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가 불효녀가 된 까닭'
'심청이가 불효녀가 된 까닭'
  • 나인문
  • 승인 2020.09.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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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망실하게 있는데/ 너는 내 곁에 다시는 올 수 없다니/ 새순 돋고 꽃이 피어도 서럽다/ 하늘보다 더 서럽고 바다보다 더 서럽다.’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수열 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 중 가장 큰 참척(慘慽)의 아픔을 그렇게 절규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꽃다운 청춘들이 진도 맹골수도에서 영문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이후 제대로 먹지도, 온전히 잠을 잘 수도 없던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의 고통을 견디기까지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이 흘려야 했을까, 살아있는 자가 감히 어떤 말로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서럽디 서러운 슬픔을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짐승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죽는 순간까지 엄마 아빠를 그리워했을 자식들을 생각하면, 몇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슴 아프고 쓰라린 신초(辛楚)가 아닐 수 없다.

흔히 자식은 곁에 두어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법인데, 생때같은 자식을 바다에 묻었으니 그 아픔보다 더 큰 시련이 있을까 끔찍하기만 하다.

얼마 전 인천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불이 나는 바람에 중화상을 입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10살, 8살 형제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위중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문제는 아이들의 엄마(30)가 형제를 학대한다는 의심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관할 구청이나 경찰, 아동보호기관에서 제대로 살피지 못해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비록 10대의 어린 나이에 남자를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어찌 헤어졌는지는 모르나,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정사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애들을 수시로 때리고 굶겼다고 하니, 애초부터 굴러먹은 여자와 지금까지 살아낸 아이들이 너무나 딱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오금이 쑤셔온다.

앞서,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여행용 가방에 9살 의붓아들을 가둬 숨지게 한 계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22년형을 선고했다. “숨이 안 쉬어진다”고 호소했으나 가방 위에 올라가 수차례 짓누르고 드라이로 뜨거운 바람까지 불어넣는 등 범행수법이 잔혹하고 엽기적이어서 소름마저 돋는다. 그런데도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고 하니, 그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형벌이 마땅한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신체에 죄상을 새겨 넣는 문신형, 코를 베는 의형, 발뒤꿈치를 끊는 월형, 목을 베는 참형, 그 중에서도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가하는 능지처사(陵遲處死)가 사라졌기 망정이지, 그런 악독한 일을 저지르고도 양형을 운운한다고 하니 기가 찰뿐이다. 아무리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그런 천벌 받을 짓을 하고도 제 몸, 제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지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들어 부모에 대한 효(孝)를 가르칠 때 등장하는 ‘심청전’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준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는 게 무슨 효도냐는 눈총이 ‘효녀의 대명사’로 불리던 심청이를 ‘불효녀’로 둔갑시키는 이유가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의 눈만 뜨게 해주면 뭐 하냐”는 일갈에 기인한다. 이 세상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는 설정이 심청전의 가슴 뭉클한 원작마저 바꾸고 있다.

소설마저도 자식이 먼저 세상을 등지는 일을 외면하는 마당에 가슴으로 낳았든, 배 아파 낳았든, 자식을 사지로 내모는 인간들은 금수(禽獸)만도 못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긴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더위가 물러갔지만 아직은 추위가 닥친 게 아닌 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시린지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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