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수고한 ‘우리들’… 또 한 살, 자셨습니다
[칼럼]수고한 ‘우리들’… 또 한 살, 자셨습니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21.01.05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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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신축년 새해를 달리는 KTX-이음열차. 한국철도공단제공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신축년 새해를 달리는 KTX-이음열차. 한국철도공단제공

1년간 수고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면서도 척박한 삶을 원망하지 않은 우리에게 위로를 보낸다. 찢어진 구두와 해진 양말을 탓하지 않고 두 발의 삶을 살아준 당신을 치하한다. 맛난 음식을 먹지는 못해도, 건강하게 한살을 먹어준 우리의 수고로움에 경외를 보낸다. 하지만 ‘죽자, 살자’ 치열하게 산 나날은 아쉽다. 좀 더 사랑하지 못하고,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제일 아쉬운 것은 ‘스스로를 위해 살자던 다짐’을 지키지 못한 일이다. 살다보니 눈치도 봤고, 살다보니 술과 담배를 탐닉했다. 그래서 멋진 내일이 없었다. ‘내 일’(현재)을 하느라고 ‘내일’(미래)이 없었던 것이다.

못 견디게 무거운 가슴을 안고, 어둑한 골목에서 남몰래 울음 울던 날들이 야속하다. 혼곤한 일상에 빠져 잠 한번 실컷 자보지 못했으니 불쌍도 해라. 왜 그렇게 모질게 살아야 했는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더냐.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필사적으로 고깃점을 뜯는, 그래서 그런 질긴 시간들이 목구멍에 걸려 컥컥거리니 아픔이고, 눈물이다.

‘우리’는 또 다시 다가온 1년을 수고해야한다. 나이를 한 살 또 자셨고, 부질없는 우리의 시간은 오고야 말았다. 늙음은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은 불량하게 시들어버린다. 나이가 들면 자꾸만 작아진다. 돈 벌 생각 때문에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진다. 꿈의 크기와 마음의 용량이 작아지고 미래의 영향력도 작아진다. 그리고 푼수가 된다. 웃기지 않은데 크게 웃고, 박수 치지 말아야할 때 혼자 박수를 친다. 작아짐은 결국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고 싶지 않은데 내려놓아야할 때가 얼마나 슬픈가. 그리고 충분히 작아졌다고 생각하면, 홀로 눈물을 훔친다.

‘괜찮다’는 말은 ‘아프다’는 뜻이다. ‘화나지 않는다’는 말은 ‘화가 나지만 참는다’는 얘기다. 미소는 역설적이지만 행복하지 않을 때 자주 나타난다. 우리들의 숨은 감정은 전염된다. 분노하되 길을 잃지는 말자. 어느 쪽으로 가느냐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

다시 시작이다. 신축년 ‘흰 소’를 영접한다. 땅의 끝이 바다가 아니라 땅의 시작이 바다이듯이, 다시 초심을 매만지며 다시 시작한다. 각자 자신의 마당을 깨끗이 쓸다 보면 세상은 반드시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의 마당을 쓸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고, 세상은 훈훈한 감동의 마당이 될 것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 텅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 비우면 채워진다.

사람이 죽으면 몸무게가 생전보다 21g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걸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라고 말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준다.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오래된 음식뿐만이 아니리라. 마음속 낡은 생각들도 버려야할 찌꺼기다. 마음속에 불필요한 갑옷은 걸치지 않았는지 고민하며 사는 게 철드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나이테의 등속처럼 건망증의 크기가 커진다. 그러니 자꾸 잊는다. 나이 들면 딱딱해야 할 건 부드럽고 부드러워야 할 건 딱딱해지며, 옛날 일은 또렷이 기억하고 어제 일은 까맣게 잊는다. 별수 없다. 웃을 수밖에. 한때,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던 적이 있지만 이제 남아있는 어른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새벽녘, 어스름한 시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눈이 제법 세차게 내렸고, 전날 온 눈은 이미 빙판이 돼 겨울을 혹독하게 얼리고 있었다. 그 시각, 어떤 이는 눈을 열심히 치우고 있고, 어떤 이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분주했다. 어찌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이 풍경에서 인생사를 읽었다. 세상의 반은 아무 말 없이 오물을 걷어내는 사람에 의해 돌아간다. 누군가는 그젯밤의 오물을 토해놓고 버젓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게워놓은 어젯밤의 꿈을 열심히 닦는다. ‘똑바로 살아라.’ 이것이 신축년을 맞는 우리들의 다짐이자 계명일 수도 있다.

‘흰소’ 해를 맞아 소처럼 우직하게, 때로는 천천히, 하지만 정의롭게, 썩어빠진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할 것을 되새기며 새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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