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화되었다]'댓글시인 제페토'를 아시나요?
[우리는 미화되었다]'댓글시인 제페토'를 아시나요?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11.10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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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이후 6년간의 기록
수오서재 제공
수오서재 제공

댓글시인 제페토의 두 번째 시집. 뉴스 기사에 시 형식의 댓글을 남기는 누리꾼. 일부러 찾아 읽는 댓글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전례 없는 ‘댓글시’ 모음집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출간해 큰 울림을 전했던 ‘댓글시인 제페토’가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미화되었다'로 오랜만에 우리에게 안부를 전한다.

제페토가 뉴스에 댓글시를 남긴 지도 올해로 꼭 10년이 지났다.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섭씨 1600℃가 넘는 쇳물이 담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조시(弔詩) 형식의 댓글을 남겼고, 그 시에 다시 400여 개의 ‘대댓글’이 달리며 많은 이들이 마음을 더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라는 프로젝트로 확장되며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쉽게 잊히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제페토의 진심이 만들어낸 놀라운 현상이다.

첫 책을 출간한 이후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제페토의 글 쓰는 마음일 것이다. 댓글의 부작용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탓인지, 뉴스를 읽고 거침없이 글을 써올렸던 과거와 달리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기 검열을 시작했다. 그에게 댓글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지난 책의 서문에서, 풍선을 더듬는 바늘의 위로와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번번이 뾰족하고 까끌거린 것만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말(글)은 가시 돋친 생명체다. 밖으로 내보내기에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비록 나의 글쓰기가 선한 댓글 쓰기 운동의 일환은 아니지만, 댓글이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매 순간 조심하는 이유다.”<서문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댓글 쓰기를 멈춘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마음이 여린 것들, 힘없는 이들, 소외된 존재들, 그들의 불안한 밤을 살피며 진심 어린 마음들을 남겼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울음이 한발 늦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것뿐”일지 몰라도, 댓글 창을 열어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면 사회면 뉴스를 떠나 조금은 나른하고 사소한 것에 관하여 쓸 수 있을 거라는 그의 꿈은 아직이지만, 분명히 조금이나마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보기로 한다. ‘평안은 뉴스가 되지 않으나/별일 없는 날을 나는 사랑한다/행인들의 따분한 얼굴과/그들이 버티어낸 하루를 사랑한다’ 말하는 제페토의 말처럼, 언젠가 마주할 우리의 ‘별일 없는’ 하루들을 기다리며.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겪었고, 목격해왔다. 촛불을 든 연인원 천만 명의 시민이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실정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였고, 탄핵을 끌어냈다. 정권 교체 이후 성사된 남북, 북미 간의 정상회담은 항구적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으나,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준비되지 않은 세계는 우왕좌왕하며 팬데믹의 수렁에 빠졌다. 매일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의 뉴스들이 연일 쏟아졌다. 하지만 굵직한 이슈들 사이로 노동 약자의 억울한 죽음은 변함없이 줄을 이었다. 소외된 이들은 마지막까지 외롭게 떠났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생각하면 한없이 침잠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사건 사고, 갈등과 반목의 뉴스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파 속에 잠든 떠돌이 개와 고양이에게 담요를 덮어준 사람들의 선행이라든지, 치매로 기억을 잃은 후에도 매일 아내에게 청혼한 노인의 사연 등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뉴스도 있었다. “소풍 전날 밤 같은 시간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이렇듯 사무치게 평범한 하루하루인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매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픈 이들의 사연이었다며, 스스로 머무는 곳이 그들이 머물던 고도에서 멀지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하는 제페토. 책 한 장 한 장 실린 삶의 무게 때문일까.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한 번에 끝까지 후루룩 넘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제페토의 글이 주는 감정의 울림과 울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실린 기사와 댓글시를 나란히 보며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떤 길 위에 서 있는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반추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제페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누리꾼. 인터넷 뉴스를 읽고 시 형식의 댓글을 쓴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쓴 댓글시를 모은 첫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로 수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편히 쉬렴”… 친부 손에 숨진 아기, 형사들이 장례]

먼 곳에서 날아와/이승에 발끝 적시고 날아간 새/다시 오는 날에/세상이 있을지 모르겠다/남아나지 않는/인연이 섧다.

[둑길 따라 핀 붉은 개양귀비]

그런 생각이 들어/봄부터 피어나/대지를 뒤덮는 저 꽃들이/실은 여름을 시작하기에 앞서/지난겨울 낙오한/작은 목숨들에게 바치는/조화가 아닐까 하는/저것 봐/사람이 꽃 앞에 선다/허리를 숙인다/무릎을 굽힌다/나만 빼고 세상은/도리를 다하고 있었구나/고맙다/이제 여름을 시작해도 좋아.

[청년은 대인관계, 중장년층은 돈, 노인은 건강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초병이 되어/마음이 여린 신의 명을/받들 수 있다면/허술한 담장을 넘나들며/번개탄을 치우고/밧줄을 숨기고/옥상 문을 잠그고/낯빛이 불안한 이들을/내쫓을 수 있다면/세상은 언제나 해가 붉은 오후 여섯 시/눈뜨면 다시 감고픈 이곳에서/내 머무는 동안 누구라도 함께/불안한 밤을 지켜낼 수 있다면/늦은 아침에 아무도/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태안화력 하청 근로자 고 김용균 씨 빈소 조문 행렬]

첫눈이 지상의 허물을 덮던 날/조금은 착해진 줄 알았는데/며칠도 못 가 세상은/또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뒷짐 진 허연 손은/짜증이 났습니다/구급차를 서두르지 않습니다/밥그릇에 집중합니다/식은 몸을 치워버리고/스위치를 켭니다/시간이 굳습니다/돈이 굳습니다/이놈의 세상/만날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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