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술 푸게’ 만드는 세상, 간(肝)은 피곤하다
102. ‘술 푸게’ 만드는 세상, 간(肝)은 피곤하다
  • 미디어붓
  • 승인 2021.03.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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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가는길. 미디어붓DB
하동 가는길. 미디어붓DB

술 취한 상태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입이 풀어지는 해구(解口), 곰보가 보조개로 보이는 해색(解色), 원한을 푸는 해원(解怨), 인사불성 상태인 해망(解忘)이 그것이다. 해색 단계를 지나면 술고래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주폭(酒暴)’이 된다. 이때부터는 1차로 끝내지 못하고 2차, 3차를 하며 술집 순례(Bar Hopping)로 이어진다. ‘술 끝’이 좋지 않으면 뒤끝이 좋지 않다. 마치 마음과 따로 노는 러브샷처럼…. ‘술 권하는 사회’는 서민들의 역린(逆鱗)이기도 하다. 속을 뒤집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세상이니 ‘술 푸게’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홧술이다.

폭탄주처럼 섞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랑을 잇는 일이다. 빨주노초파남보가 섞이면 흰색이 되듯 우린 어울림을 좋아하고 섞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술은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고, 간(肝)은 육체의 고단함을 해독하는 장기다. 적당히 흔들자~. 마음을 달래는 폭탄주는 몸에는 시한폭탄이다.

술은 핏속에 응고된 망각의 저승사자다. 절망이 방바닥을 굴러도 품어주고 안아주고 용기 주는 삶의 아스파라긴산, 한 움큼씩 알약을 먹어가면서도 끊지 못하는 금단의 물, 살벌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배신 않고 따뜻한 체온으로 건배하는 의리,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목청에서 터지는 이 땅의 위선과 분노, 정신과 육체의 저질스러운 감전, 결국은 미쳐가는 야누스들을 위로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슬픈 의리다.

술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한다. 술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되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에서 ‘광약(狂藥)’이라고도 불린다. 임금으로서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망신주(亡身酒)’ 또는 ‘망국주(亡國酒)’라는 말도 생겼다.

술의 이름에는 술맛을 당기게 하는 낭만적인 요소가 많다. 맛을 더하기 위하여 가향주(加香酒)를 만드는데 그에 따라 명명된 이화주(梨花酒)·두견주(杜鵑酒)·송화주(松花酒)·연엽주(蓮葉酒) 등은 그 이름조차도 아름답다. 술빛이 흰 아지랑이와 같다는 비유에서 붙여진 백하주(白霞酒), 푸른 파도와 같다는 데서 붙여진 녹파주(綠波酒, 일명 鏡面綠波酒), 푸르고 향기롭다는 데서 붙여진 벽향주(碧香酒), 맛이 좋아서 차마 삼켜 마시기 아쉽다는 데서 붙여진 석탄주(惜呑酒) 등은 주색들의 멋진 발상에서 나왔다.

1900년대 초반 미국의 부두, 목장, 광산의 대다수 노동자는 폭탄주를 즐겼다. 고된 노역의 피로를 잊으려고 ‘양폭(양주+맥주)’을 한 것이다. 추운 날씨에 몸을 덥히는 수단이어서 ‘보일러 메이커(Boiler-Maker)’라고도 불렀다. 러시아 벌목공들 또한 시베리아 혹한을 견디기 위해 ‘보폭(보드카+맥주)’을 마셨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독주’는 선대가 남긴 신성불가침의 전리품이었다. 중간 중간 술을 마셔야 고통의 비등점이 산화되고, 설렁설렁 노닥거리느니 빨리 취하는 게 숙면의 온점임을 알았다.

‘술 취한’ 미국은 급기야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자 간판 없이 몰래 운영되는 ‘스피키지(speakeasy)’ 술집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벨을 울리고 기다리면 문틈으로 확인한 뒤 들여보내는 식이었다. 더구나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교회에 다닐 정도로 되레 폭음을 즐겼다. 같은 시기에 러시아(옛 소련 시절)도 강력한 금주 조치를 시행했으나 실패했다. 보드카 값을 올리고 강제로 생산량을 줄였지만, 술꾼들은 밀주를 마구 마셔댔다. 술은 강제적으로 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끊기 힘든 중독이었을 뿐이다.

군산 맛집 '중동집'. 미디어붓DB
군산 맛집 '중동집'. 미디어붓DB

술산리(전북 군산시 임피면)/술상리(경남 하동군 진교면)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잔(盞)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면 천만년(千萬年)이나 사오리다.”

19세기 후반 진주교방(晉州敎坊)에서 연주된 ‘권주가’의 한 대목이다. 술 한 잔 드시면 만년 장수하는 만큼, 이 술 한 잔 들고 놀아보자는 권주가는 호탕하고 호기롭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기고 그만큼 흥이 많았다. 특히 술 인심, 담배 인심이 좋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시원한 물 한 대접을 권할 만큼, 인정이 많았다. 오죽하면 한양에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소곡주를 얻어 마시다가 일어나지 못해 시험을 놓쳤다는 ‘앉은뱅이’ 술에 대한 일화까지 나왔겠는가.

전북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戌山里)는 ‘술’자가 들어간 데다, 술을 산 사람처럼 느끼는 지형으로 전국 특이지명으로 손꼽히는 마을 중의 하나다. 하지만 지형이 어미 개가 새끼 강아지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지형이라 하여 개를 뜻하는 술(戌)자를 써서 ‘술산’이라 칭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뒷산이 닭 같이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닭메(鷄山)라는 마을이 있다. 장항선이 지나는 술산리에는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간이역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오랜 기간 소임을 다하고 은퇴한 임피역이다. 임피역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경남 하동군 진교명 술상리(述上里)의 명칭은 술포의 위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술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술상은 연산군 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화를 피해 입향한 이억윤(李億胤)이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이뤄진 마을이다. 술하는 남해에 접한 마을로 예전에는 웃술포와 아랫술포로 구분했으나 지금은 웃술상(양지몰, 음지몰)과 아랫술상(구렁몰, 대밭몰)으로 나뉘었다. 청정 해역에서 나는 수산물이 풍부하고 술상 전어 축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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