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독서운동'영원한 문학소녀'
30년 독서운동'영원한 문학소녀'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9.02.02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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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나영순 시인
수필가·독서지도사·아동상담사·사회복지사 활동
증평새마을문고 책임지며 1인1책 펴내기운동
나영순 시인. 미디어붓
나영순 시인. 미디어붓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부지런한 것과 바쁜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상살이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바쁘게 만들 뿐이다. ‘부지런’은 육체에 기댄 말이고, ‘바쁨’은 마음에 기댄 말이다. 부지런하되, 바쁘지 않은 삶을 꿈꾸는 것은 두 덕목을 공통의 함수로 볼 수 없어서다. 나영순 시인(55)은 수필가, 독서지도사, 아동상담사,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을 옷섶에 달고 30년 가까이 열혈 청춘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부지런하면서도 바쁘다. 지역에서 30년 가까이 독서문화운동을 펼쳐온 나 시인의 또 다른 이름표는 ‘늙지 않는 문학소녀’다.

“충북 청주에서 독서논술학원을 운영했었어요. 평범한 주부로 살기 싫었거든요. 조용히 안거(安居)한다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죠. 그래서 무작정 사회로 뛰쳐나갔습니다. 아이들을 만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입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조금 지나니 소명감으로 바뀌더라고요. 여자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다가 어느 정점에서 ‘모성의 어머니’로 안착한 셈입니다.”

나 시인은 독서 길라잡이이자 디딤돌 역할을 했다.

“책과 교과서는 이질적인 질감의 차이가 있지만 독서와 논술은 항상성(恒常性)을 지닙니다. 책을 읽으면 논리력이 생기고, 글을 쓰면 사고력이 향상됩니다. 독서는 습관입니다. 어릴 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야 평생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읽기 싫어도 의무적으로 독서를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 얘기를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죠. 하얀 핑계입니다. 책은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읽다보면 시간이 생기게 돼있습니다.”

그녀는 읽고 쓰는 데만 매달리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지길 원했다. 독서문화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않아 한사람의 힘으로 어떤 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책을 안 읽는 건 도서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이들 성장환경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책을 읽다보니 흥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강요된 책읽기는 오히려 책과 더 멀어지게 하는 악영향을 끼칩니다. 엄마·아빠는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강요하는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나 시인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서와 독서인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청주 기적의 도서관 건립추진위원, 김득신 시비(詩碑) 건립위원,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운동 지도강사, 증평 군립도서관 추진 건립위원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속뜻이 거기에 있다.

“김득신 시비 건립위원으로 활동할 당시가 떠오릅니다. 10년 전, 청주를 떠나 증평으로 이사한 뒤 백곡 김득신 선생을 알게 됐습니다. 조선시대 대문호이자 대단한 독서광이잖아요. 백곡 선생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증평군에서 한국문인협회 증평군지부장을 하면서 시비 건립에 동참한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1인1책 펴내기 운동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지도강사로서 대부분 출강을 합니다. 저는 장애인들의 1인 1책을 지원했어요. 이 분들과 함께 하면서 저도 한수 배웠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파도, 글은 아프지 않았거든요. 자신이 쓴 책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제자도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우수교사상을 받았지만요.(웃음)”

쥐코밥상, 시간의 잠 출간
쥐코밥상, 시간의 잠 출간

나 시인은 다양한 책을 썼다. 아동과 청소년 독서, 논술에 관련된 책들이다. 개인적인 저서도 있고, 편저도 있다. 문집은 ‘글바구니ⅠⅡⅢⅣ’, ‘얼음물’, ‘보은뜨락’을 펴냈다. 개인 작품집으로는 2012년에 발간한 시집 ‘쥐코밥상’(월간문학)이 인기를 끌었다.

