는 백두대간의 본줄기 고개다. 해발 548m로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 이화령(梨花嶺)으로 불렸다. 1925년 일제가 만든 도로는 1998년 국도 3호선 이화령터널과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통행량이 꽤 많았다. 새재(조령)는 경상도의 세곡 수송로이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일부였다. 험준한 산세를 지녀 왜적이 쳐들어오면 계립령보다 군사적으로 방어하기가 쉬웠다. 인근 각서리 마을에 당도해 각설이를 떠올린 건 인지상정이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各西里)는 산간마을로 대부분의 면적이 임야로 이뤄져 있는 고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각섯골, 샛터, 이우릿골, 풍덕골 등이 있다. 각섯골은 산의 모습이 흡사 뿔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후 각각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여 각싯골이라 불려왔다. 지금은 그와 같은 뜻과 달리 각서골, 또는 각서로 명명하고 있다. 샛터 마을은 새로운 터에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여 불린 촌명으로, 황 씨를 중심으로 한 화전민들이 임진왜란 때 피난 와서 정착한 곳이라 한다.

이우릿골은 이화령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다. 예로부터 이화령을 이우릿재(고개)라고 불렀으므로 이 마을도 이웃릿골이라고 부르게 됐다. 풍덕골은 마을 형상이 굴뚝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굴뚝매기로 불리던 곳이다. 1800년경에 김만덕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자 연풍의 풍자와 자기 이름의 덕자를 따서 풍덕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야시장 각설이가 장타령(場打令)에 흠뻑 젖는다. 각설이타령은 입방구인 반복 구(句)를 각 장 사이에 되풀이하면서 일(1)에서 장(10)자까지의 뒤풀이로 구성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와서, 한바탕 품바를 외친다. 민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쌓였던 울분과 멸시, 학대, 회한이 한숨으로 발산된다. 그 비등점은 사람들의 육체와 마음까지도 까맣게 태워버린다. 몸에서 화가 나는 건 그냥 본능인데 맘에서 화가 나는 건 불능이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고 싶은 건 마음에 박힌 ‘못’ 탓이다. 버럭 성을 낼 수도, 그냥 꾹 참고 삭일 수도 없는 불편한 나날들, 그래서 각설이가 신명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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