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소리꾼이고 싶다"
"시작도 끝도 소리꾼이고 싶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8.12.07 12: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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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feel]국악인 오정해
배우는 게 재밌어 철학박사된 만능인
국악인 오정해. 사진=미디어붓DB
국악인 오정해. 사진=미디어붓DB

“시작도 마지막도 소리꾼이고 싶다.” 대한민국 대표 소리꾼을 꼽으라면 오정해를 떠올린다. 1992년 미스춘향 선발대회로 데뷔해 1993년 영화 <서편제>로 자신을 각인시키며 소리꾼 생활을 한 지 25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한국의 소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국악인이기도 하다. ‘만능인’ 오정해 씨를 만나 저간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무척 상냥했고 친절했다.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었으리라고 상상했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통바지, 박스형 웃옷에 쫄바지도 즐긴다. 편하게 입는 게 최고다. (별 거 있나) 물론 한복을 입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워낙 급한 성격인데 차분해지고 엄마 같은 느낌도 나고…. 이 모습이 평소 모습이다. 한복 입은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평상시 모습을 보면 잘 못 알아보는 팬들도 많다.”

-‘소리’를 정의한다면.

“한(恨)에 묻히지 않고 한(恨)을 뛰어넘는 게 소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소리는 한의 소리이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소리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공연이 많다.

“사람들은 소리 이야기라고 하면 판소리만 떠올린다. 하지만 소리는 판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의 소리, 사람들의 인생에도 소리가 난다. 관객들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꺼내서 소리로 만든다. 관객들과 박수나 추임새를 나누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편제에서 불렀던 사철가도 부르고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도 부른다. 태평가와 진도 아리랑을 부를 때는 함께 놀듯이 편안한 무대가 된다.”

-짜인 프로그램이 따로 있나.

“없다. 그때그때 꺼내고 싶은 가락을 부른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프로그램 없이 공연을 하게 됐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음악을 전달하는 게 맞지 않나.”

국악에, 드라마, 라디오DJ, TV진행까지 종횡무진

-영화 출연은 이제 안 하나.

“모든 배우들은 여러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변신을 줄만한 작품이 없는데도 굳이 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나 말고도 배우들은 넘쳐난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한국의 어머니, 그런 소리를 듣고 싶다. 나만큼 여러 가지 일을 다양하게 해본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악극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라디오 DJ에 TV 진행자까지….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천년학을 찍은 후 뮤지컬 등 다른 활동으로 바빴다. 난 연기자이기 이전에 한복을 입고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소리꾼이다.”

-전통의 소리가 나아갈 방향은.

“판소리는 조선시대 음악이다. 알아듣기도 힘든 음악을 가요처럼 좋아해 달라고 하는 건 억지다. 그러니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방법밖에 없다. 퓨전으로 시작해서 전통으로 가는 것도 스킬이 되리라고 본다. 명인·명창만 앞세워 들어달라고 읍소하면 오히려 관객은 달아난다.”

쌍꺼풀이 없는 눈, 뽀얗고 동그란 얼굴, 자그마한 체구와 좁은 어깨,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소리를 하듯 또박또박 경쾌하게 울렸다.

-남편과 만난 지 4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는데.

“맞다. 11월 1일에 만났는데 11월 4일에 프러포즈를 하더라.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동료 배우 최정원 씨 소개로 만났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 그 다음에 연애를 시작했다. 거꾸로다. 영화, 독서 등 취미도 비슷하다.”

국악인 오정해. 사진=미디어붓DB
국악인 오정해. 사진=미디어붓DB

-프로MC로도 활약 중이다.

“목포MBC ‘어영차바다野’는 6년 째 이어온 장수프로그램이다. 올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에서 방송출연자상을 수상했다. 국내 유일의 국악태교·육아 전문 프로그램인 국악방송의 ‘달강달강’도 오랫동안 이끌었다.”

-연기자 중에는 보기 드물게 철학박사다.

“배우란 무언가를 꺼내서 쓰는 직업이다. 저안에 뭐가 있기에 자꾸 꺼내려고 하나 궁금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배우는 게 재밌다. 뜨내기 학위의 목적은 아니었다. 음식, 예절, 꽃, 그릇, 사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 원광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됐고 7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론 공부하면서 고충도 많았다. 익산까지 직접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멀미도 심했다. 방송과 무대 출연하고, 특강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다행인 것은 ‘오늘에 충실하려는 버릇’ 때문에 무사히 공부를 마쳤다는 점이다.”

그의 논문 제목은 ‘판소리 심청가의 예술성 연구’이다. ‘심청가’를 모성애적 차원에서 새롭게 풀어 써 관심을 끌었다. 인당수 자체가 곧 ‘모성’이라는 것이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09년부터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집안에서는 어떤 사람인가.

“항상 집이 먼저고 아이가 먼저다. 시댁 식구나 남편이 밀어준다. 원래의 꿈도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거였다. 그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판소리 창법과 뮤지컬 창법은 다른가.

“판소리는 진성으로 소리 내고 뮤지컬은 이 소리를 깎아내어 부드럽게 해야 한다. 오래 해온 판소리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다만 뮤지컬을 하면서 소리꾼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대중은 국악을 낯설어한다.

“국악은 우리 전통음악이다. 대중들이 국악을 좋아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국악을 대중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사실 미흡하다. 관객이 국악에 흥미를 가진 후 나중에 ‘이 음악의 뿌리는 이것이다’라며 깊은 전통음악을 보여주면 된다.”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면.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목표 그 자체였다. 엄마가 웃고 있는 모습이 좋아서 열심히 했다. 또 한 분은 판소리 명창 김소희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국악인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다. 내가 선생님의 살아생전 마지막 제자였기에 더 뜻 깊다. 선생님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또 한 분은 ‘임권택’ 감독님이다.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뤄주신 분이다. 지인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지인들을 위해 살려고 한다.”

하루하루를 사랑한다. 내일이 오면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계획을 딱히 세우지 않는다. 오늘은 오늘 공연에만 신경 쓴다. 내일이 오면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게 하루다. 오늘 하루를 죽을 만큼 사랑하면서 산다. 오늘이 힘든 날이었다면 다음날 두 배로 행복하려고 애쓴다.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이왕이면 즐겁게, 이왕이면 행복하게, 이왕이면 나눌 수 있으면 하는 게 목표다. 내 계획은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인생 전체의 목표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을 살다보면 한 달이, 일 년이 행복하지 않은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과정 자체를 즐기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말을 수없이 써서 행복했고, 행복한 미소가 끊이지 않아 행복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을 한없이 사랑하는 그녀는 행복 전도사였다. 청순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련한 카리스마, 영원한 국악인 오정해는 오늘도 행복해지기 위해 소리를 하고, 소리를 하면서 행복해한다. 그녀에게서 ‘꽃소리’가 났다.

▶오정해는

197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고전무용을 시작했고, 이후 국악과 판소리, 가야금을 배웠다. 13세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로 장원했다. 이때 인간문화재 김소희 선생의 직계 제자가 됐다. ‘춘향가’ 이수자인 그는 학창시절부터 국악경연대회나 명창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92년 미스 춘향 ‘진’으로 선발되면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 ‘서편제’(1993년)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태백산맥(1994년), 축제(1996년), 천년학(2007년) 등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마당극 ‘학생신위부군’에 출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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