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어디로 가시나이까?) 갈길잃은 국적불명 한글 판쳐요
‘쿼바디스’ (어디로 가시나이까?) 갈길잃은 국적불명 한글 판쳐요
  • 나인문 기자
  • 승인 2019.02.12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의 황혼 열정
대한민국 영문 홈피 오류 수정 '아르고스'

식당(restaurant)과 화장실(Resting Room)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공공기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잉글리시(English) 대신 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콩글리시(Konglish)가 판치는 대한민국.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부처, 지방지치단체와 공공기관 영문 홈페이지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오용웅(78) 부산시 명예통역관의 밤은 ‘불량식품처럼 잘못 표기된 영문 철자’와의 씨름으로 하얗게 불탄다.

그가 영문 홈피 오류를 바로잡는 ‘아르고스’를 자청한 것은 꼭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공공기관을 방문했을 때 식당을 'Resting Room'이라고 잘못 표기한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보여준 것처럼 3대(代)째 의사 가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십억 원짜리 입시 코디를 붙여가며 입시지옥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대한민국 공교육도 책임이 크다.

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
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청와대나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 공공기관의 영문 홈페이지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해진 트랙 위만 달리는 경주마처럼 부(富)와 권력,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도록 채찍에 매달렸던 괴물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영문 홈페이지를 보면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문제는 2000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20여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가명을 표기할 때는 대문자와 소문자의 차이도 엄청난 오류를 가져온다는 게 오 통역관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China는 중국을 의미하지만 china는 ‘자기(porcelain·도자기)’를 뜻하며, Japan은 일본을 지칭하지만 japan은 ‘옻 칠(漆)’, 즉 '일본제 도자기'를 일컫기 때문이다.

팔순(八旬)을 앞둔 그가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영문 홈페이지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일을 게을리 하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60학번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신발업체에서 30년가량 수출 에이전트로 활약하다 은퇴한 그가 ‘사서 고생’을 자처한 것은 1998년 12월 부산시 명예통역관으로 위촉되면서 부터다. 그는 그 때부터 부산시는 물론, 정부부처와 행정기관, 일선 자치단체의 영문 홈페이지를 뒤지면서 수많은 오류를 찾아냈다.

특히 200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린 부산 남포동 광장에 국내외 유명 배우와 감독 6명의 핸드 프린팅이 새겨진 동판의 영문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잊지 못할 편린으로 남아있다. 동판에 새겨진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절단기로 동판을 잘라내고 덧대는 엄청난 수작업이 뒤따랐지만, 부산시가 잘못을 고치려는 의지를 보이기까지는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의 대표 홈페이지인 ‘사이버 독도’의 표기상 오류를 수정한 것도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다. 독도의 위치가 '게영스낙북도(Geyoungsnagbuk-do)'에 있다고 표시된 부분을 '경상북도(Gyeongsangbuk-do)'로 수정했다.

2003년경 대장암 수술을 받아 몸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기관의 오류를 바로잡아 외국인들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는 그 날까지 영문 홈피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 소홀할 수 없다는 그는 지금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기관·단체의 영문 홈피를 검색하고 있다.

공공기관 영문 홈피의 기관장 인사말에 'Message(메시지)’를 ‘Massage(마사지)'로 표현하고도 낯 뜨거움을 모른 채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국격을 말할 수 없다는 열정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보수를 주는 기관도 없다. 이른바 대한민국을 위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외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무원들의 호된 시선이다. 대전시 영문 홈피 담당자처럼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일종의 호통이다.

하지만 오 통역관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공익 제보자의 역할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이 없다. 그의 이 같은 열정에 힘입어 청와대의 영문 홈피는 물론 국무총리실, 국회, 대법원, 감사원 등 정부 주요 기관의 영문 홈피의 잘못된 표기가 바로잡혀 가고 있지 않는가.

미국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도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의 위력이 증명됐고, 전 세계 폭로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도 공익제보자인 딥스로트(Deep Throat)의 역할이 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지난 2013년 영문 홈피의 정확한 정보제공 및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공적을 인정받아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감사장을 수상했다. 2010년에도 이 같은 공적으로 청와대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앞서,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개최를 위한 홍보위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도 수상했다.

어찌 보면 표창장이나 감사장보다 대한민국 훈·포장을 수훈해야 그의 노력이 다소나마 보상받는 길이라는 점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자문해 본다.

그에게 영문 홈피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황혼기에 찾아온 아예 또 다른 직업(?)이 된 것도 그에 걸맞는 예우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는 바깥에 나갈 때도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닌다. 그리고 영어 표지판이나 문화재 설명문, 관광안내판 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각종 기관·단체에서 발행하는 관광안내지도나 홍보책자도 꼼꼼히 살펴본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진을 습관적으로 찍는다. 그리고 해당기관에 즉각적인 수정을 요구한다.

늑장을 부리면 언론사를 찾아가 수정을 의뢰하기도 한다. 늑장행정·직무유기를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것은 외국인들의 ‘비아냥’이 겁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주요기관의 영문 홈피도 이 지경인 데, 지방자치단체나 산하기관의 사정은 안 봐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관(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민간차원의 협력 등 범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오 통역관의 지적이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우리나라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연히 영문 홈페이지”라며 “나라 망신을 시키는 오류를 방치할거면, 뭐하러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느냐”고도 말한다.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영문 홈페이지의 영문표기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한민국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오! 쿼바디스”


관련기사

  • 세종특별자치시 마음로 14 (가락마을6단지) 상가 1층 3호 리더스
  • 대표전화 : 044-863-3111
  • 팩스 : 044-863-3110
  • 편집국장·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필
  • 법인명 : 주식회사 미디어붓
  • 제호 : 미디어 붓 mediaboot
  •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5
  • 등록일 : 2018년 11월1일
  • 발행일 : 2018년 12월3일
  • 발행·편집인 : 미디어붓 대표이사 나인문
  • 미디어 붓 mediaboot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미디어 붓 mediaboo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ediaboot@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