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속상한 세상 풀어주는 속풀이 안주들
105. 속상한 세상 풀어주는 속풀이 안주들
  • 미디어붓
  • 승인 2021.04.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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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집 '중동집' 사장. 미디어붓DB
군산 맛집 '중동집' 사장. 미디어붓DB

잠시, 안주 얘기를 한 순배 돌려본다. 술을 마시며 멀미가 나는 것은 술 때문이 아니다. 바람에 실려 온 멍게 향 때문이다. 멍게 굵은 놈의 배를 갈라 위새강과 아가미 주머니를 술과 함께 입에 털어 넣는다. 입에서 바다가 출렁인다. 입수공으로 들어간 바다 향이 출수공으로 빠져나오며 향기에 무게를 싣는다. 쌉싸래한 향미가 술이 깰 때까지 입안을 감돈다. 여드름 자국 같은 돌기는 울퉁불퉁한 바다 조류를 견딘 ‘멍’이다. 물을 뿜어대는 모양이 남성의 생식기를 닮았다고 해서 우멍거지로도 불린다. 멍게 안주로 술을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멍’하지 않다.

바다의 우유, 바위에 붙은 꽃(石花)으로 불리는 굴도 안주로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굴튀김을 술안주로 즐겼고, 카사노바는 하루에 50개씩 생굴을 먹었다. 미네랄 성분이 성적 에너지를 자극하기 때문에 ‘사랑의 묘약’이다. 뽀얀 국물에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을 내는 대구탕도 괜찮다. 여타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소금으로만 간을 하면 그 맛이 깊고 그윽하다. 일명 싱건탕(지리)이다. 해풍에 꼬들꼬들 말린 과메기(말린 청어)도 별미다. 청정한 동해와 차가운 하늬바람이 어우러져 만든 검푸른 보석 안주다. 햇김, 물미역, 파, 마늘, 고추와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해풍이 분다. 맛대가리 없어 보여서 더 맛있는 홍어의 발효된 맛은 제대로 된 ‘똥맛’이다. 그 퀴퀴한 냄새 자체가 맛이다. 후각이 미각을 이끄는 몇 안 되는 안줏거리다.

해장으로는 물곰(물메기)탕이 괜찮다. 바닷바람에 빨갛게 언 볼처럼 불그레한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달큼하다. 흐물흐물 못 생긴 생선에서 그만한 국물이 나오는 건 복이다. 신 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물잠뱅이탕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까지 갖췄다. 무와 감자, 시래기를 깔고 양념장을 넣어 조린 참마자(잉엇과 민물고기)는 원기를 돋우고 숙취 해소에 좋다. 하지만 도다리쑥국을 따라갈 해장은 드물다. 도다리에서 우러나오는 뽀얀 국물과 연초록 해쑥의 향미는 바람난 봄 처녀처럼 상큼하고, 은은하며, 여운마저 길다.

우리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건 역설이 아니다. 인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이 온점으로 가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 원망, 증오, 복수, 용서 등이 녹아있다. 고춧가루(탕)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뜨거움과 아랫배를 관통하는 냉소적 차가움은 이율배반적이지만, 온랭의 친교다.

그렇다면 이 시대 가장 맛있는 안줏거리는 뭘까. 어중이떠중이와 떠버리들이 모여 암투를 벌이는 정치와 정치인들 얘기다. 이 안줏거리는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낡아가며 새로워지고, 새로워지며 낡아가는 술자리의 비애이기도 하다.

파전리(경북 군위군 의흥면)

우린 그리워해야 할 것과 그리워해도 소용없는 절박한 갈림길에서 자주 절망한다. 절망은 술을 부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막걸리와 파전을 떠올리는 것은 그 발원지가 향수(鄕愁)에 있다. 평상에 둘러앉아 낙수 소리에 막걸리 한잔, 파전 한 조각 먹던 정서가 전승돼온 탓이다. 파전은 큰 품 들이지 않고 뚝딱 만들 수 있고, 찌푸린 날씨에 부르는 안주로도 제격이다. 쪽파 위에 홍합·조갯살·굴·오징어·새우 등 각종 제철 해산물까지 곁들이면 입을 즐겁게 하는 그런 호사도 드물다. 청양고추 송송 다져 계란까지 둘러 바삭바삭하게 구워내는 파전이야말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누구에게나 인기를 끄는 일품요리다. 함께 먹으면 맛있고, 비오는 날에 먹으면 더 맛있는 파전은 그래서 별나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너로 인해 천 가지 근심을 잊는다.” 생모인 폐비 윤 씨의 한을 풀어주려 갑자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막걸리로 시름을 달랬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 임금이 된 철종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요즘엔 ‘대통령의 술’이 됐다. 박정희·노무현은 시시때때로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였고 이명박과 오바마도 ‘농주(農酒) 외교’를 했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요, 친구를 만드는 화합주다.

일제강점기부터 시행된 ‘주세법’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빚지 못했다. 그 때문에 세무서의 눈을 피해 누룩과 술을 숨기는 일이 잦았다. ‘술 조사 떴다’는 소문이 돌면 술 항아리를 들고 산으로 줄행랑치거나, 독을 깨서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용케도 고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그윽했고, 누룩의 ‘발정’이 끊이질 않았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름이 녹았다. 단내 나는 노동의 고단함이 사라졌다. 주막에 앉아 다들 거나하게 몇 순배씩 하다 보면 노을도 익고 사람도 익었다. 배고픈 이는 지게미를 먹어 몸도 취하고 주린 배도 취하게 했다. 논두렁 새참 때는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맛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는가.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된 쌀의 취선(醉仙)이다.

경북 군위군 의흥면 파전리(芭田里)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논농사를 주로 짓는 곳이다. 파전리라는 지명은 구한말 당시 고치동(高致洞), 중동(中洞), 하동(下洞) 등을 합쳐서 의흥군(義興郡) 파립면 파전동(芭田洞)이란 행정 명칭을 가졌지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파전동(芭田洞)이라 개명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고치골, 보리밭, 중동, 하동, 무덤골마을 등이 있다. 고치골마을은 고 씨와 최 씨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리밭마을은 보리가 잘 되는 곳이라 하여, 중동마을은 파전리의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하동마을은 중동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무덤골마을은 무덤이 많은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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