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겨울세상, 찹살떡 장수 비애와 겨우살이의 지혜
[문방사우]겨울세상, 찹살떡 장수 비애와 겨우살이의 지혜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0.12.15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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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권의 추운 날씨를 보이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둔치 주변에 고드름이 얼어있다. 연합뉴스
영하권의 추운 날씨를 보이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둔치 주변에 고드름이 얼어있다. 연합뉴스

○○씨의 발인(發靷)에도 운동을 했다. 그들의 눈물이 겨울을 먹먹하게 할지언정 태연하게 뜀박질을 한 것이다. 그들의 입관은 그들만의 입관일 뿐이었다. 그들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듯, 그들 또한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고, 타인은 타인일 뿐이니까. 우리가 내린 평범한 결론은 비록 비루하고 야박하나 세상은 그러하다는 것이다. 누가 우리들의 눈물을 온전히 이해할까. 동시에 누가 그들의 눈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우리의 괴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듯, 우리 또한 그들의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하니, 동대동(同對同)이다. 

○○씨 발인에도 운동을 한 것은 건강 때문이 아니다. 그의 주검이 슬프지 않았음은 더더욱 아니다. 우린, 그저 늘 하던 일상을 살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 또한 우리 일상에 풍문을 만들지 않았기에, 우리 또한 그랬을 뿐이다. 동토의 계절엔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게 얼어붙는다. 그리고 시간의 빙점보다 사람의 빙점이 더 차가워진다. ○○씨의 발인은 세상과의 작별이 아니다. 잠시 소풍을 왔다가 소란을 피우고 가는 ‘안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린, 겨울이 되면 잔뜩 우울해진다. 그냥, 바람이 스쳐도 우울하다. 빙점의 차가움도 차가움이려니와, 무언가 모를 외로움이 사무친다. 냉기 때문이라고 자조하지만, 실은 이유를 모른다. 알 까닭이 없다. 그래서 되도록 세상에 바싹 착근해서 지내려고 한다. 슬픈 일이 있어도, 가급적 슬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자생의 의지다. 그젯밤도 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통음했지만 여전히 외로웠고 우울했다.

자정이 넘자, 영하 날씨의 물외(物外)에서 찹쌀떡~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 그렇게 정겨웠던 소리가 이제, 절망의 묵음으로 들린다. 왜, 찹쌀떡 장수는 추운 겨울밤에만 절절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는 토끼 같은 자식을 생각하며, 한 개라도 더 팔려고 목청껏 외친다. ‘병아리 색깔’의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를 힐긋거리며 점점 더 힘차게 외친다. 목소리는 얼었고, 긴긴 겨울밤 또한 얼어붙었다. 그도 어느 누구의 가장일 것이고, 어느 누구의 자식일 것이다. 그도 겨울 속에서 찹쌀떡을 외치지 않고, 찹쌀떡을 사먹고 싶을 것이다. 집밖으로 급히 뛰어 내려갔다. 떡장수를 불렀다. 그가 건넨 찹쌀떡은 발인의 온도처럼 차가웠다. 코끝이 찡했다. 왜 겨울엔, 먹고사는 게 더 힘든지 뼛속까지 저리다. ‘찹쌀떡~’ 멀어져가는 그의 떡 가방이 마치 상여 같다. 슬펐던 밤이다. 

겨우살이는 언뜻 보면 영낙없는 까치집 같다. 주로 참나무종류에 얹혀사는 기생식물이다. 빌붙어 살아 겨우살이인지, 겨우내 푸르게 살아있어 겨우살이인지 몰라도, 엽록소도 갖고 있고 광합성도 한다. 그러니 완전 기생식물은 아닌 셈이다. 꽃은 봄에 암수딴그루로 핀다는데 몸 붙여 사는 어미나무의 무성함에 가려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열매가 유난히 노란 꼬리겨우살이를 제외하고는 늘 푸른 상록수다. 어미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해진 이 겨울에 그 푸르름은 더욱 빛이 난다. 잎은 두텁고 열매는 말랑말랑거리며 끈적끈적한 액체가 들어있다. 그 끈적한 액체가 씨앗이 나무에 붙어있도록 접착제 역할을 해준다. 영명이 미슬토(Mistletoe)인 겨우살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항암제의 재료이기도 하다.

겨우살이처럼,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겨울을 나든, 스스로 의지해서 겨울을 나든, 겨울은 겨울일 뿐이고, 흘러가도록 설계돼있다.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꽃은 피어난다. 어느 시인이 그랬듯 ‘우린 겨울 밤 막다른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우릴 위해 단 한 번도 사주지 않는다’는 말이 저며온다. 우리가 겨울이면 왜 닭과 오리를 부러워하는 줄 아는가. 닭은 닭털침낭 속에서, 오리는 오리털 파카를 걸쳤기 때문이다.

2020년 겨울은 어둡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 겨울의 우울은 시대의 불통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한 해를 노추(老醜)로 장식하지 않으려면 버려야 하고 비워야 한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다 버림으로써 살아난다. 겨울은 헐벗기에 서정시를 낳는다. 개인적으론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금기시한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어디 있었던가. 해마다 다사다난이니, 다사다난이란 말은 아무짝에도 못 쓸 명사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후회 없도록 매조지해야 한다. 

찹살떡 장수의 창백한 외침처럼, 겨우살이의 순백한 착근처럼, 우린 질기게 인생을 버텨야 하고 또 질기게 겨울을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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