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사 없는 거래시스템 ‘만지작’ ‘정책실패 떠넘기나’ 업계는 반발
중개사 없는 거래시스템 ‘만지작’ ‘정책실패 떠넘기나’ 업계는 반발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10.0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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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거래 절벽…7년 만에 매출 급감·중개사 폐업 속출
靑국민청원 “100만 중개사 가족 죽이기…매년 시험은 왜 보나”
부동산 거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대표적인 직업군인 공인중개사무소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부동산 거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대표적인 직업군인 공인중개사무소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부동산 거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대표적인 직업군인 공인중개사무소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부동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는 한 달 전보다 6.7% 하락했다. 이는 2013년 7월(-8.1%) 이후 7년 1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부동산업 생산지수란 중개 수수료 등 부동산 업종의 매출액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주로 아파트 거래가 활발할 때는 상승하고 침체할 때는 하락하는 특징이 있다. 실제 지난 8월 주택 거래는 전월 대비 40%가량 급감했다. 8월 주택 매매량은 8만5272건으로 전달(14만1419건) 보다 39.7% 감소했다. 수도권(4만3107건)은 전월보다 43.1% 감소했고 서울(1만4459건)은 45.8% 쪼그라들었다.(국토교통부 자료)

이처럼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문을 닫는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늘고 있다. 8월 부동산중개업소 개업은 1302건, 폐업 1028건, 휴업은 69건으로 나타났다. 폐·휴업은 지난 7월 1087건에서 8월 1097건으로 늘었다.(한국공인중개사협회 자료)

이러한 와중에 정부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통해 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시스템 구축 및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공인중개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이른바 ‘중개사 없는 부동산시스템 구축’을 하게 되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달 21일 올린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중개사 없이 부동산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문재인대통령님 전상서’라는 제목의 청원은 5일 현재 11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원인은 “중개업은 불측의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과태료 부과, 행정처분 등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도덕적해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문제가 있다면 업무정지나 자격취소 처분을 받아 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며 “실제 부동산 직접 거래를 위해서는 매도인 성명과 전화번호, 주소, 동, 호수 등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개인정보를 이용해 매수인을 가장한 강도 및 강간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청원인은 ‘공인중개사들이 불법행위를 하고 의뢰인들에게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는 일부에 국한된다’고 전제한 뒤 이들은 공인중개사라기보다는 자격증을 대여한 무등록업자이거나 컨설팅 업체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중개사 없는 부동산시스템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실제 부동산 거래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비대면 거래 플랫폼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예컨대 단독주택이나 빌라처럼 상대적으로 정형화가 이뤄지지 않은 집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물건을 보지 않고서는 실내 구조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집주인 본인이 AR·VR 기술로 구현해 놓기도 어려운 일이다. 또 비대면 거래 플랫폼이라면 사실상 직거래 형태로 이뤄질 텐데, 이렇게 되면 사기 계약과 같은 거래 사고가 빈발할 문제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부동산거래건수(매매, 전월세, 토지순수거래)가 총 377만5710건이고 개업공인중개사, 중개인, 중개법인이 신고한 거래건수가 226만5426건이다. 전체 거래량의 60%만 공인중개사들이 거래하고 있고 나머지 151만284건은 당사자 간 직접거래나 무등록업자들의 불법거래 또는 컨설팅 거래다.

청원인은 “국가는 편법·탈법·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무등록업자를 소탕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선량한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고 사회악으로 매도하고 있다”면서 “한국판 뉴딜정책 10대과제를 표방하며 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라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청원인은 다섯 가지 선행과제를 제안했다. △100만 중개가족 실업문제 해결 △공인중개사시험 즉각 폐지 △무등록중개업자와 불법 컨설팅업자를 척결하지 못하고 임무 방기한 지자체장·공무원 파면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공인중개사에게 전가시킨 김현미 장관 손해배상 책임 △모든 자격사 단체, 정치인, 공무원들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 후 문제 발견 시 제도 폐지 등이다.

7월 현재 공인중개사 수는 전국 45만 명이다. 이중 11만 명이 사무소 등록을 해 중개업을 하고 있다. 소속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까지 하면 중개업 종사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 더구나 매년 수만 명의 공인중개사가 계속 배출되고 있다. 오는 31일 치러지는 제31차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29만8227명이 접수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이중 대략 2만 명 정도가 합격 선이다.

 

공인중개사업 쪽의 주장과는 다르게 현재 중개사 없는 부공산거래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는 정부부처는 없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공인중개사업 쪽의 주장과는 다르게 현재 중개사 없는 부공산거래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는 정부부처는 없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공인중개사업 쪽의 주장과는 다르게 현재 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는 정부부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는 공인중개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AI를 활용한 부동산 공적장부(공부) 시스템을 갖추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 1일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인 지능형(AI) 정부 구축 사업에 8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며, 그 세부 과제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등 블록체인 활용 실증 사업(133억원)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주택 중개의 상호 편의를 높이기 위해 가상현실 시스템 등을 활용하는 방안은 계속 추진하고 있으나 아예 중개사 없는 거래 환경을 만드는 내용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업계는 부동산정책 실패의 책임을 공인중개사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해석한다. 23번의 대책이 쏟아지면서 바뀐 정책을 설명하고, 정책의 변화로 인해 계약이 해제될 때마다 뒷수습하고 손해배상 요구에 시달리느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확실한 대책 마련 없이 고육지책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공인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련업계는 물론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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