“열심히 산 것 같지만 돌아보면 남은 건 없고 미처 돌보지 못한 시간들만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하루하루 지난한 일상이, 돌아보면 별것도 아닌 인생의 단편이 돼버리죠. 20여년을 독서문화운동에 투신해왔지만 성찰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어 책을 썼습니다. 쥐코밥상이라는 시집 제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쥐코밥상은 ‘아주 적은 가짓수의 반찬으로 정성들여 차린 소박한 밥상’을 의미합니다. 시집 속의 시들은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시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와는 다소 다른, (뭐랄까) 전통적인 서정시 영역에 포함된다고 할까요? 어떤 의도나 계획에 의해서 쓴 시(詩)들이 아니라 저의 정서를 더하거나 빼는 과정 없이 고스란히 반영한 시라고 보는 게 더 옳을 듯합니다.”

나 시인의 '쥐코밥상' 시집에 실린 '부모'는 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문역 스크린도어와 9호선 동대입구에 게시돼 있기도 했다. 뎅걸뎅걸/산촌의 어미는/인생보따리 끌어안고/바스락거리는/갈잎과 속삭인다//등꼬부리 아비는/삶의 보퉁이 밀고 끌며/밭두렁 논두렁 끌어안은 채/처진 어깨 곧추세운다.

딸 역시 ‘초등시절 날 적이’라는 책을 펴내 군(郡)선정도서로 뽑혀 ‘모전여전’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성장기 일기를 그림 그리듯 담아냈다. 시인이 2015년 발간한 산문집 ‘시간의 잠’(2015·동쪽나라)은 언론매체나 각종 지면에 썼던 글들을 정리한 것이다. 수필의 성격이 일정 부분 들어있지만 산문집이라고 고집한 이유는 문학 장르로서의 성격보다는 운문과 대비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녀는 2006년 ‘삶이 질주에서 멈추는 여유’란 작품으로 수필가 명패를 달았다.

“저는 수필은 수필가가 써야 한다는 논쟁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수필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시인도 소설가도 일반인들도 쓸 수가 있는 글이 수필입니다. 전통적인 수필의 개념이 현대에도 굳이 적용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결론 없는 논쟁은, 결론을 낼 수 없는 쟁론일 뿐이죠.”

그는 다양한 문학단체와 동인활동으로 동분서주했다.

“한때 열심히 쫓아다녔죠. 마음만 바빴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더라고요. 본디 문학이라는 게 혼자 해야 하는 것인데 단체들에 얽매여서 정작 문학적인 삶과는 동떨어져 살았거든요. 문학단체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서 문학을 고민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문학 외적인 반목과 이권 싸움이 난무했습니다. 정치판과 다를 게 없었어요. 결국 모두 정리하고 증평문인협회와 한국문인협회 회원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나 시인에게 ‘문학’의 정의를 내려달라고 하자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라는 답변이 왔다.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보고 느끼는 자아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이 객체들은 국가, 지구, 이념 등으로 무한증식하며 생각을 만들어내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他者)와의 다름을 찾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에서 발견하는 공감도 ‘다름’을 전제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문학은 모두가 같지만,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다름’은 ‘틀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영순 시인과 손자
나 시인은 손자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 시인은 귀농했다.

“문명과 자연의 점이지대에 삽니다. 문만 열고나서면 태곳적 자연이 펼쳐져있습니다. 문명보다는 자연 쪽에 제 정서적 무게추가 더 기울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소확행이죠. 맑은 생각의 뿌리를 지닌 아이들도, 벼랑 끝 고독한 나목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중년도, 늙음에 호의적이면서도 늙음을 두려워하는 노년에게도 삶은 고마움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그동안 업으로 해왔던 독서토론 글쓰기 논술의 노하우를 접목시켜 책을 쓰는 것입니다. 시풍(詩風)이 달라진 시집도 내고 싶고요. 현재 맡고 있는 증평군 새마을문고가 더 활성화 돼 군민 모두가 독서와 더불어 행복한 일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행복은 평범한 일상을 말한다. 모두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종점을 향해 가는 비슷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나’보다는 ‘이웃’을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그녀는 ‘문명의 뒷길에서 성찰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독서의 근원적인 힘’이라며 끝까지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시인을 보면 앞뜰에 피어있는 한 송이 풀꽃이 연상된다. 피어있음으로 인해 무한정 향기를 주는 꽃, 저마다의 가슴에 핀 무한한 정념의 꽃, 하늘거리나 절대로 굽힘이 없는 민초의 꽃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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