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인생이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107. 인생이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미디어붓
  • 승인 2021.05.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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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다지리 전경. 미디어붓DB
전남 벌교 다지리 전경. 미디어붓DB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그는 우물쭈물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덧없음을 기꺼이 붙잡는다. 머뭇거린다. 망설인다. 그리고 후회한다. 흐르는 세월,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붙잡는 건, 불멸의 희망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애지중지했던 생육신 김시습의 묘비명은 ‘꿈꾸다 죽은 늙은이’다. 평생을 관직에 몸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던 그다운 문장(文章)이다. 걸레스님 중광은 ‘에이, 세상에 괜히 왔다.’고 투덜댔고, 코미디언 스파이크 밀리건은 ‘내가 몸이 아프다고 그랬잖아’, 방송인 김미화는 ‘웃기고 자빠졌네’로 해학의 의미를 담는다. 이밖에 ‘곧 돌아오겠습니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묘비명도 압권이다.

우리가 생배추처럼 푸른 심줄을 부여잡고, 절벽 위에 서서 뛰어내릴 수 없는 건 비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겁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죽음은, 자신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다. 앞으로는 재미있게 살겠다고 다짐했을 때 돌연 죽음을 맞거나, 병이 든다. ‘별안간’ 몰아닥치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그저 나약한 바람일 뿐이다.

짧은 세월, 이 세상에서 ‘소란’을 피워왔으므로 ‘죽이게’ 아름다운 날들을 살아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그렇다면 묘비명에 한 줄 남길 최고의 문구는 ‘잘 왔다 갑니다’가 아닐까. 인생이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수도 있다.

다지리(전남 화순군 화순읍)

인간은 누구나 나고 자라면서 경쟁을 하게 된다. 초·중·고교를 다닐 때는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이 나뉘고 특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직장에 들어가도 경쟁은 끊이지 않고, 좋은 배필을 만나기 위해서도 각축을 벌여야 한다. 이러한 경쟁은 대물림되어 자식 대에서도 반복된다. 때론 남을 짓밟지 않고는 오를 수 없다는 계산 아래 비열한 경쟁도 서슴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 빼앗기 위해, 차지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는 승부처에서는 사생결단도 불사한다. 특히 이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강박도 크다. 모두가 승부사로서 쌍립하고 대결한다.

그런 기질은 운전할 때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유독 경적을 자주 울리고 난폭운전이 많은 것도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승리욕에서 비롯된다.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패하는 결과를 낳는 것도 그러한 그릇된 욕심에서 시작한다. 소위 성적이 인생의 향로를 가늠하도록 만든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승패가 명암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만은 아니다. 승부를 초월한 의연한 패배가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승부, 패배보다 못한 승리도 있다. ‘바둑에서 이기고 승부에서 졌다’는 말이 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용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지명이 있어 이채롭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에는 ‘이기리’가 아닌 ‘다지리’가 있다. 하지만 다지리(茶智里)는 다산마을의 다(茶)자와 지실마을의 지(智)자를 각각 취하여 지은 이름이다. 다산이 마을 뒷산에 차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보면, 차와 관한 한 누구도 대적할 수 없고, 어떤 마을도 다지리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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