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회복과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권회복과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 나인문 기자
  • 승인 2020.06.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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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중부신문 제공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중부신문 제공

“우리는 한국전쟁을 70년 전에 발생한 오래된 과거의 일로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당사국 간에 종전협정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엄연히 휴전상태이며,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한국전쟁이 남긴 수많은 인권침해사건들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노근리사건도 한국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 중 하나입니다.”

정구도(65)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노근리사건은 국제법적으로도 ‘전쟁범죄(War Crime)’ 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여전히 미국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소원했다. 정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의 진상규명 및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아직도 진저리를 치게 된다. 피해자 대책위원들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미국 정보기관의 감청이 이뤄졌고,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 국내서도 여러 정보기관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국회의 각 정당 대표,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 앞으로 20차례 가까이 진정서를 제출하며 사건해결을 위해 진력했지만, 한국 국방부가 피해자들의 진정서를 미8군사령부로 이첩하는 게 전부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다름없는 형국이었다.

정 이사장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노근리사건과 같이 참전 미군에 의한 피해사건들이 120건에 이르고, 이라크.베트남.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도 미군에 의해 발생한 사건들이 적지 않다”며 “그렇기에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이 이뤄낸 성과는 한미관계사나 인권사 측면에서 볼 때도 기념비적인 사례로 평가받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40여 년 동안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땀 흘린 결과 얻어낸 역사적인 특별법 제정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어두운 과거사를 정리하고 인권회복과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노근리사건특별법’ 제정 이후 다른 과거사 사건도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요구가 쏟아졌고, 이는 곧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과거사 진상규명 흐름의 물꼬를 튼 것이 바로 ‘노근리사건’이다. 결국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자 63명 등 총 226명을 노근리사건 희생자로, 그리고 유족수는 2240명으로 확정 심의.의결했다. 이는 정부가 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노근리사건의 실체와 희생자를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수십 년간 진상규명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해원(解寃)하고, 비록 늦었지만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노근리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적 대립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반미(反美)라는 편견을 깨고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보도록 하는 데 기여를 했죠. 무엇보다 ‘전쟁 중이라도 민간인의 생명은 보호돼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으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생명권) 보호 및 증진의 필요성을 세계 각국과 우리 국민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

정 이사장은 “인권 회복은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으로 이뤄지며, 평화는 누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며 “인권 회복의 과정은 지난(至難)하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럼에도 고단하고 외로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피해자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오늘도 노근리평화공원을 지키고 있다. 연간 16만 명이 다녀가는 평화공원이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칠 수 있는 산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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